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강행땐 무력충돌 가능성 높다중국 "대만 복속 프로그램에 걸림돌" 인식북핵제거 초강수에 북한 반발…"최종 해법 중국에 달려" 시각

북핵문제 본질은 '북·중 갈등'
핵실험 강행땐 무력충돌 가능성 높다
중국 "대만 복속 프로그램에 걸림돌" 인식
북핵제거 초강수에 북한 반발…"최종 해법 중국에 달려" 시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지난 2월 10일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이후 현재까지 그 파장이 그치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는 지금까지 주로 북한과 미국간의 치열한 줄다리기로 비쳐져 왔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중국의 불협화음에 있다는 분석이 최근 부각돼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복속시키려는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사전에 걸림돌이 되는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 초강수를 두었다가 역풍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이 순차적으로 강경 액션을 취한데 대해 북핵의 실질적 이해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이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하면서 현재까지 ‘긴장’의 파고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얘기다.

이에 따라 북핵 딜레마의 해법은 궁극적으로 중국에 달려있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판단이다. 미국은 북핵에 반대하면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를 저울질하며 한 발짝 물러나 있고, 6자 회담의 아웃사이더격인 한국과 일본, 러시아는 3각(북한-중국-미국) 게임을 예의주시하며 적절한 보폭을 취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방북이 재추진되고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시나리오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중국의 원유 공급중단에 4월 춘궁기(春窮期)를 거치면서 응어리진 분이 풀리지 않은데다 일단 빼어든 칼(핵 보유 선언)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북한과 중국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대만 정책으로부터 비롯됐다.

중국은 올 초 확고한 후진타오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따라 대만을 복속시키려는 계획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대만이 2기 천수이벤(陳水扁) 체제 출범 이후 독립을 노골화하자 3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대만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반국가분열법안을 압도적인 지지로 표결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 "해볼테면 해보라" 강경 입장
그러나 북한 핵이 문제였다. 북핵은 대만이 핵을 보유할 수 있는 가장 큰 빌미가 될 가능성이 있고 만일 대만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핵을 둘러싼 중국-대만 문제에 UN이 개입하게 된다. 그럴 경우 중국의 대만 복속은 물건너가는 것이 되고 나아가 중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중국은 이런 우려에서 대만 복속에 장애가 되는 뇌관(북핵)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북한의 ‘생명줄’이기도 한 에너지와 식량 지원 중지 카드를 빼들었다. 중국은 이를 결행하기에 앞서 작년 중순부터 일부씩만 보내주며 그해 9월 리장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평양에 보내 중국의 뜻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은 10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해볼테면 해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한달 뒤인 11월, 중국은 단둥(丹東)에서 서평양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통한 기름 공급을 중단했다. 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파종을 위한 기름이 절실한데도 중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중국과 대만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정면승부를 띄었다.

2월 10일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무기 보유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 북한이 강수를 둔 이면에는 러시아의 기름 지원도 한 몫 했다. 2000년 7월 김정일-푸틴간의 북ㆍ러 정상회담에서 마련한 초안을 바탕으로 2003년 극동 러시아를 중심으로 경제 교류와 에너지 산업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한 ‘라손’이라는 조직이 올 2월부터 북한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북한의 폭탄선언에 다급해진 쪽은 중국이었다. 왕자루이(王家瑞) 대외 연락 부장을 대표로 한 중국공愿?대표단이 2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3월 23일엔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나섰다.

그러나 북한은 박봉주 내각 총리가 3월 말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북핵은 국가 자위에 관한 문제이니 관여하지 말라’는 내용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종래 입장을 확고히 했다.

북한은 나아가 4월 18일 영변 5MW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실력 행사에 나섰고 5월 7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에 걸맞은 조선의 행동계획은 이미 책정돼 있다”며 은근히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나흘 뒤인 5월 11일 “8,000개의 ‘사용후 핵연료봉’ 인출을 끝냈다”고 발표, 핵실험 강행 의지를 보였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북한은 1998년 파키스탄에서 핵실험을 한 적이 있고 미국 위성 감시망에 의도적으로 드러낸 함경북도 길주의 지하 동굴과 같은 곳이 여러 군데 있다”며 “중국의 태도 변화와 미국을 겨냥해 지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지대 긴장고조 분위기
중국은 북한의 움직임에 긴장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한 고위관리는 최근 “북한이 만약 핵실험을 할 경우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그런 행동에 반대하며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도 5월 23일 중국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실험 여부는 중국도 결정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핵실험 준비가 구체화될 경우 중국이 직접 대북 영향력 행사를 통해 중단시킬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처럼 핵실험을 강행하려는 북한과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막겠다는 중국이 충돌하면서 실제 핵실험이 현실화될 경우 북한과 중국 간에 무력 충돌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최고위층과 선이 닿아 있는 중국 동포 K씨는 “지난해 말 중국이 기름 공급을 중단하면서 북ㆍ중 간에 긴장이 고조돼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요녕성(遼寧省) 인민해방군 14만명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ㆍ한국의 구정에 해당하는 명절)에 휴가를 못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되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K씨는 “중국은 북한내 임가공, 광업, 수산업 등 전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한 상황이고 중국인들도 상당수 들어가 있어 북ㆍ중 간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자국 재산과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국경을 넘어갈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초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이나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이 재추진되고 있는 것은 ‘충돌’ 분위기를 완화시키려는 신경전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후 주석의 방북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약속 받으려 하고 미국에 협조를 요청한 반면, 북한은 중국에 침묵한 채 미국에게 체제 보장과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3각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포기를 강요하는 미ㆍ중과 “핵은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북핵 딜레마는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K씨는 “북한에서 군부의 입김이 강해질수록 핵실험 강행과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이 북핵 문제는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맡기고 경협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과연 남ㆍ북한이 어떠한 선택을 할 지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6-02 18:0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