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각제의로 불거진 우리당·민주당 합당론여권 해명 불구 일파만파 조짐

합당론 파문, 정치권 '쓰나미'되나
입각제의로 불거진 우리당·민주당 합당론
여권 해명 불구 일파만파 조짐


신낙균(오른쪽 두번째) 민주당 대표대행 등 당직자들이 김효석 의원에 대한 교육부총리 제의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민주당 전ㆍ현직 의원들에 대한 청와대의 입각 제의 파문이 불거지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론이 설밑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순수한 의도’를 강조했지만 당사자인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당 파괴 공작”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한나라당에서는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교육부총리직 제의로 합당론 돌출
합당론의 불길은 지난 21일 노 대통령이 민주당 김효석 의원에게 교육부총리 입각을 제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타올랐다.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식 참석 차 미국에 머물고 있던 김 의원에게 입각을 제의했고, 김 의원은 일정을 앞당겨 귀국해 이날 청와대 만찬까지 참석한 뒤 결국 고사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대학 혁신을 통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김 의원을 적극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시 출신으로 경제관료와 중앙대 교수, 경영대학장을 지낸 김 의원이 적임자라는 논리였다. 이에 김 의원은 2월 3일 전당대회를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의 사정과 본인이 교육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정중한 거절’의 뜻을 밝혔다.

이것으로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 같던 파문은 작년 말 미국에서 연수 중인 추미애 전 의원에게도 입각 제의가 있었다는 얘기가 추가로 드러나면서 심화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또 이낙연 이정일 의원에게도 입각을 제의한 정황이 짙다는 얘기까지 더해졌다. 물론 김 의원과는 달리 청와대가 직접 이들 전ㆍ현 민주당 의원들에게 입각 제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노심(盧心)을 아는 여권 측 메신저’가 이들과 접촉했다는 내용이다.

청와대 '순수한 의도' 강조
입각 제의를 민주당이 ‘당 흔들기’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합당 논란이 커지자 노 대통령은 휴일인 23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긴급 진화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합당 운운에 관여하지 않았고 관여할 생각도 없다”며 “당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순수한 의도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고려가 있었더라도 그 상한선은 당 대 당 우호적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노 대통령은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입각 제의 때 ‘눈꼽 만큼의 조건’도 제시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을 소개하며 “이런 제안을 하면 무슨 일이 있을까, 혼선이 있을까 싶어 일체 조건을 내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각 당 지도자 회동 때 한화갑 당시 민주당 대표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를 펼쳐달라’고 조언했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노 대통령은 이날 공작 정치 비판을 의식한 듯 “권력기관 인사도 하지만 제가 공작을 싫어하고 뒷조사도 싫어한다는 것을 아실 것”이라고 선의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해명과 달리 1월 25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실(노혜경 비서관) 소식지인 ‘청와대 브리핑’은 “설사 대통령이 연정을 하거나 제의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라는 내용을 실어 논란을 빚었다. 브리핑지는 또 “부총리 제의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이 들고 일어나고, 언론도 무슨 파장이 어쩌고 하면서 마치 청와대가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며 “독재 공작정치 시절의 망령과 고정 관념을 버리라”고 야당과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합당론 왜 계속되나
청와대가 공식 부인하고 있는데도 합당론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로 우선 과반의석을 위협 받고 있는 우리당 내부 사정을 들 수 있다. 우리당은 현재 턱걸이 과반인 149석이다. 안정적인 원내 운영을 위해서라도 합당의 필요성이 엄존하는 게 현실이다.

호남 민심의 기류 변화도 합당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우리당은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과는 달리 지방 재ㆍ보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해 호남 표심의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함께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게 여권에는 꽃놀이패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 합당이 안 되더라도 호남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가 있고, 합당이 될 경우에는 호남표를 결집시켜 수도권 등에서 야당과의 싸움이 쉬워진다는 논거다. 여권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합당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도다.

또 분당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진 않았지만 어차피 뿌리가 같은 ‘형제당’이라는 정서도 거론된다. 우리당 정세균 새 원내대표도 취임 인사 차 민주당을 방문해 “합당이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형제당으로서 서로 돕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지금은 통합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합당의 필요성을 적극 부인하지는 않는다. 4월 전당대회에 당권에 도전하는 일부 후보는 합당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염동연 의원은 합당을 공약으로 내걸겠다는 얘기까지 한다.

임채정 의장은 “민주당과 우리당은 뿌리가 같고 정서적으로 가까워서 문제가 생기는데 현재 합당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니며 민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 전ㆍ현직 의원들에 대한 입각 제의가 알려진 이후로 우리당 내부에서는 합당과 관련한 다양한 소리가 나온다. 대체로 시기가 문제지 원칙에 공감한다는 얘기가 많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구 당권파의 한 의원은 “분당 과정에서 생긴 민주당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라며 “청와대의 입각 제의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희상 의원은 “합당을 했으면 좋겠다고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안 된다는 강경론자도 있다”며 “민주당의 강경한 입장을 보면 논의가 구체화하긴 당분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개혁당 출신인 유기홍 의원은 “기간당원 중심제 등 정당혁명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리당의 우선 과제”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겉으론 “합당은 없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로 합당 반대 목소리가 크다. 유종필 대변인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입각 제의를 ‘민주당 파괴 공작 미수 사건’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찬찬히 들어보면 찬성의 소리가 만만지 않다. 반대론자조차 최대한 몸값을 올려 합당 국면이 올 경우 실리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을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화갑 전 대표는 가는 곳마다 “벼락부자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쓰러지더라도 민주당 간판을 베개 삼아 지킬 것”이라며 “우리당의 국회 과반 의석이 깨져야 정치가 정상화한다”고까지 말한다. 그의 입장에는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자금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개인적 감정까지 중첩돼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민주당 상당수 현역 의원들은 이와는 궤를 달리 한다. 이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지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는 신축적 입장이다. 이낙연 이정일 의원 등이 “2월 3일 전당대회에서 합당반대 결의문을 채택하자”는 한 전 대표측 주장에 난색을 표명하는 데서도 이런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전당대회에선 무언가를 하겠다는 다짐을 해야지, 무엇은 안 된다는 수세적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4월 재ㆍ보선 또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속내를 드러낸다.

내년 지방선거 전후가 적기?
합당의 시기에 대해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일부에서는 당장 4월 재ㆍ보선 전후를 말하며 합당까지는 안 가더라도 선거 승리를 위해 최소한 연합공천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한나라당에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합당 시기를 내년 지방선거 전후로 꼽는 의견이 훨씬 우세하다. 그 때가 되면 차기 대선을 앞두고 큰 틀의 정치권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승리의 방정식을 찾다 보면 합당 여부의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으로 전망한다.

합당의 범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당과 민주당, 정치권 밖의 세력이 합치는 것에서부터 우리당 주류 세력과 민주당이 합치고 개혁당 출신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은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광범위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정계개편의 회오리는 여당에만 그치지 않고 한나라당도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예측도 빠지지 않는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에 대한 입각 제의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합당설은 당분간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일차적으로 4월 재ㆍ보선을 거치면서 지금보다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조경호 기자


입력시간 : 2005-02-01 16:05


조경호 기자 sooy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