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하던 러시아 유전프로젝트, 청와대 투서 이후 갑자기 사업포기'몸톤'거론땐 정권에 큰 부담 우려한 듯…이광재 연루설 등 여전히 베일에

[오일게이트] '투서' 받고 허겁지겁 계약파기, 왜?
순항하던 러시아 유전프로젝트, 청와대 투서 이후 갑자기 사업포기
'몸톤'거론땐 정권에 큰 부담 우려한 듯…이광재 연루설 등 여전히 베일에


4월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 최흥수 기자.

작년 12월 초 허문석(71)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는 신광순 한국철도공사(옛 철도청) 사장과 점심식사를 하다 뜻밖의 얘기를 듣고 하마터면 수저를 놓칠 뻔했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사업 의혹 사건(오일게이트)의 실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자원 전문가인 허씨(미국 미시간대 지질학박사)는 작년 6월부터 러시아 사할린 유전사업의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전력했던 터라 그해 11월 중순 사할린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거의 절망 상태에까지 갔었다. 하지만 허씨는 그??만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러시아 사할린 유전사업이 갑자기 중단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신 사장은 러시아 유전사업이 중단된 이유가 ‘투서’때문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말 청와대에 투서가 전달되면서 철도공사가 서둘러 러시아측(알파에코사)에 사업 포기를 통보했다는 것. 순항하던 러시아 유전사업이 투서로 인해 ‘오일게이트’로 변질된 셈이다.

투서가 있기 전까지 러시아 유전 사업은 몇몇 장애물을 뛰어 넘으며 정점을 향해 질주했다. 러시아 유전 사업은 작년 6월 1992년부터 러시아 일대에서 에너지 개발사업을 해 온 ㈜쿡에너지 권광진 대표가 부동산개발업자인 ㈜하이앤드 전대월 사장을 만나면서 본격화됐다. 두 사람은 권씨가 18%, 전씨가 82%의 지분을 갖기로 약정하고 의기투합, 사할린 6광구 육상ㆍ해상 유전 및 정유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페트로사의 지분 97.16%를 인수하기로 했다.

전씨는 그러한 내용의 사할린 프로젝트를 들고 동향 의원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찾아갔고 허문석씨를 소개받아 유전 사업은 가속도가 붙었다. 8월17일 지분이 가장 많은 전씨를 대표로 ㈜코리아크루드오일을 설립하고 9월3일 모스크바에서 알파에코사의 자회사인 페트로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당시 KCO의 지분 비율은 전대월 42%, 철도진흥재단 35%, 권광진 18%, 허문석 5%)

KCO는 당시 철도청장(김세호 현 건교부 차관)의 지급보증확약서를 배경으로 우리은행에서 650만 달러를 대출받아 10월 초 알파에코사에 계약금을 송금, 사할린 프로젝트는 결실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중도금을 지급하기로 한 11월15일 KCO는 느닷없이 알파에코사에 계약 파기 공문을 보냈고 끝내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투서가 불씨가 된 오일게이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투서에는 철도청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 및 과정, 사업의 전망과 문제점, 지분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투서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작년 11월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지만 공식적으로 철도청 등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간 것은 투서가 접수된 지 3개월 뒤인 올 2월이었다. 감사원의 늑장 감사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광재 의원 연루 의혹 등 정치권이 관여된 정황을 포착하고 자체 조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투서와 관련, 4월1일 김만수 대변인이 “청와대에 투서가 접수되거나 직접 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고 했지만, 이는 오일게이트가 이광재 의원 및 청와대 연루의혹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책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석연치 않은 계약 파기
사할린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데는 투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10월4일 알파에코사에 계약금을 송금한 뒤 10월15일 ING 뱅크를 통해 러시아측에 ‘잔금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보낼 정도로 잔금을 준비하지 않았음에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2일 우리은행에 잔금(중도금) 대출을 요청했다가 4일 거절 당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신광순 사장은 8일 이광재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철도공사가 그런 사업도 하느냐”며 돌려보냈다고 주장했다.

철도공사의 행보와 계약금을 대출했던 우리은행의 태도를 종합할 때 청와대에 투서가 전달된 시점은 작년 10월15일~ 11월4일로 추정된다. 철도공사가 알파에코사와의 계약을 파기(11월15일)한 과정은 투서에 대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킨다.

철도재단은 사업성 검토, KCO 설립, 대출 등 초기 단계부터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사업추진을 서둘렀고 잔금 송금에 문제가 발생하자 신광순 사장이 이광재 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만큼 사할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그러나 1주일 만인 11월15일 태도를 돌변, 알파에코사에 계약을 파기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놀란 알파에코측은 ‘사업 추진을 계속 논의하자’는 회신을 11월16일 보냈지만 철도재단측은 11월22일 ‘더 이상 러시아 정부 승인을 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러시아 정부의 승인은 11월25일에 이뤄졌지만 결국 계약은 파기되었다.

