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vs안희정, 염동연vs이강철

盧 측근, 협력이냐? 분열이냐?
vs안희정, vs이강철

이광재

한해가 저물던 구랍 20일 저녁, 서울의 한 음식점에 참여정부의 쟁쟁한 인사들이 모였다. 열린우리당 ㆍㆍ서갑원ㆍ백원우 의원과 이강철 전 대선후보 조직특보, 운동권 참모진의 맏형격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이었다. 명분은 열흘전 쯤에 출소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희정씨를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모임이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참여정부 탄생의 인적 바탕인 이른바 ‘노무현 캠프’ 사람들이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했다는 점이다. 특히 ‘금강팀’(노 대통령의 대선캠프인 자치경영연구원 출신)과 ‘부산팀’ 인사가 주축을 이뤘다. 노 대통령이 ‘동업자’라 표현할 만큼 동지애를 느끼고, 참여정부 출범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안희정씨의 정치 복귀가 점쳐지고, 이기명 전 노 대통령 후원회장과 이강철 전 특보 등 참여정부 ‘실세’들의 움직임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마련된 자리여서 더욱 정치권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음지파'전면 등장으로 역학관계 변화 예상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이 모임을 계기로 새로운 친노세력이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집권 세력내 ‘친노세력’은 크게 열린우리당의 ㆍ서갑원ㆍ백원우 의원 등 친노 직계그룹과, 문희상ㆍ유인태ㆍ한명숙 의원 등 청와대 및 정부 각료 출신, 조경태ㆍ조성래 의원 등으로 분류됐으나 최근 정치적 ‘음지’에 머물러 있던 인사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안희정-이기명-이강철씨 등이 영향력을 키워 기존의 친노세력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경우 당내 세력간 역학관계는 물론 향후 정치지형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과정에서 노무현 캠프의 386 그룹을 대표하는 안희정씨와 의원 사이의 미묘한 갈등 기류나 시니어 그룹의 좌장격인 이강철 전 특보와 의원이 대립하는 양상은 친노세력 분화의 속도와 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친노 세력 ‘음지파’ 가운데 안희정씨는 출소 후 항간에서 제기된 ‘유학설’을 부인하고 국내서 정치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의 대학(고려대) 후배인 한 초선 의원은 “면회를 통해 안씨가 상당한 내공을 쌓은 것을 알 수 있었다”며 “ 앞으로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는 정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12월9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이기명 전 후원회장은 “개혁을 입으로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당내 지도자들의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고 지도부와 각을 세운 데 이어 보름 뒤인 24일에는 노사모 홈페이지를 통해 ‘4대 개혁입법을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점차 행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TK(대구ㆍ경북)를 대변하는 이강철 전 특보는 1월3일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 출마를 결정, 사실상 ‘정치복귀' 를 선언했다. 이 전 특보는 작년 12월10일 청와대서 노 대통령과 따로 만나 자신의 거취 및 역할 문제를 상의한 바 있어 비대위 출마는 당내서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부산 사단’의 중추인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은 작년 12월 중순 노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를 방문, 대통령으로부터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언을 듣고 고민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희정-이기명-이강철씨는 ‘금강팀’의 멤버로 노무현 캠프 출신 중에서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참여정부 출범 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음지’에 머물러 있다가 최근 양지로 나와 정치 행보를 강화하면서 같은 캠프 출신으로 양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인사들과 비교되고 있다.

특히 ‘좌(左) 희정, 우(右) 광재’라 불린 386 참모그룹의 양대 산맥인 안희정씨와 의원은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또 이강철씨와 의원은 각각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친노 인사지만 정치 역정에 차이가 있고 ?노선과 인사 문제로 몇 차례 다툰 전력에다 최근엔 민주당과의 합당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권출범 뒤 명암 엇갈려
안희정씨와 의원은 1994년부터 금강팀에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해 안씨는 정무를, 이 의원은 기획을 맡아 노 대통령의 당선에 1등 공신이 됐지만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명암이 갈렸다. 안씨가 불법 대선자금의 ‘짐’을 안고 1년 동안 옥살이를 한 반면, 이 의원은 청와대 국정상황 실장으로 입각한 뒤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염동연
두 사람은 줄곧 동지 관계를 유지했으나 대선 이후부터 미묘한 ‘거리’가 생겼다는 게 386 측근들의 시각이다. 이들에 따르면 대선 후 청와대 입성 과정과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이 의원이 소홀하게 대한 것에 대해 안씨가 섭섭해 했다는 후문이다. 일설에는 안씨가 1년간 구금돼 있는 동안 이 의원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기관에 ‘자기 사람(연세대 출신)’을 심어 세 확장을 시도한 것에 대해 안씨측이 불만을 가졌다는 얘기도 있다.

정가에서는 안씨의 정치 행보가 본격화할 경우 ‘노선’ 차이로 이 의원과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안씨는 고대 반미청년회를 이끌다 구속된 적이 있을 만큼 개혁성이 강하고 대학 후배로 열린우리당 내 대표적인 전대협 세대인 이인영(84학번), 오영식ㆍ백원우 의원(85학번)과 절친하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함해 4대 개혁입법 강행 처리를 주장한 이기명씨 등이 지지파로 향후 안씨의 정치 노선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반면 이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실용주의 노선을 고수, 여권 내 개혁세력으로부터 “보수주의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은 작년 8월엔 ‘신의정연구센터’를 주도적으로 창립해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 대기업과의 교류를 넓히고 있다. 또 국보법 폐지 등에 대해선 온건론에 서는 등 노선에서 안씨와 사뭇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시니어그룹 최측근인 이강철 전 특보와 의원은 재작년 대선에서 각각 대통령 정무특보와 자치경영연구원 사무총장을 맡아 금강팀을 이끌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대선 이후 염 의원은 호남을, 이 전 특보는 TK를 대표하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상했지만 17대 총선에서 염 의원이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한 반면 이 전 특보는 낙선, 희비가 갈렸다. 이후 염 의원은 여권의 ‘실세’로 활발한 행보를 펼쳤으나 이 전 특보는 외곽에서 맴돌았다.

두 사람은 작년 1ㆍ11 전대와 5ㆍ11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후보 지지를 놓고 이견을 보인 데 이어 ‘김혁규 총리카드’와 ‘영남발전특위’ 문제로 또 한차례 파열음을 낸 적이 있다. 특히 이 전 특보가 호남출신인 정찬용 인사수석 자리를 탐낸다는 소문으로 인해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에는 염 의원이 민주당 인사들과 ‘월요회’ 모임을 결성하고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을 공약으로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이 전 특보가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 ‘음지파’ 인사들은 1월 말 원내대표 선출과 4월 전당대회, 재보선을 겨냥해 정치적 행동반경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친노세력의 주니어그룹과 시니어그룹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 ‘음지파’가 친노세력의 새로운 리더로 안착하게 될 지 아니면 17대 총선을 계기로 변화된 정치상황에 매몰될 지 신년 정치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다.

박종진기자


입력시간 : 2005-01-13 09:52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