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직격탄 맞고 주미대사서 낙마, 유엔총장·큰 꿈 수포로

[X파일] 홍석현의 야망, '도청게이트'에 지다
X파일 직격탄 맞고 주미대사서 낙마, 유엔총장·큰 꿈 수포로

홍석현 주미대사가 7월 26일 사임했다. 주미대사로는 취임 5개월 3일만의 최단명 낙마다. 그 전만해도 홍 대사의 미래는 장미빛으로 비쳐졌다. 화려한 집안 배경과 거대 언론사의 오너, 게다가 주미대사까지 역임해 그의 다음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홍 대사 스스로 “UN 사무총장이 목표”라고 했지만 일각에서는 “진짜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그러나 안기부 X파일이 공개되면서 그의 꿈은 빛바랜 청사진이 됐다.

X파일에는 홍 대사가 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삼성의 돈 심부름을 직접 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을 개인의 야망에 이용한 홍 대사의 부도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홍 대사와 가까운 지인들은 “홍 대사가 겉으로는 겸손하지만 상당히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중앙일보 출신의 한 공직자는 “홍 대사가 94년 중앙일보 대표이사에 취임 한 후 ‘제2 창간’을 선언, 사세확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정치적 야망을 드러낸 적이 있다”면서 “그것을 97년 대선에서 실행에 옮긴 것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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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련은 지난해 12월 홍 대사가 주미대사로 내정되자 “그는 97년 대선에서 특정 정당과 후보의 기관지 이상의 노릇을 해 중앙일보가 언론이기를 포기하는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만약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그는 이회창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가 됐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이회창 총재가 완벽하게 지배했을 한나라당의 2002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섰을지도 모른다”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언론개혁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7월 23일 서울 중앙일보사앞에서 홍석현 주미대사 사퇴와 중앙일보 각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언론단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X파일 후폭풍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앙일보의 보도 행태도 파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른바 ‘홍석현 구하기’ ‘물타기식 보도’가 그것. 중앙일보는 파장이 일기 시작한 초기에는 불법 도청과 보도의 위법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자사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7월 25일자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라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나 내용은 과거 정권과의 부적절한 유착관계에 대한 변명과 도청의 불법성을 부각하는 데 비중을 뒀다.

게다가 이날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조선동쐽옥仄?제정신 아니야…역겨워’ 제목의 3면 톱기사 등을 게재, 사설과는 다르게 중앙일보의 속내가 ‘사과’보다는 ‘역공’에 있음을 의심케 했다.

중앙일보 '물타기식 보도'로 일관
중앙일보의 자기방어적 보도행태는 다음날에도 계속돼 안기부 X파일의 파문은 키우되 그 초점이 홍 대사를 비켜가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났다. 1면 ‘천용택 테이프 등 폭로, 협박’ 제하의 기사는 테이프의 내용보다 천용택 전 국가정보원장과 안기부에서 비밀도청을 전담한 미림팀장 공운영 씨와의 커넥션에 초점을 맞췄다.

4면 하단에는 ‘중앙일보-삼성-이회창 중 하나 겨냥 누군가 고의로 테이프 흘린 듯’ 이란 제하의 기사를 배치, 전날에 이어 '음모론' 을 부각시켰다. 이후에도 중앙일보는 자사의 입장을 강변하거나 타 언론사도 나을 것이 없다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 주최로 열린 ‘X파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불법도청이 아니라 '진실의 힘'에 있다”면서 “X파일의 진상은 불법 대선개입과 도ㆍ감청, 권언유착과 정경유착의 의혹을 밝히는데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아울러 중앙일보의 반성을 촉구하며 홍 대사의 중앙일보 복귀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날개 꺾인 홍석현, 그리고 중앙일보

홍석현 주미대사가 중앙일보와 공식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다. 홍 대사가 언론에 발을 들여놓은데는 동양방송 사장과 중앙일보 사장ㆍ회장을 역임한 부친 홍진기(86년 작고) 씨의 영향이 크다. 홍진기 씨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87년 작고)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홍진기 씨는 중앙일보 사장이던 68년 일본과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가 됐을 때 경영수업을 시켰다. 나중에 그의 장녀 홍라희 씨가 이 회장과 결혼하면서 처남인 홍석현 대사와 이 회장의 관계도 특별해진다.

홍 대사는 미국 유학 후 청와대 재무장관 비서관(83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85년), (주)삼성코닝 상무(86년)ㆍ전무를 거쳐 92년부터 부사장으로 있다 94년 3월 중앙일보 대표이사를 맡았다.

홍 대사가 취임 후 단행한 첫 작업은 ‘물갈이’로 사장부터 전무 상무까지 주요 임원을 모두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의 배려로 3,4명의 삼성그룹 간부들이 중앙일보로 갔으나 대부분 돌아갔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송필호 대표이사다.

홍 대사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94년 3월 21일을 ‘제2창간일’로 선언, ‘초일류언론’을 목표로 제시한 뒤 조직과 지면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팀제를 실시하고 가로쓰기 편집과 조간화 및 섹션화 등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 하지만 판매에서 공격적인 전략을 시도, 지나친 무가지 살포 등 유통질서를 어지럽히고 과당경쟁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계의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홍 대사는 안기부 X파일에 나타났듯 97년 대선 과정에 깊숙이 개입, 자신은 물론 중앙일보에도 치명타를 입혔다. 홍 대사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섬에 따라 중앙일보는 당시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이인제 후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이회창 대 김대중 후보의 양자 대결구도로 몰고가 간접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또 정치부 기자가 이회창 후보를 위한 전략보고서를 만들어 이 후보측에 전달했는데 당시 이 내부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이인제 후보가 소속된 국민신당에서 홍 대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미디어왕국 건설을 꿈꾸던 홍 대사는 99년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보광그룹을 탈세의 창고로 악용한 혐의로 구속돼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후 조심스럽게 재기에 성공, 주미대사까지 올랐지만 이번 안기부 X파일 건으로 더 이상의 비상은 불가능하게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홍 대사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중앙일보 역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04 16:59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