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참배 등 잇단 파격 행보… '한·미공조 흔들기''남북 새틀짜기' 해석 갈려

北, 변화의지냐 위기타개 전술이냐
현충원 참배 등 잇단 파격 행보… '한·미공조 흔들기''남북 새틀짜기' 해석 갈려

8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예방한 북측대표 김기남(왼쪽 두번째) 단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최종욱 기자

북한은 정말 변했나. 8ㆍ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의 파격 행보에 뒤따르는 의문이다.

북측은 3박4일의 8ㆍ15 행사 기간 내내 관례를 깨는 이벤트를 잇달아 연출했다. 그들의 행보 앞에 ‘최초’라는 수식어도 여러 번 따라 붙었다.

북측 대표단은 14일 서울에 여장을 풀자마자 오후 3시 국립현충원을 방문, 현충탑에 묵념했다. 이튿날인 16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했고, 다음날에는 청와대를 예방해 노무현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했다.

북측의 ‘파격’은 대표단에 머물지 않았다. 13일 군사분계선 155마일에서 선전물을 들어냈고, 남측 해군사령부와 24시간 군사 핫라인을 가동했는가 하면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등 과거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졌다.

그 가운데 국립현충원 참배는 가장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10초도 안되는 짧은 묵념에 독립유공자에 대한 참배라고 했지만 6ㆍ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원 방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국회방문 등 잇따라 금기 깨 충격
그렇다면 북한은 정말 변한 것인가.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민족공조를 내세워 국면을 전환하거나 위기상황을 모면하려는 전술에 불과하다고 본다. 반면 북한이 실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국내외 여건상 변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광용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는 남북 관계를 진정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부를 흔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북한이 노리는 것은 4차 6자회담 휴회 중 한미 간 공조를 교란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길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를 큰 틀에서 바꾸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도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과거보다 진일보한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라면서 “금기였던 현충원 참배를 북한이 먼저 푼 것은 남북 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이며 이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 최고위층과 선이 닿는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 대표단이 현충원을 방문한 것은 남(남한)이 때려주지 못한 뺨을 스스로 때린 격”이라며 “북한이 변화하려는 데 대해 남한이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걸맞는 대응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변화 움직임은 지난해 9~10월 께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이 본격화되면서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 따라 대만을 복속시키려는데 북한 핵이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판단, 이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로 북한의 생명줄인 에너지와 식량 지원 중지라는 카드를 꺼낸 게 발단이 됐다는 것.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왼쪽) 통일부 장관의 오찬회동.

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리장춘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평양을 방문한 것도 그러한 중국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그해 10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수용 불가”입장을 밝히면서 북ㆍ중 관계는 급격히 악화, 급기야 중국은 11월부터 원유 공급을 중단하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올해 2월 10일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해 중국을 비롯한 6자 회담 당사국에 충격을 주었다. 동시에 에너지 위기는 러시아를 통해, 4월 춘궁기를 고비로 악화될 식량과 비료 문제는 남한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게 북한통의 설명이다.

북한이 지난해 7월 남북 회담이 중단된 이후 10개월 만에 5ㆍ16 개뵌릿施?나선 것이나 평양서 열린 6ㆍ15 5주년 행사에서 8ㆍ15 민족대축제에 이르기까지 광폭적인 남북 해빙무드에 동승한 것은 그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것.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지난 7월 남한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1990년 제정)에 해당하는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한 것은 향후 대남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북남경제협력법은 지난해 10월 께 북ㆍ중 관계 악화로 북한이 위기에 처할 것을 대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남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 부부장이 특수팀을 구성, 수개월의 연구 끝에 나온 산물로 향후 남북 관계는 경협을 매개로 급진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변화 의지와 폭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북한 대표단이 8ㆍ15 행사 중에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한 것은 그들의 ‘변화’의지를 일부러 선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도 “북한의 행보는 6ㆍ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을 계기로 남북 관계를 새롭게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경제난에, 대외적으로는 북핵 문제와 국제적 압박이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으므로 이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 남측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변화 의지와 폭 정확히 읽어야”
북미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남북관계 진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북한은 맹방으로 여겼던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유연한 대미 정책으로 돌아섰고, 남한은 김대중 정부 때처럼 중국에 경도되지 않아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있다. 외형상 한반도를 대중국 견제 전략기지로 바라보는 미국의 이해에 부응하는 양상이다.

지난달 30일 북한과 미국의 6자 회담 대표단이 베이징의 북한 식당에서 만찬을 한데 이어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7일 워싱턴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구상을 언급,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온 북한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북미간 데탕트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최근 북한의 일련의 행보는 과거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에서 벗어나 ‘통남통미(通南通美)’정책으로 전환한 듯한 모습이다.

국내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현충원 참배 등의 움직임을 볼 때 그간 난색을 표해 온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문제 등에서도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가 북한의 변화 흐름을 정확히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정동영 장관과 북한 김기남 단장 간의 경주 회담이나 북한 대표단의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한의 메시지가 전달됐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북한의 변화와 관련, 이달 말 재개되는 제4차 6자회담의 진전 여부나 앞으로 있을 장관급 회담,군사회담 등은 중요한 단초들이다. 북핵에 대해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북한 간에 시각차가 크고, 장관급 회담과 군사회담에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작용할 경우 남북관계는 급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변화’의지가 뚜렷하고,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남한이 거의 유일한 돌파구라는 현실, 북미 해빙무드 등은 남북관계 진전에 청신호로 여겨진다.

북한의 파격 행보가 과연 어떤 결과로 귀착될 지 국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16:3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