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를 정치중심으로 복귀시켜라"연정·도청·과거사 등 공세적 이슈로 정치판 새로 짜기

임기 반환점 돈 참여정부 후반기 로드맵
"盧를 정치중심으로 복귀시켜라"
연정·도청·과거사 등 공세적 이슈로 정치판 새로 짜기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야당과의 대연정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8월 25일로 임기 반환점을 돈다. 지지층의 지속적 이탈에 따른 지지율 하락, 경기 침체,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환경 등의 악조건 속에 시작될 집권 후반기에 노 대통령의 ‘반전’시도가 성공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집권 후반기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노 대통령의 정치 복귀’로 요약된다. 4ㆍ30 재보선 패배 이후 확산된 여권의 위기돌파 카드는 노 대통령이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의 주도권 행사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단연 연정론이 매개다. 7월 초 연정론이 처음 제기된 이후부터 노 대통령은 줄곧 정치의 중심으로 부각돼왔다.

당초 여권의 구상은 연정의 정치적 효과와 관련, “대야당 협력정치는 정국의 안정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야당의 대권주자를 관리하면서 정치적 타결 분위기를 통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언론, 검찰,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등)의 공간을 축소시키는 정치적 실익이 있다”고 기대했다.(5월말 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권 내부문건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

그러나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 3당의 거부방침이 확실시된 이후에는 연정의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의 정치 복귀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에 무게가 실렸다. 선거제도 개편 등 초당파적 아젠다를 노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함으로써 재보선 패배 이후 흩어진 지지세력의 재결집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성공하지 못해 대통령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라며 연정과 관련한 ‘정치협상’을 야당에 공식 제안한 것도 연정 성사의 가능성보다는 지속적인 정국 주도권 장악 시도로 읽힌다. 따라서 청와대발(發) 연정론은 어떤 식으로건 당분간 정치권을 맴돌 게 확실시 된다.

연정론이 정치환경 반전을 위해 정치적으로 기획된 것이라면, 또 다른 정국 현안인 과거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 사건은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 돌출형 현안이다. 그러나 성격상 전혀 관련이 없을 듯한 두 사안은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동반하며 차츰 한 카테고리로 묶여가고 있다. 이는 지역주의 청산이 화두인 연정, 과거 권력기관의 불법 도감청과 정경유착이 화두인 도청 사건이 모두 ‘구 정치세력과 절연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킨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8ㆍ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민ㆍ형사상 공소시효 적용 배제’를 언급한 대목도 기름을 부었다. 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이를 언급함으로써 군사정권은 물론 YS-DJ 정부의 핵심에 있었던 정치인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정치적으로는 정계개편의 시동걸기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행사를 마친 뒤 단상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최종욱 기자

그럴싸한 설도 돈다. 요지는 불법도청, 연정론, 과거사 정국 모두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치판을 새로 짜자는 목적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여권에서는 DJ 연계세력, 한나라당에서는 YS계, 이회창계를 무력화시키려는 ‘기획’이 있다는 것이다. 한발 나아가 권력구조 개편, 차기 대선주자 관리 등 집권 후반기의 주요 과제에서도 노 대통령의 주도권이 강화되는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는 설로까지 발전했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의 등장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것의 현실화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모든 민감한 쟁점의 중심에 노 대통령이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 구상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각종 정치사회적 개혁 의제를 재점화하고 이를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흐름에 맞춰볼 필요가 있다.

이는 최근 청와대 내부의 친정체제 구축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다. 당초 보수세력과의 완충적 역할을 기대해 발탁했던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는 상징적이다. 연정, 과거사 청산, 불법 도청사건 등 정치적 현안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 중심성을 적극 보좌해 줄 수 있는 ‘정치형’ 참모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김 실장의 퇴임은 자연히 청와대 내의 권력지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 동안 김우식 실장을 중심으로 윤태영 제1부속실장, 천호선 의전비서관, 김만수 대변인 등으로 구축된 ‘연세대 인맥’의 퇴조가 그것이다. 반면 ‘연세대 인맥’과 힘겨루기를 해온 ‘부산파’로의 힘의 집중을 의미한다.

이미 지난 12일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을 임명하면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청와대 인적 배치 구상의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상황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끄는 부산파에는 최인호 부대변인, 송인배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이정호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 등이 있다.

이에 따라 여권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맞아 부산파를 주축으로 한 측근 그룹을 전진배치,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연정과 불법 도청 사건 등 공세적 이슈를 강화해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5월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한 정권 재창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불법 도청사건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유전 게이트와 행담도 개발 사건 등 수세적 현안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 등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또한 집권 전반기에 ‘이너서클’을 허용하지 않아 의견그룹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해온 청와대가 권력의 집중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어떻게 차단할 것이냐도 관건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15:56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