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불협화음 전방위 확산, 자중지란 속으로

우리당, 갈등의 바다에서 허우적
당·정·청 불협화음 전방위 확산, 자중지란 속으로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 사퇴로 큰 충격파를 던진 가운데 6월8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문희상 의장(오른꼭)과 정세균 원내대표(가운데)등 지도부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연합>

여당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그간 실체도 불분명한 ‘실용 vs 개혁’ 논쟁으로 허송세월했던 열린우리당은 최근 정책협의 문제 등을 두고 청와대ㆍ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더니 급기야는 당내 계파간 감정싸움까지 벌이다가 당 지도부의 한사람이 사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어느 계파도 난관을 타개할 만한 능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당대회 두 달만에 지도부 휘청
표면적으로 여당은 이미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산업ㆍ건교ㆍ정보통신분야를 총괄하는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이 지난 4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실효성을 문제 삼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가 문제”라고 비판하자 친노 직계인 서갑원 의원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감정 섞인 비난을 퍼붓는 등 당내갈등이 감정싸움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4월 2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당 지도부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분란이 가중되는데도 문희상 의장은 ‘단합’과 ‘헌신’만을 강조할 뿐이고,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은 7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당의 혁신의지가 부족하다”며 사실상 ‘실용 vs 개혁’ 논쟁을 또다시 촉발시키는 등 외곽정치에 나섰다. 게다가 이해찬 총리의 ‘측근 발호 경계’ 발언에 대해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했던 염동연 상임중앙위원은 8일 갑작스럽게 사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다.

이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도부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지도부라면 당연히 뭔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텐데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한 중진의원도 “당내갈등이 깊어지는데도 대책은 세우지 않고 도리어 당 바깥에서 당을 욕하거나 ‘나 몰라라’ 하고 사퇴하는 저런 지도부는 지도부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 계파들도 지리멸렬
평소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주장을 펼쳐오던 당내 각 계파들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당대회에서 문 의장과 염 상중위원을 적극 지원했던 구 당권파 의원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전병헌 대변인조차 염 상중위원의 사퇴 배경을 묻는 질문에 “그냥 알아서 생각하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할 정도다. 한 중진급 의원은 “문 의장은 탁월한 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염 위원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느냐”며 “이들을 당 지도부로 적극 지원해준 우리가 지금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친노 직계 그룹은 당내 갈등을 수습하기보다는 감정대립에 앞장서는 듯한 모습이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에 극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참여연대 소속의 정청래 의원은 정장선 위원장에 대해 “내부를 향해 총질을 하고 있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고, 의정연구센터의 한 초선의원은 “무슨 일만 있으면 무조건 대통령을 탓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개혁당 그룹의 경우 최근 잠잠해지고 있는 ‘실용-개혁’ 논쟁을 촉발시키는 데 골몰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참여정치연구회의 한 핵심의원은 “당내 분란은 실용주의에 매몰된 지도부 때문”이라며 “염 위원의 사퇴는 결국 민주당과의 합당을 염두에 둔 기간당원제 흔들기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의원은 “실용진영에 대한 공세를 늦출 경우 우리가 당할 것”이라는 말로 위기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상임중앙위원이 6월8일 당사 기자실에서 상임중아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

재야파 “정체성 찾기 노력 물거품 될까 우려”
재야파는 장영달 상중위원이 의장직 승계 1순위에 오르면서 당내 비중이 커졌지만 오히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칫 ‘실용-개혁’ 논쟁이 재연될 경우 혼란을 부추기고 주도하는 세력으로 비판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정치연구회 지도위원인 한 중진의원은 “당분간 지켜볼 생각”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런 가운데 재야파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우리당이 5월 말 무주 워크숍에서 지난 1년간 기간당원제를 놓고 추상적인 ‘실용-개혁’ 논쟁을 벌인 것을 반성하며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 구체적인 민생ㆍ경제분야의 정책생산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결의가 이번 논란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재야파는 무주 워크숍 직후인 지난 3일 당정청 워크숍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분배를 또 다른 성장잠재력으로 보고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자고 제안했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워크숍에서 “국민소득 1만 달러일 때 선진국의 복지예산 비율은 16~18%였는데 우리는 8.7%에 불과하다”며 복지예산 확충을 강조한 것, 장 상중위원이 7일 대정부질문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 양극화는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야파는 이 같은 ‘성장-분배’ 논쟁은 정책과 관련된 생산적 논쟁이고 당의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들이 ‘성장과 분배의 선(善)순환’이라는 이론적ㆍ정책적 공감대를 갖고 있어 콘텐츠면에서 다른 계파보다 낫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우원식 의원은 “최근의 당정ㆍ당청ㆍ당내갈등의 와중에 ‘실용-개혁’ 논쟁이 또다시 불거질 경우 당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시민 희생양’ 만들기 주장도
이처럼 당 지도부는 물론 각 계파들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당내 일각에서 ‘유시민 상중위원 책임론’이 흘러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껏 기간당원제를 ‘절대선’인 것처럼 과포장해 불필요한 당내 논란을 부추긴 핵심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의 일원이지만 다른 지도부는 물론 상당수 의원들로부터 비토당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한 때 탈당까지 고려했던 염 상중위원이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삼은 인사가 이 총리와 유 상중위원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 같은 ‘희생양 만들기’는 또 다른 감정대립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우리당의 계파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경우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유 위원에 대한 비토가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직결된다는 점 때문에 적극 방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얘기가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 친노 직계 내에서 나오고 있는 게 바로 우리당이 처한 현실이다.


양정대 기자


입력시간 : 2005-06-16 14:36


양정대 기자 torc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