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후보 당내 경선 본격화 땐 전혀 다른 양상 펼쳐질 것""빅3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일 뿐"…정책정당 탈바꿈에 보람

[인터뷰] 취임 100일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대권후보 당내 경선 본격화 땐 전혀 다른 양상 펼쳐질 것"
"빅3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일 뿐"…정책정당 탈바꿈에 보람


무대에 서보지 못한 채 대사만 외워온 한 배우가 있었다. 그는 무대 위를 빛내기 위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객석에서 괜히 소리를 내질러 조명 받는 염치 없는 짓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대사를 외우며 무대 위에 설 날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 위에 섰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다.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주연배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역시 강재섭”이란 말이 나온다. 봉숭아 학당처럼 시끄럽던 당을 추슬렀고, 회기 중에도 여당을 압도하며 이슈를 선점했다.

4ㆍ30재보선 승리 뒤의 한나라당엔 차분히 박근혜 대표를 ‘내조’해온 강 대표가 있었다. 그는 한나라당의 계속된 변화를 채찍질 하며 더 큰 무대를 꿈꾸고 있다. 19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강 대표를 만났다.

정책 생산하는 용광로 정당 만드는 게 꿈
-원내 대표를 맡은지 100일이 됐다. 제일 잘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낙태정당, 불임정당, 봉숭아학당이란 한나라당의 오명을 걷어내고 싶었다. 국민들 일각의 불안을 해소하고 수권정당이 되도록 만들고 싶었다. 정책 생산하는 용광로, 제철소 만드는 게 꿈이었다. 국민들에게 남는 것이 있는 국회로 만들고도 싶었다. 4월 국회 거치면서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는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국회의 모습도 어느 정도 변화가 시작됐다고 자평한다.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

-사안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처로 이슈를 선점해왔다는 호평이 많다. 원내대표 준비를 꽤 오래 한 모양이다.
“무대 위에 올라가 주연 역할을 하기 위한 준비는 오래 전부터 해 왔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해 왔는데 기회가 없어서 대사만 외워왔다. 모처럼 기회가 찾아왔으니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100일 동안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새벽 5시면 눈이 떠지더라. 내가 원래 ‘저녁형 인간’인데 업무 때문에 그냥 눈이 떠진다. 밤이 깊어도 자려니 아깝더라. 연구하고 여기 저기 전화하고…너무 즐겁다. 의원들이 강 대표가 사심 없이 열심히 잘 한다고 호응해 주니 더 신이 난다.”

(이 대목에서 강 대표의 외아들 얘기를 꺼냈다. 그는 선천적 척추분리증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아버지에게 누가 되기 싫다며 해군 육군 등에 자원했다가 거절당했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고 8월 제대를 앞두고 있다.)

-아들이 희생한 것인가.
“사람들이 자꾸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 자기가 자원했다. 이 사회가 인민재판하는 것 싫은데…. 그래도 내 도리는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스스로 풀었다. 아들한테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정치 하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피해 받는 걸 지가 풀어준 건데….”

-최근 당이 시끄럽다. 맥주병 투척 사건으로 곽성문 홍보위원장이 사퇴했고 전여옥 대변인도 대졸대통령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호사다마 아닌가. 날씨 좋으면 비 오고 그러는 거다. 다시 심기일전해 잘 하면 된다. 다만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

-당 혁신위원회의 안이 거의 확정됐다. 실질적 집단지도체제 도입, 당권ㆍ대권 분리 등 혁신안 일부 내용이 당내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나.
“혁신위도 좋고 수투위도 좋고 소장파도 좋고 노장보수우익강경파도 좋다. 한나라당 안에서 시끄럽게 얘기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 관심을 끌 것 아닌가. 아무리 ‘애모’라는 노래가 듣기 좋아도 계속 그 노래만 들으면 싫증 나는 것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자꾸 시끄러운 얘기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은 조용조용히 하자고 해서 공룡 같?몸을 운동신경도 없이 끌고 다니다 대선에서 진 것이다. 지도체제는 어떤 체제가 되든 공감대 형성해 만들면 된다. 임기 보장된 사람을 억지로 끌어 내려 체제 바꾸자고 할 필요가 없다. 당시에도 혁신하자고 만든 체제 아닌가. 재보선서 이긴 체제를 뒤흔들어 임기도 못 채우게 하고 다시 뽑을 필요 없다. 너무 나가면 권력 투쟁 한단 오해 받을 수 있어 그럴 필요 없다. 혁신위가 뭘 내놓으면 ‘흔들기’라고 무조건 반대한다든지, 혁신위도 흔들려고만 들면 안 된다. 모든 것 열어 놔야 한다. 정치가 살아 움직이는 건데 꽉 막혀서 할 필요 없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권 얘기를 꺼내 살짝 시비를 걸었다.)

