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참패 이후 정국·정책주도권 상실, 계파간 대립은 심화정동영·김근태 장관 당 복귀설 솔솔, 위기 탈출 해법찾기 골몰

무기력증에 빠진 우리당, 투 톱 내세워 판 다시 짜?
재보선 참패 이후 정국·정책주도권 상실, 계파간 대립은 심화
정동영·김근태 장관 당 복귀설 솔솔, 위기 탈출 해법찾기 골몰


열린우리당 문희상(왼쪽 세번째) 당의장과 상임중앙위원들이 13일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외에서 최근 당 지지도 하락을 의식한 듯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손용석 기자.

“차라리 지난해 4대입법 정국 때처럼 집안싸움이라도 났으면 좋겠다. 너무 조용하다.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직자들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억지춘향으로 청계천비리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긴 했지만 언론도 봐주지 않고 내부에서도 의지가 충만한 건 아닌 것 같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실 관계자의 말이다.

집권여당의 총체적 무기력증은 원인이 복잡하다. 일단 ‘23대0’이라는 재보선 스코어가 지도부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원내과반 의석을 잃으면서 정국 주도권은 야당에 넘어갔고, 당정간의 정책 주도권도 정부측에 끌려가는 인상이 짙다. “국정을 주도하는 힘있는 여당”을 슬로건으로 내건 문희상호는 취임 한달만에 레임덕(권력 누수) 얘기까지 듣는 지경이 됐다.

재보선 참패는 순식간에 도미노 효과를 유발했다. 당 지지율은 지난해 총선 당시와 비교해 1년만에 반토막이 나 20.2%(5월 13~14일 한길리서치 조사)로 급락했다. 특히 20~30대에서 열린우리당의 초강세 현상은 옛말이 돼버렸고, 인터넷 이슈에서도 한나라당에 주도권을 내줘 이에 대한 ‘정체현상’을 점검한 내부보고서까지 나왔다. 재보선 참패 후 당을 추스르기 위해 구성된 혁신위원회 활동마저도 ‘난닝구(실용파)-빽바지(개혁파)’ 논쟁에 휘말려 감정싸움이 거듭되고 있고, 정당개혁의 요체로 자랑하던 기간당원제는 어떤 식으로건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문의장 임기 채울수 있을까
지도부의 권위도 말이 아니다. 원내대표간 합의사항이자 당론추인까지 받은 과거사법이 실제 표결에선 찬성표(59표)보다 반대 및 기권표(반대 51표, 기권 12표)가 더 많이 나왔다. 당론을 거부한 의원들 중에는 장영달, 유시민, 한명숙, 이미경 의원 등 4명의 상임중앙위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표결 후 정세균 원내대표가 대단한 서운함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외생 악재도 겹쳤다. 문희상 의장은 청와대 비서실장 당시 빚 변제 의혹으로 연일 구설수다.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참모 이광재 의원에겐 고의적 병역면제 의혹까지 제기됐다. ‘누더기’ 논란에 휘말린 과거사법 내홍이 가시기도 전에 김희선 의원은 부친의 친일행적 의혹이 갈수록 증폭돼 당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

당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요컨대 열린우리당의 무기력증은 “단순한 재보선 참패로 인한 후유증만이 아니라 지난해 총선 후 1년간 누린 과반여당의 콧대 높은 지위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생긴 중증”이라는 것이다. 하기에 “문희상 의장으로는 힘들겠다”는 말이 나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박근혜 대 문희상’ 구도로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현실적인 두려움도 깔려있다.

당내에서 문 의장이 2년의 임기를 다 채우리라는 시각은 거의 없다. 명분에서야 찬반이 갈리지만,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연내 당 복귀가 유일한 탈출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투톱’의 복귀는 곧 당내 대권경쟁의 점화를 의미하기에 어느 누구도 섣불리 제기할 수 없는 문제다. 당사자들로서도 내각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복귀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연내 당복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극히 낮다.

두 장관의 연내 복귀가 현실가능성이 낮고, 문희상 지도부의 위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당내 3대 세력으로 분류되는 실용파와 재야파, 개혁당파는 각기 다른 구상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특히 재야파와 개혁당파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문희상 지도부의 위기를 당내 역관계로 풀이하면 ‘실용파’의 위기이고, 실용파의 위기는 재야파와 개혁당파에겐 역전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재야파인 장영달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민정치연구회’는 5월 중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해 백령도에서 워크숍을 갖고 조직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재야파는 ?諍엽?순혈聆퐈??벗고 비운동권 개혁파 의원과 당원, 당직자까지 껴안아 대중성과 개혁지향성을 동시에 얻어내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에 유시민 의원의 주력부대인 ‘참여정치연구회’도 연구단체에서 탈피해 대중조직으로서의 재출발을 결의했다. 기간당원제 정착과 당의 개혁노선을 실현하기 위해 참정연을 발전적으로 해체한 뒤 6월 하순 새로운 대중조직을 발족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 혁신 둘러싼 갈등
이러한 움직임 속에 양측의 연대 논의도 심상치않게 나오고 있다. 참정연 모임에 재야파인 정봉주, 우원식 의원이 참석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 했고, 재야파의 다른 한 의원도 “6월 임시국회에서 재점화될 국가보안법 논쟁은 재야파와 개혁당파가 범개혁진영으로 결합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개혁파의 물밑 움직임을 경계하는 반대급부도 등장했다. 유인태 서울시당위원장 원혜영 정책위의장, 임채정 전의장, 김덕규 국회부의장 배기선 의원 등이 주축이 되고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 김영춘 임종석 우상호 의원 등이 핵심멤버인 소위 ‘코어모임’이 그것. 이 모임을 실용파와 직접적인 연관을 짓기는 무리가 있지만, 중도를 표방하며 개혁진영의 ‘좌충우돌’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의식은 뚜렷해 보인다. 문희상-정세균 체제의 리더십을 뒷받침 하는 것만이 열린우리당 ‘위기’ 탈출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4ㆍ30 재보선 평가와 당 혁신 방안을 둘러싼 갈등, 문희상 지도부의 리더십 상실, 정동영 김근태 장관을 정점으로 한 세력간 기세싸움이 뒤엉켜 열린우리당의 위기 탈출을 위한 해법이 쉽게 마련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게 당내의 관측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5-05-26 17:50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