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모시기 경쟁으로 인기 상종가2007 대권레이스 최대 변수로 급부상

고건, 열국의 땅서 대망을 품다?
정치권 모시기 경쟁으로 인기 상종가
2007 대권레이스 최대 변수로 급부상


‘장외 정치인’ 고건 전 국무총리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2007년 10월까지 살아남을 대통령 후보로 지목하기에는 아직 시간과 변수가 넘치지만 정치권의 ‘러브콜’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탄핵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다가 총리직에서 물러난지 1년만의 대변신이다.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는 “화려한 정치적 생명력을 가진 고 전 총리는 여권과 한나라당간 이념갈등 등 정치공방이 심화할수록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정치 지도자 등장을 바라는 국민여론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 정치구도 속에서의 ‘역할론’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고 전 총리가 신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현 자민련을 흡수하고 민주당과 협조체제를 갖춘 후 한나라당과 당대당 합당까지 도모하는 제휴관계를 끌어낼 것이라는 가설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제3후보론’이 떠나지 않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고 전 총리 영입의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현실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이 다수다.

한 핵심 당직자는 “고 전 총리를 영입하는 숙제보다는 그가 우리당으로 들어와 경쟁의 수순을 밟겠느냐는 현실적인 의문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우리당은 기본적으로 국민여론을 존중하는 선에서 차기 대선에 임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빅3 구도가 자리잡은 한나라당은 일단 적극적인 사인이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1일 박근혜 대표가 “당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좋은 분은 많이 모셔올수록 좋다”고 언급한 것.

상대적으로 당세가 약한 민주당과 자민련은 일단 고 전 총리에 대해 신중론을 펴고 있다. 크로스 보팅을 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신당이나 합당 등 대권 구도를 둘러싼 정계개편 논의는 아직 때가 아니다”면서, “내년 지자체 선거를 지켜본 뒤 결정해도 좋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보수성·안정감으로 여론조사 최상위
이처럼 고 전 총리에 대한 정가의 반응이 각양각색으로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고 전 총리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도는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이 지난 13일 실시한 ‘대선 예비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는 26.2%로 박근혜, 이명박 서울시장을 따돌렸다. 또 지난 4일 리서치앤리서치의 ‘열린우리당 차기대권 후보 선호도’에선 32.8%로 1위를 이어 갔다.

특히 ‘대통령 4년 중임제, 정ㆍ부통령제’ 개헌 논의와 맞물리면서 고 전 총리의 ‘값어치’가 올라가고 있다. 대선 예상 시나리오에는 ‘보수성·안정감’ 어필로 고건-박근혜 쌍두마차의 기세가 대단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가의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가운데 고 전 총리는 팬클럽 ‘고사모 우민회’에 이어 미니홈피 개설 등 사이버 정치에 주력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와 함께 대권 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의 수위도 높이고 있다.

올해 67세의 고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이 마지막 도전이다. 그동안 “국민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했지만 최근엔 구체적인 언급을 쏟아내는 등 ‘대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남쪽의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제가 세웠는데, 북녘 치산녹화 10개년 계획도 제가 세울 날이 왔으면 정말 좋겠다”, “5ㆍ18 당시 군사정권에 협조하지 않았다” 등 젊은 네티즌들과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것.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정치권에 뚜렷한 지지 세력이 없어 조기에 전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도권 출신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2~3년 전부터 일부 중부권 출신 정계 인사들이 고 전 총리의 캠프가 조직되면 합류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면서, “현재 정치 지도자로서 검증된 것이 아니라 관리형 각료의 이미지?어필하고 있어서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가 펼쳐지면 거품이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품론 속 향후 행보에 정치권 촉각
결국 고 전 총리는 정국 상황을 감안할 때 제3의 정치세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야 대권 잠룡들의 레이스엔 비빌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가 제3의 세력과 결합할 경우에는 한풀 기세가 꺾일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고 전 총리는 우리당과 한나라당 지지층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고 있어 제3당으로 출마하게 되면 그만큼 표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 전 총리에 대한 ‘거품론’, ‘경계론’이 정국구도와 맞물리면서 합종연횡의 정계개편 불씨를 남기고 있는 것은 현 정국 상황의 유동성 때문이다.

우리당은 올해 초 고위 공직자의 줄이은 사퇴와 유전개발의혹, 행담도개발 의혹 등 잇단 악재가 겹쳐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지난 4ㆍ30 재보궐선거에선 23대0이라는 기록적 참패 수모를 겪은 이후 집권당의 지지도는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박근혜 대표와 반박세력간의 갈등국면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대권 예비 주자들의 각축전이 미묘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 쟁쟁한 후보군들이 영남권과 소장파 의원들을 놓고 벌이는 팽팽한 경쟁은 압권이다. 게다가 중부권 신당과 호남 민심의 향배도 적지 않은 줄서기를 예상케 하는 대목이다.

우리당의 386 출신 의원은 “고 전 총리는 자신이 대권 주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내년 지자체 선거 전후로 각 당의 모시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당의 한 의원은 “고 전 총리는 원래 여권과 인연이 깊은 분이다. 참여정부 국무총리까지 지내지 않았느냐”며 은근히 희망섞인 심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야의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고 전 총리의 위상은 한참 뒤에 공식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가에서는 ‘고건 브랜드’의 가치는 정국의 갈등요소가 표출될수록 상승한다는 정설이 있다. 다시 말해 여야 대권 주자들의 가닥이 잡히게 되면 고 전 총리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최근 지인들과 저녁을 같이 하면서 “이번에 한번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다음 행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느냐에 따라 찻잔 속의 태풍이 될 수도, 메가톤급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1975년 전남도지사, 1981년 교통부 및 농수산부 장관, 1985년 민정당 국회의원(12대), 1987년 내무부 장관, 1998년 서울시장, 2003년 국무총리… 그의 다음 자리는 무엇일까.


서울신문 최진순 기자


입력시간 : 2005-06-02 17:56


서울신문 최진순 기자 soon69@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