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유지의 근간인 선군정치, 군의 핵심인 '핵' 포기 못할 것미국의 6자회담 전략목표는 북핵해결과 중국 군사력 견제 포석

핵 카드는 김정일의 정치생명?
체제유지의 근간인 선군정치, 군의 핵심인 '핵' 포기 못할 것
미국의 6자회담 전략목표는 북핵해결과 중국 군사력 견제 포석


지난 2003년 9월9일 평양에서 열린 인민군 창설 55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한 김정일 위원장.

평양 당국이 핵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6자 회담 무기한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6자 회담의 틀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6자 회담이 단지 북한 핵만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죌릭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지난 15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이 참여할 뜻이 있다면 6자 회담 참여국들이 대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북한이 참여할 뜻이 없더라도 맹방들과 함께 북한을 억지하는 측면에서 이 틀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면서도, 덧붙여 6자 회담을 향후 동북아 다자 안보체제로 전환할 뜻을 밝혔다.

동일한 선상에서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인 로웰 자코비 중장도 지난 16일 상원정보위원회 증언에서 지난해 조지 테넷 미 중앙정보국(CIA) 전 국장이 발언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점증하는 중국의 군사력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또한 클린턴 의원도 17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는 부인했지만, “미사일방어(MD) 프로그램이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이 6자 회담 틀을 계속 추구하는 궁극적인 전략 목표는 중국이라는 사실을 여러 군데서 읽어낼 수 있다.

이에 앞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6자 회담 붕괴 불용 △한반도 비핵화 △북한에 의한 핵확산 경계 등 대북 3대 원칙을 세우고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라는 식의 냉담한 태도로 대응함으로써 평양의 도전에 대해 ‘무시 전략’을 일관하고 있다. 또 동시에 17일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를 6자 회담 미국측 수석 대표 자격으로 베이징으로 보내,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외교가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에게 북핵 보유 공식화로 동아시아 ‘핵 도미노’를 우려하며 은근히 중국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중국의 대답은 북한에 대해 ‘레드 카드’ 사용보다는 대화로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황들로 볼 때, 미국은 북핵 문제를 대중국 정책과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 진다. 미국은 이번 북한 외무성 성명을 여러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결국 6자 회담은 북핵 해결을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틀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애당초 미국의 북핵 해법은 쉽사리 방향 선회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진다.

북, 미국과의 양자협상 원해
그렇다면 북 외무성 성명 후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 본 평양 당국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우선 북한을 끌어내기 위한 중국의 설득이나 미국의 전방위 경제 봉쇄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북한은 당분간 방향 전환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론 핵 보유 공식 선언, 즉 ‘핵 구호’ 보다 한 단계 더 긴장도를 높이는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은 6자 회담으로 회귀하는 길을 완전히 닫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6자 회담 틀 내에서 북 - 미 양자 협상 등 신속하고 성과 있는 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다만 북한이 6자 회담으로 돌아 오더라도 우선은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리비아식 핵 해결’ 의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 김정일 체제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선군(先軍) 정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 입恙【?볼 때, 핵 없이 자신의 통치 기반인 선군정치를 유지해 나가기 힘든다는 분석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박사(통일문제연구협의회 사무국장)는 “특히 금년은 선군정치 10주년을 맞는 해로, 2월 10일 북한 외교부가 성명을 통해 ‘선군 정치를 기치로 사회주의 수호 전투 동원 태세’를 강조한 올 신년사에서 이미 예고됐던 일”이라며 “그 간 비공식 경로를 통해 흘러 나왔던 북한의 유화적 제스처는 평양 테크노크라트들이 흔히 쓰는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북한 외무성 성명은 사실 지난해 11월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이미 방침을 정해 놓고 발표 시기만 조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북한이나 미국이나 서로 상대방 정권의 기조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분석이 합리적이다.