우리당의 이광재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철도청 유전사업 비리의혹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며 철도청 내부문건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종철 기자

철도공사는 계약을 해지한 이유에 대해 “알파에코사가 러시아 정부의 승인 등 계약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페트로사의 재무상태가 부실한데다 러시아 정부의 승인이 생산원유 판매를 제한하는 조건부 승인이어서 수용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파에코사는 러시아 정부 승인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한국측에서 문제를 삼자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고, 페트로사의 재무상태는 세계적인 회계 평가기관인 미 PWC(PRINCE WATERHOUSE COOPERS)에 의해 2002년부터 흑자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건부 승인에 대해서도 알파에코측은 철도공사가 페트로사 유전에 대해 잘못 이해한데 따른 오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계약 파기와 관련, 박상조 전 철도재단 본부장(KCO이사)이 KCO 대표인 허문석씨에게 그러한 과정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급하게 두 차례나 파기공문을 보낸 것은 오일게이트가 투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을 가중시킨다. 철도공사 사장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적극 나선 데 반해 산하기관인 철도재단이 월권에 가까운 행위로 계약 파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배경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외부의 ‘입김’에 의해 박상조 전 본부장이 서둘러 계약파기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KCO 관련 당사자들의 지분 변동과 철도재단이 전대월씨와 권광진씨의 지분 인수 대금으로 120억원을 지불하기로 한 대목은 오일게이트의 본질인 동시에 투서의 후폭풍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철도재단은 작년 9월16일 KCO의 대주주인 전대월ㆍ권광진씨와 주식 양도ㆍ양수 계약을 체결하고 페트로사의 인수가 성공하면 인수대금 120억원(전대월 84억원, 권광진 36억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철도재단은 허문석씨를 대표로 하면서 그의 주식 5%를 0.01%로 줄여 철도공사의 지분은 99.9%나 되었다.

의심이 가는 것은 철도재단이 KCO의 액면가 5,000원의 주식을 20배인 주당 10만원씩에 매입키로 한 점과 전씨의 몫 84억원 부분이다. 권광진씨는 120억원과 관련, 4월14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120억원은 전대월씨와 철도재단이 미리 협의를 해서 정한 것”이라며 “내 지분 18%는 철도재단이 주식을 인도하지 않으면 알파에코사에 계약금을 송금할 수 없다고 해 프로젝트가 무산될까 봐 할 수 없이 건넨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상조 전철도재단 본부장이 러시아 알파에코사에 보낸 계약파기 공문(왼쪽), 알파에코사의 사업추진 의향서와 러시아 정부사업 승인 허가서 공문(오른쪽)

전대월씨의 주식 대가인 84억원은 사채권자 황모씨와 김모씨에게 각각 54억원과 30억원씩 권리가 양도된 상태다. 황씨는 작년 12월 신광순 사장을 상대로 주식양도대금지급청구 조정신청을 냈지만 김씨는 소송에 소극적이다.

오일게이트에 연루된 한 핵심 당사자는 “전대월씨가 지분 42% 중 14%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며 “이것이 문제가 돼 채권자가 투서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철도재단이 전ㆍ권씨의 주식인수 대가로 120억원을 주기로 한 것은 권씨의 주장대로 철도재단(특히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과 전씨 사이의 묵계일 가능성이 높고, 사ㅁ퓽?황ㆍ씨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허문석씨의 사라진 4.99% 대목은 그러한 ‘묵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이광재 의원측이 관련돼 있다”는 권광진씨의 주장이나 여러 정황에서 보듯 사할린 프로젝트에 이 의원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이 관례를 무시하고 계약금 620만 달러를 대출한 것이나 박상조 본부장이 서둘러 계약을 파기한 것 등이 이 의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그러한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오일게이트는 관련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면서 벌인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투서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사할린 프로젝트가 단순히 이권과 수익을 위한 사업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알파에코사와 유전 계약을 체결한 전대월씨는 대통령의 방러 일정에 따라 이광재 의원측과 수시로 연락을 취했고 주러 한국대사관은 대통령의 방러에 맞춰 알파에코사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최근 공개된 철도공사 회의록 등에는 범 정부 차원에서 사할린 프로젝트에 접근한 흔적들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투서가 단순히 전대월씨와 사채권자와의 이권 문제라면 철도공사가 계약을 파기할 이유가 없다. 설령 철도공사 관계자가 투서에 연루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방러, 나아가 남ㆍ북ㆍ러시아 간에 고도의 정치적 상징성을 띤 사할린 프로젝트를 깨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투서는 철도공사 관계자 이상을 겨누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즉 120억원 페트로사 주식인수 대가에 정치적 파문을 불러올 수 있는 인사가 개입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할린 프로젝트를 파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했던 인사는 과연 누구일까.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4-28 14:5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