북핵 돌파구 열릴 땐 정상회담 가능성, 대북특사 파견 필요성도 제기

2005 한반도 기상도 - 남북 해빙 급물살…북핵이 관건
북핵 돌파구 열릴 땐 정상회담 가능성, 대북특사 파견 필요성도 제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차 칠레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새해엔 한반도에도 ‘봄날’이 올 것인가? 2004년 남북대화 중단에 따른 겨울 한파는 그 어느 때보다 매섭고 길었기에 ‘해빙’에 대한 기대는 자못 진지하다. 특히 새해는 해방 60주년과 6ㆍ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는 데다 북한에게도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 선군정치 시작 10년이 되는 해여서 어떤 형태로든 남북관계에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에도 조지 부시 대통령 2기 행정부가 출범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다를 6자회담에 북한이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베이징 대학 특강에서 “2005년은 북핵문제 해결의 중대 기로인 만큼 북한과 미국, 그리고 6자회담 참여국의 역사적 선택과 결단을 기대한다"며 “한국도 남북관계를 업그레이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남북관계의 변화 가능성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암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경향신문과의 송년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회담이 가능만 하다면 시기와 장소를 안 가리고 수용할 의향이 있고 추진도 하고 싶다”며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북한6자회담 복귀가 북핵 해법 첫걸음
그러나 남북관계가 정상궤도에 진입하고 나아가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당장 가로놓인 북핵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관문으로 여겨진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북핵과 6자회담, 남북관계를 한반도 기상도의 핵심 변수로 꼽는다. 특히 북핵 문제가 표류하면서 남북대화도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에 비춰 북핵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북한 또한 체제 보전을 위해 남북보다는 북미관계에 비중을 두고 있어 남북대화는 북미 협상에 밀리는 상황이고 이러한 구도는 북핵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북핵 문제의 진전에 따라 남북대화와 정상회담의 가능성과 속도가 영향을 받는 셈이다.

북핵 문제의 관건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여부와 북핵의 해법으로 집약된다. 북한은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한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전제한 리비아식 해법에 관심을 보이다가 돌연 그 해 8월 4차 6자회담에 불참한 이후 최근까지 복귀를 하지 않은 상태다. 북한이 6자회담을 중단시킨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대선을 지켜보자는 ‘시간끌기’로 분석됐는데, 오히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북한에 리비아식 해법 수용을 요구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에 내정됨으로써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6자회담을 연다 해도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공회전만 하게 될 것”이라며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지켜보겠다고 선언, 일러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할 1월20일 이후에 태도를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북한은 미국의 압박 정도에 따라 조기에 6자회담에 복귀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럴 경우 북한의 6자회담 복귀시기는 경작이 시작되는 4월까지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현실은 이러하지만 남북대화를 전적으로 북핵, 또는 6자회담의 종속변수로 놔둘 수 없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북핵 해법을 찾으려는 6자회담 당사국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남북간 대화 재개와 2차 남북정상회담을 모색하기 위한 접촉을 계속 시도하겠다는 게 우리측 방침이다. 통일부의 ‘2005년 북한정세 전망’보고서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압박을 견제하고 추가적인 경협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복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외교안보연구원의 2005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는 “북핵 문제 조기 해결과 남북교류협쩜?틀을 마련하기 위해 실무형 대북 특사 파견의 필요하다”고 강조있다.

2004년 4월19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북미 양자회담 성사여부에 주목
전문가들은 남북당국간에 돌출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남북 양측 모두 상대에 대한 실망속에서 관계를 풀어가는데 소극적이었다”며 “핵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국에 대한 설득을 강화하면서 남북관계를 병행해 발전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북핵문제를 타결하고 북한의 체제보장, 경제난 해소 등을 병행추진하기 위해서는 특사를 파견해 북한으로 하여금 정치적 결단을 내리도록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중단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북핵 해결 우선과 국제공조만을 강조한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며 “대북특사파견과 함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조기개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말 정동영 장관의 행보와 노 대통령을 만난 폴리코프스키 러시아 대통령 전권대표의 동선이 ‘특사설’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노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나 그에 앞서 김하중 주중 대사와 주 북한 독일대사를 만난 것 모두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이다. 최근에는 정 장관이 방중시 북한측에 총리급 회담을 제의했다는 소문도 전해지고 있지만 정 장관측은 모두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폴리코프스키 전권대표의 경우 김정일 위원장과 가까운 몇 안 되는 러시아 내 친북인사로 방한 중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해 그가 노 대통령의 대북 밀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지난해 7월부터 당국간 대화 채널은 막아 놓은 채 경제협력사업에만 적극성을 보이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 남북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남쪽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 경제쪽에 전력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북한의 경제회생 전략인 7ㆍ1조처를 더욱 심화ㆍ발전시킨 것이나 태크노크라트 출신 혹은 해외 유학파를 당 전면에 내세운 것은 상징적인 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 회생을 위해 남북 관계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계속 살려나가고 있다. 반면 핵문제는 중국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택해 한국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단, 핵문제에 북한과 중국이 손을 잡으면서 미국이 기존의 ‘일방주의’를 완화, 6자회담의 틀에서 벗어나 북미 양자 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6자회담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을 천명한 것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어 향후 남북의 틀도 새롭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남북관계는 북핵과 경협을 두 축으로 한단계 진전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1-07 09:4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