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의중은 민노·민주와의 소연정" 해석, 정기국회 중반쯤 가닥 잡힐 듯

대연정,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다?
"대통령 의중은 민노·민주와의 소연정" 해석, 정기국회 중반쯤 가닥 잡힐 듯

열린우리당 내에서 ‘소리없는’ 정체성 논란이 한창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7월 28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大聯政)을 공식적으로 거론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금은 X파일 쓰나미에 휩쓸려 파열음이 적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동정부 구성의 주체로 한나라당을 지목한 데 대한 반발과 혼선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ㆍ민주당과의 개혁진영 소(小)연정 구상이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견해도 확산되고 있어 주목된다.

“한나라당과 한 배를???”

노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이 나온 뒤 열린우리당은 외견상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하며 적극 지지한다”는 것이었지만 속으론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일차적인 반발은 “수구ㆍ보수집단인 한나라당과 한 배를 타자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주로 계파와 관계없이 소장그룹을 중심으로 두드러졌다. 개혁진영의 초선이면서도 발언권이 상당한 L의원은 “대통령이 지금 제 정신인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재야파의 핵심멤버인 우원식 의원도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엄연히 뿌리가 다르고 현재의 정치적 입장도 다르고 지향하는 사회의 미래상도 다르다”며 “도대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할 생각이라면 우리가 뭣 때문에 그 고생하면서 정권교체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당권파인 바른정치모임에 소속된 한 재선의원 역시 “지금까지 사사건건 참여정부와 여당의 발목을 잡아온 한나라당과 싸운 게 정치적 쇼였단 말이냐”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지역별로는 호남측 의원들의 동요가 상당했다. 전남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을 왜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고 지역민심을 전했고, 광주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한 구애는 호남을 배신하겠다는 얘기”라고까지 말했다.

당직자들, 특히 대변인실과 원내대표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열심히 적을 향해 함포를 쏘아대고 있는데 선장이 ‘우리 편이야’ 하고 말리는 꼴”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물 건너간 대연정?

다소 격정적인 이 같은 반응은 이튿날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기점으로 누그러졌다. 노 대통령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이라고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여당은 최소한 겉으로는 한 목소리로 한나라당을 향해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연정’에 대한 찬반, ‘선거구제 개편’의 이해관계, 나아가 개헌논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혼재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들 주제에 대한 각 당의 산발적인 주장과 비난까지 겹쳐지면서 여당 내부의 분위기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여당 지도부는 연일 한나라당을 향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선거구제 개편에 나서지 않는다면 지역주의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기자회견을 통해 대연정 제안을 일축했고, 당장은 선거구제 개편에도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해온 민노당의 호응으로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연정은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당 지도부는 대연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불씨를 살리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논의 자체를 외면하는 기류가 적지 않다. 한 중진의원은 “당초부터 가능성 없는 얘기로 불필요한 논란만 야기시킨 만큼 설화(舌禍)에 가깝다”고 쏘아붙였다.

靑ㆍ지도부에 대한 불만 증폭

열린우리당은 12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노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당내 의견을 수렴하는 첫 회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청와대의 일방통행과 당 지도부의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거센 비판이 그것이다.

전남도당 위원장인 유선호 의원은 당 지도부를 겨냥했다. “당의 총의가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의장은 한나라당에 총리직을 제시하고 연정을 제안해 당원들과 당의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도 “아무리 대통령이 얘기했다지만 형식적인 의견수렴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연정 지지를 선언한 것은 결국 당을 청와대의 거수기로 만드는 꼴”이라고 일갈했다.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발언들도 쏟아졌다. 당내 386세대의 대표주자인 송영길 의원은 “치밀한 논의도 없이 대통령이 편지를 써서 제안하는 방식은 문제”라며 “우리당은 대통령의 사당(私黨)이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당직자는 “당정분리를 외쳤던 대통령이 우리당에게 한나라당과의 연정에 나서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12일 중앙위 소집과 8월 중 의원총회 개최 방침을 내놓은 당 지도부의 걱정이 적지 않다. 야권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 당내에서마저 논란이 커질 경우 노 대통령의 제안 자체가 희화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은 小연정”

최근 들어 대연정 논란은 X파일에 묻혀 버렸지만 여당 지도부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한나라당과의 대립전선이 다시 복구됐기 때문이다. 원내대표실 핵심관계자는 “당분간 ‘조용히’ 당내 의견그룹의 견해를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의 의중이 결국은 민노ㆍ민주당과의 ‘사안별 연대정치’를 추구하는 소(小)연정에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나라당이 거부할 것이라는 점을 노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는 추론과 함께 친노직계 그룹이 작성한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이라는 82쪽 짜리 문건이 그 근거다.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이 문건은 한나라당과는 의회정치 차원에서의 ‘협력정치’만을 요구한 반면 민노ㆍ민주당과는 ‘3당 개혁정책연합’ 형성과 수위 상승을 촉구하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 비정규직 법안 양보 등 ‘당근’도 제시돼 있다. 당내에서는 ‘편지 정치’를 통한 정치적 아젠다 제시, 야당 대표들에게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등 현안에 대한 협조 요청, 언론사 간부 등 사회 지도층과의 연쇄접촉, 정부의 배려를 통한 여당의 당정협의 주도권 확보 등 노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가 사실상 이 문건에서 제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소연정이 하나의 가설만은 아닐 것이라는 얘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여당이 연정에 대한 단일안을 내올 수 있을지 등은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연정 문제는 최소한 정기국회 중반께 3차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될 즈음에는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혼란은 이 때를 대비한 진통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양정대 기자


입력시간 : 2005-08-11 14:55


양정대 기자 torc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