-당내서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를 빅3라고 한다.
“아직 대선 레이스는 시작도 안 했다. 내년 지자체 선거 끝나고 당내에서 경선을 위해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뛸 때 보면 지금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자신하는 근거라도 있나.
“정치는 엄청나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정보통신 시대에 더 빨리 변하는 생물이다. 지금 몇 사람 얘기 하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다. 한국 축구에 박주영이 나와 결정적 역할을 하며 해결할 줄 누가 알았나.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만큼 대선은 드라마틱한 것이다. 골프로 말하면 마지막 18홀에 결정되는 드라마다. 지금은 마라톤으로 비유하면 운동장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지금 앞에 있다고 1등 들어가는 것 아니다.”

-현란한 비유를 구사하던데. 비유는 즉석에서 생각하나, 준비를 좀 하나.
“히틀러가 농담 했다는 말은 못 들었다. 처칠은 노상 농담하는 사람이었다. 거물 정치인일수록 이 사회에 밝음을 줘야 한다. 정치는 남에게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해 공감대를 이루는 작업이다. 연구한다고 되는 것 아니다. 태생적으로 밝게 살고 주변과 잘 어울리는 자질이 있어야 한다. 신문 보다 맘에 드는 구절은 찢어서 쌓아둔다. 좋은 말 들으면 외운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얘기하고 쉽게 풀려고 노력한다. 복잡한 용어 써서 말하는 사람 치고 단수높은 사람 못봤다.”

-최근 당내 한 인사가 강 대표를 포스코 주식에 비유했더라. 결국 강 대표가 대중성이 약하다는 얘긴데.
“잘 본 거지. 포철은 철강을 생산해 선박회사 등에 납품하니 일반 대중들은 포철 이용을 안 한다. 일반 소비자들은 포철이 고마운 줄, 유용한 줄 모르는 것이다. 포철처럼 유익한 철강을 생산해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니 고맙지. 소비자 전달은, 제가 본격적으로 장사 시작하지 않아 못한 것이다.”

-장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상황이 달라지나.
“그렇다.”

-같은 TK출신인 박근혜 대표 때문에 결국 손해가 많지 않나.
“그런 것은 없다. 지금 한나라당 지도부(박근혜 대표, 강재섭 원내대표, 맹형규 정책위의장, 김무성 사무총장)는 황금의 조다. 같은 대구 출신이어서 TK 정당 우려했는데 지금 그 얘기하는 사람 없다. 우리끼리 시샘하고 다리 걸고 하는 일은 없다.”

(그는 야구와 관련된 비유를 즐겨 쓴다. 원내대표에 나오면서 구원투수론을 내세웠다. 운동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보러도 많이 가고 운동도 좋아한다. 운동신경이 좀 있다. 당구 볼링 골프 테니스 등등 한번 하면 뿌리를 뽑았다. 중학교 때 배구선수도 했다. 정치도 운동신경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운동신경이 없어 순발력 있게 대처 못하고 이슈를 선점 못해 대선ㆍ총선에서 진 것이다. 한나라당을 가볍게, 그러나 촐랑 대거나 경솔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이 많이 변했다고 하고 강 대표는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 차이점은 뭐냐.
“박 대표가 한나라당은 꾸준히 변화했고 99번 치면 100번째 부서지는데 이제 망치로 마지막 한 번 치는 게 남았다고 말했다. 결국 내 말도 같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매일 바뀌어야 한다. 상당히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변화 상당히 됐다는 것 자체가 사람 김 빼는 얘기다. 더 변화해야 한다고 늘 얘기해야 한다.”


정치부 이동훈기자


입력시간 : 2005-06-23 14:03


정치부 이동훈기자 d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