김정일 정권의 키워드인 ‘선군 정치’는 먹고 사는 최소한의 문제 해결에 실패한 체제의 취약성 탓에 생겨난 방어적 통치 이념의 성격이 짙다. 통일연구원 정 박사는 선군정치의 탄생을 식량난과 극심한 인플레 등 악화일로의 경제난으로 생겨난 김정일 체제에 대한 위협 도미노에서 찾는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권력 내부의 갈등 가능성이 상존하고, △7ㆍ1 경제 관리 개선 조치 이후 식량난 속 배급제 축소 등에 인민들 사이에 장사 바람이 불고, 정권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통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데다, △탈영 등 군 하부 조직에서 일탈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결국 통치 기반을 노동당에서 충성심을 조직의 생명으로 하는 군부로 옮겨간 것이 선군정치라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또한 ‘선군후경(先軍後經)’, ‘선군후로(先軍後勞)’ 정치 방식이다. 선군정치는 군을 무시하고 경제를 우선시 할 경우 당장의 경제적 결핍을 채울 수 있을 지 몰라도 체제 보위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란 논리이고, 동시에 노동 계급을 기초한 전통적인 혁명관도 수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백성이 먹고 사는 문제보다, 또 혁명 이념의 정통성 보다, 체제 보위를 절대시ㆍ최우선시 하는 독재 체제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정일 정권은 인민의 고통이 심화하더라도 체제 유지를 위해 군력의 핵심인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포터 고스 미 중앙정보국 국장이 지난 16일 상원정보위에서 “북한의 핵개발 목적은 체제 생존이며, 그들이 세계에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느냐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증언하고, 지금까지와 같은 6자 회담을 통한 북핵의 외교적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것은 의미있는 대목이다. 부시 정부의 ‘이너 서클’이 북한의 내부 속성을 정확히 짚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장관이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미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정일·군부 '이상 징후'는 없다
한편 군부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 구도를 놓고 일각에서는 군사 부문 결정권에서 김 위원장과 군부와의 수직적 명령 체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커트 켐벨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북한에서 군사 분야 결정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미국은 알고 있지 못하다”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군부 내 김정일에 대한 충성의 균열 징후는 발견되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 군부를 정치권력화한 집단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모범적으로 충성에 앞장서는 김정일 위원장 체제의 선도 집단으로 보는 것이 지금으로선 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대치 상황을 적극 활용해 군사적 긴장감을 높임으로써 호전적인 군부에 힘을 실어 주고 동시에 충성을 확보해 나가자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은 군부의 권력서열 격상 등 국방위원회 위상 강화와 함께, 작년 가을 자신의 후계 구도 이후 오랫동안 권력 핵심의 역할을 해 왔던 조직 지도부 중심의 당 비서국을 개편했다. 당 비서국 조직중 군사부, 경제정책공업부, 농업정책검열부를 없앤 것이다.

군사 부문은 국방위원회에, 정치사찰은 당 비서국에, 경제정책은 내각에 각각 배분하는 등 권력이 어느 한쪽에 편재되는 것을 막는 한편, 상호 견제를 통해 2인자로 부상하는 것도 막는 형태로 통치 체제를 재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됐던 세습 후계자 문제도 김 위원장이 겪었을 1인 절대 권력화 과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으로 전망된다. 즉 쉽게 2인자 부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 위원장 1인 지배 체제에서 지금으로선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보다 안정적인 체제 기반을 구축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결국 군부나 당, 테크노크라트 중 어느 한 쪽의 도전만으로는 김 위원장 체제에 무너뜨릴 수 없는 구도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 경제란이 최대 변수
결국 평양 당국의 선군정치 핵 협상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CVID)’의 핵 포기가 아닌, 이미 보유한 핵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는 조건에서 더 이상 핵 개발과 ?遠?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카드로 대미 버티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선 한국과 중국의 경제 협력 거부 가능성이나 미국의 경제 봉쇄 강화로 가중되는 경제난을 평양 당국이 얼마 동안이나 참아낼 수 있느냐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미국편이다. 다만 강경한 대북 고립 전략은 북한의 예상 밖 돌발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데 고민이 있다.

미국의 슬레이트닷컴의 칼럼니스트 프레드 카플란은 “부시 행정부 입장에선 전쟁도, 완벽한 대북 제재도, 핵보유국 인정도 모두 마땅찮은 카드라면, 또 다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할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을 이미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 기지’로 규정했고, ‘타협이 아닌 최상을 추구하는(Maximalism)’ 부시 행정부가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 다만 북한 핵 위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라는 미국 내 반대 여론이 부시 행정부에게는 부담이며, 이러한 반대 여론이 얼마나 강하게 부상하느냐의 여부가 부시 행정부 입장 변화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결국 북핵 대치 국면은 당분간 북 - 미 어느 한 쪽의 양보보다는 스스로 논리를 바꿀 수 있는 내재적 환경 변화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2-22 16:14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