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형제 독립운동, 후손들 정·관·학계서 명망 떨쳐

전남'천재家', 삼촌이어 장관에…
장하진 신임 여성부 장관

할아버지 형제 독립운동, 후손들 정·관·학계서 명망 떨쳐

장하진 신임 여성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렬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 오대근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1월 4일 단행한 개각에서 신임 장하진(51) 여성부 장관이 화제다. 전남의 손꼽히는 명문가 출신인데다 한 집안에서 ‘숙질’(叔姪ㆍ삼촌과 조카)이 장관이 되는 진기록을 세운 까닭이다. 장 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민주당 의원의 조카다.

장 장관의 고향인 전남에선 그의 가문을 ‘천재 집안’이라고 부른다. 1세대는 독립운동가, 2세대는 정치인과 관료, 3세대는 학계에서 주로 이름을 날리는 등 3대에 걸쳐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대거 배출했기 때문이다.

장 장관의 할아버지인 장병상 씨 3형제는 모두 유명한 독립 운동가다. 장 장관 집안은 증조부인 장진섭 씨가 전남 무안군(현재는 신안군)의 대지주였지만 아들들의 독립군 활동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광복 후엔 장홍렴 의원이 ‘토지개혁법’ 발의안에 참여해 집안 땅을 농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아버지 장충식씨, 5·16때 정치 규제자로
장병상 씨는 일제 시대 독립 운동을 하다 투옥된 뒤 광복이 되고서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했다. 장병상 씨의 형인 병준 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외무부장을 지냈다. 두 동생 중 홍재 씨는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타계했고, 홍렴 씨는 동경유학생 사건 때 프랑스로 망명한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광복 후엔 반민특위 검사와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다.

조부는 슬하에 4남 2녀를 뒀다. 장남인 정식(사망)씨는 전남대 의대를 나와 모교 안과 교수를 지냈는데, 아들 하종씨도 조선대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 의대 교수를 지냈다. 장 장관의 아버지인 차남 충식씨는 광주 제일고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후 정치에 뜻을 품고 광주시의원, 전남도의원을 거쳐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다 5ㆍ16이 터지면서 수감됐다. 당시 함께 수감됐던 정치인들은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는데, 그는 끝까지 쓰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정치 활동 규제자로 묶이기도 했다. 정치를 접은 후 한국은행에 다니다 도의원을 지냈고, 한국후지필름 사장, 한국닉스 회장을 역임했다.

충식씨는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란 4형제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좋아 노트에 필기 한 자 하지 않고도 수업 내용을 훤하게 꿰뚫고 있어 학창 시절 별명이 ‘노트나시’(‘노트가 없다’는 뜻)였다고 한다. 대학 재학중 6ㆍ25가 발발하자 두 동생과 함께 학도병으로 지원, 미 2사단을 따라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이 쏜 기관총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기도 했으며 휴전 후 국가 유공자로 지정됐다. 장 장관의 어머니인 고 민란식도 4ㆍ19 당시 경찰에 구타 당해 심한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로, 별세한 뒤 4·19묘지에 안장됐다.

셋째인 영식(전 한국전력 사장ㆍ재미)씨는 광주서중,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계량경제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중 4ㆍ19 직후 국무총리에 오른 장면 씨의 요청으로 일시 귀국해 경제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1961년 5ㆍ16 군사쿠데타 때와, KDI 연구위원으로 있던 1980년 당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두 번이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1980년의 망명은 ‘서울의 봄’을 맞아 형 충식 씨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 인사하고 경제 정책 등에 관해 얘기를 나눈 것이 신군부 세력에 도청됐던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 선 1998년, 한국전력의 첫 공채 사장에 선임된 것은 그러한 사연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막내인 장재식 전 의원은 17세 때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졸업하던 1956년 고등고시 행정과(7회)에 합격한 후 세무 공무원으로 출발해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거쳤다. 1987년 DJ캠프에 합류, 14ㆍ15ㆍ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 장관의 형제와 사촌들은 주로 학계에 포진해 있는데 특히 경제학계에서 진보 성향이 강하다.

개혁마인드 가진 사회학 박사

▲ 장하진 장관 약력
△전남 광주(1954) △이화여대 사회학과.사회학 박사 △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한국여성연구소장 △여성정치세력시민연대 대표 △여성개발원장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회분과위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이사 △여성부 장관
이화여대 사회학과(박사) 출신인 장 장관은 개혁적 성향이 적극 평가 받아, 참여부 출범 전부터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 명단에 들어 있었다. 대학 재학 중에는 학생 운동가로도 명성을 떨쳐, 이미경(현 열린우리당 의원)ㆍ최영희(현 내일신문 부회장)씨와 함께 이대 ‘69학번 삼총사’로 불렸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군사법원에 회부되기도 했다.

장 장관은 충남대 교수, 여성개발원장 등을 지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여성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여성학자들의 모임인 ‘여성연구회’를 ‘한국여성연구소’로 발전시킨 데 이어, 99년에는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지향하는 ‘여성정치세력 시민 연대’대표를 지냈다. 학계와 여성 단체 뿐만 아니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 이사 등으로도 참가해 진보적 여성계에서 발 넓은 학자로 꼽힌다.

장 장관의 동생 중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소액 주주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에 앞장 선 학자 출신의 시민 운동가로 유명하다. 장 장관의 여동생인 장하경 광주대 교수는 현재 정부 국가과학기술 위원이다. 막내인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현재 여당의 정책 브레인 역할인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으로 있다.

장 장관의 부군은 김홍명 조선대 정외과 교수이고, 장하성 교수의 부인은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장하경 교수의 부군은 김대원 조선대 미술대학장으로 한 집안에 박사가 7명이나 된다.장영식 전 한전 사장의 아들 하상 씨는 미국 코넬대를 나와 보잉사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진애 씨 역시 코넬대 출신인 짤 진애씨는 미국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장재식 전 의원의 장남 하준 씨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27세 때 이 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차남 하석 씨는 미국 스탠퍼드대를 나와 영국 런던대 과학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1-13 10:0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