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등 소문 난무하며 정치권 아수라장, 여야 무풍지대 없어

X파일 후폭풍…누가 더 다칠까
음모론 등 소문 난무하며 정치권 아수라장, 여야 무풍지대 없어

한여름 정국이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자료(안기부 X파일)라는 먹구름에 휩싸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사이사이로 ‘음모론’과 미확인 소문까지 난무, 정치권은 아수라장이다.

그에 앞서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으로 한때 들썩였으나 요즘은 X파일에 밀려 주춤한 상태다. 다만 수면 아래서 여진이 계속되고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뇌관으로 남아 X파일 정국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정치권은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우려해 판도라의 상자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 채 각기 다른 해법을 갖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특별법에 맡기자고 하는데 반해 야 4당은 특검법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특검법에 대한 한나라당 내부의 ‘위헌’논란과 야 4당의 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파일 공개와 범위를 놓고 여야가 맞서면서 X파일을 둘러싼 한랭 전선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특별법이든 특검법이든 X파일에 대한 수사와 공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여서 후폭풍에 따라 여야 각 당과 개인,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2007년 대선 주자 및 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까지 공개된 X파일은 이른바 ‘이상호 파일’과 안기부 불법도청팀 ‘미림’팀장인 공운영 씨 자택에서 압수된 700여 개가 전부다.

X파일 정국 초기, ‘이상호 파일’에 나타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이회창 전 총재)와 삼성, 중앙일보의 커넥션이 부각돼 한나라당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게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 ‘미림’팀의 도청 실태와 오정소 전 안기부 차장과 YS 차남 현철 씨의 연계성, 나아가 YS에 대한 보고 여부 등이 쟁점이 되면서 문민정부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은 ‘도청 원조당’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한나라당에 김무성 사무총장,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 등 YS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고, 유승민 비서실장, 고흥길 의원 등 이회창 사람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것도 부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공운영 씨를 통해 유출된 안기부 X파일이 재미동포 박인회 씨를 통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알려지고,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타일 게이트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국민의 정부 역시 도청 파문에서 지유로울수 없게 됐다. 더욱이 8월 5일 국정원이 “DJ정부 때도 불법도청이 있었다”고 시인함으로써 치명타를 입었다.

YS와 한나라당을 향하던 X파일의 칼끝은 자연스럽게 국민의 정부와 민주당으로 옮겨 갔다. 직격탄을 맞은 민주당은 “여권의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X파일의 대부분이 YS때 만들어진 만큼 DJ측 인사들에 관한 것이 많을 것으로 판단, 만일 X파일이 공개돼 DJ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이 타격을 입게 되면 호남 민심이 악화돼 자칫 고사되거나 여권의 합당 압력에 백기를 들 수 있는 것을 우려한다.

지난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연 병원에 입원하자 유종필 대변인이 나서 “노 대통령이 도청 발표를 통해 오랜 숙원인 DJ와의 차별화와 3김 청산의 좋은 기회로 삼으려 한다”고 비판한 것은 그러한 우려를 반영한 측면이 있다.

우리당은 X파일의 후폭풍에서 비켜나 있지만 무풍지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의원 상당수가 국민의 정부 출신인데다 호남 민심 악화로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에 적신호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은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호남 출신 의원들은 DJ가 X파일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자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구상에 이어 터진 국민의 정부 시설 불법도청 사실 공개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원까지 겹쳐 호남 민심 이탈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강기정 의원은 11일 “호남인 들에게 최근 일련의 사태는 호남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는 듯한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같다”며 “국민의 정부 시절 불법도청을 왜 문민정부 시절 ‘‘미림팀’과 같은 선에 놓고 발표했냐는 불만도 크다”고 지역 정서를 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진실’을 밝힌다는 차원에서 X파일에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노 대통령은 9일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청산 차원에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면서 “(도청이라는) 국가 불법행위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되 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에 대해 “도청은 군사독재의 불법적 도구이고 정경유착은 군사독재가 만?불법적 구조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면서 “과거청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X파일을 공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 ‘연정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즉 X파일은 YS 때와 DJ 때 자행된 만큼 그 대상은 정치인의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이 대부분이고 초선이 다수를 이루는 우리당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내년 지방선거나 2007년 대선을 계기로 정계개편이 일어날 경우 X파일과 무관한 개혁세력들이 연대, 지역을 넘어선 새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특별법으로 다루느냐, 특검법으로 다루느냐도 후폭풍의 강도를 달리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X파일의 70% 정도가 DJ에 관련된 것인 만큼 특검이 수사(또는 조사)하고 결과도 특검이 공개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특검이 수사를 하되 공개는 파장을 우려, 제3의 특별기구에 맡기자고 한다. 우리당은 특별법으로 수사를 하고 공개 역시 제3의 특별기구에 일임하자는 입장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과 생존을 위해 머뭇거리는 정치권 사이에서 판도라의 상자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16 17:15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