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朴 청와대 회동 이후 일단 수면 아래로…집권후반기 정치지형 뒤흔들 '깜짝 카드'나올 수도

'나를 위한 행진곡'된 연정론…다음 수는 뭔가?
盧·朴 청와대 회동 이후 일단 수면 아래로…집권후반기 정치지형 뒤흔들 '깜짝 카드'나올 수도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지난해 5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총선 승리 자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운동권 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흥겹게 불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에 맞은 5월은 싸늘했다. 4ㆍ30 재보선 참패에 따른 후유증에다 노 대통령과 우리당의 지지율이 각각 20%, 30% 대에 머물러 국정운영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까지 암울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또 다른 행진곡을 꺼냈다. ‘나 홀로’부르는 ‘연정(聯政)론’이다. 지난 6월24일 당ㆍ정ㆍ청 수뇌부 모임인 ‘11인 회의’에서 처음 선보인 뒤 1, 2절로 끝날 줄 알았던 연정론은 계속 옥타브를 높여갔다.

그러나 7일,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회동을 계기로 연정론은 주춤했다. 박 대표가 “더 이상 연정을 띄우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결단 필요할 땐 다시 말하겠다"

그렇다고 연정론이 좌초된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이 회동 말미에 “상황이 말할 필요가 없다면 하지 않도록 하겠지만 또 여러 가지 결단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말하겠다”고 재연의 소지를 남겼다.

6월 말 처음 고개를 내민 연정론은 ‘안기부 X파일’에서 비롯된 도청 정국에 묻혀 있다 8월 들어 정국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그러한 데는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한몫 했다. 한 측근 인사에 따르면 6월 말 공개에 앞서 일부 기밀이 새어나갔을 때 노 대통령이 크게 격노했다고 한다.

연정론은 파트너가 한나라당으로 정해지고 권력 이양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파장도 커갔다. 동시에 여야를 불문하고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렸다.

우리당에서는 386소장파와 재야파, 호남 지역 의원 등이 연정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반면 개혁당파와 친노직계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7일 노무현-박근혜 회동에서 박 대표가 연정 거부의사를 명확히 한 데 대해 재야파인 우원식 의원은 “연정은 상대가 안 한다고 한 이상 더 이상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기정 의원도 “연정은 어렵다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다른 방식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립적인 박병석 당 전략기획협의회 의장은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기나 당의 정체성, 실현 가능성 등을 놓고 볼 때 우려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유시민 상임중앙위원과 김형주 의원 등 참여정치실천연대 소속 의원들과 친노직계 의원들은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노 대통령의 간곡한 호소에 귀 기울이고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한다”며 적극 호응했다.

김형주 의원은 “연정 제안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행동을 당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노직계인 이화영 의원도 “연정 제안의 취지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해 정치권이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정론에 대해 여권내에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차기 대선 주자들의 역학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정동영(DY) 김근태(GT) 보건복지부장관 등을 중심으로 한 당내 양대 계파는 공식적으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사석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서도 대체로 부정적 시각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지역구도는 우리 정치발전의 최대 장애물이고 반드시 극복해야 하지만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자는 것은 당을 깨자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DY는 연론엔였淪?일체 함구하고 있는데 한 측근은 “굳이 거론해서 대통령과 각을 세울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해 DY가 연정론에 부정적이라는 것을 추정케 했다. DY는 개헌과 관련, 내각제보다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GT는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목표에는 찬성하지만 연정 상대가 한나라당이라는 데는 부정적이다. 또 대통령이 경제나 남북관계 등 시급한 현안을 놔두고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연정론과 같은 정치문제에 올인하는 모습에도 반대한다.

GT는 5일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필생 과업과 비슷하게 얘기하니까 서로 말하기가 갑갑하다”며 연정 논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연정론의 파장은 한나라당도 예외가 아니다. 연정 제의 초기부터 반대 입장을 표명한데다 7일 박근혜 대표가 노 대통령과 회담한 이후 연정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금엄령(禁言令)’이 내려진 분위기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내 소장 개혁 의원 그룹인 수요정치모임의 남경필 의원은 “박 대표가 주변 몇 사람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응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지도부의 소극적인 ‘침묵’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8일 ‘노 대통령의 정치권 빅뱅 구상 : 대통령발 개헌 카드’라는 제목의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맹 의장은 이날 “노 대통령이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연정론과 선거구제를 밀어붙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정치권 빅뱅(대변화)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맹 의장은 노 대통령의 ‘종착역’을 ‘대통령직 사퇴와 조기 대선’으로 보고 예상 수순을 ‘정기국회 파행→대통령 당적 이탈→최후 통첩(개헌 및 임기단축 로드맵 제시)→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국회 부결→대통령직 사퇴→조기 대선ㆍ총선’으로 전망했다.

한나라당은 연정론에 대해 친박(親朴, 친박근혜) 진영이 침묵 내지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는데 반해 반박(反朴) 진영은 적극적 대응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 양측이 기싸움을 벌이는 양상이다. ,

연정론은 개헌과 맞물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할말은 다했다”며 더 이상 연정에 대해 관심을 접겠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시장은 5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뒤 개헌논란과 관련, “개헌론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워야 할 문제"라면서 “노 대통령이 개헌론으로 또 한번 정치에 참여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공세적 태도를 취했다. .

손학규 경기지사는 1일 한나라당 대전ㆍ충남 정치 아카데미에 참석해 노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07년 대선 지형에 입김을 미치려는 노 대통령과 대선 주자들 간에 치열한 머리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민노·민주당과의 소연정 제의 전망

노 대통령과 박 대표의 회담으로 연정 논란이 공식적으로 일단락된 후 향후 관심사는 노 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그 동안 보인 집착으로 볼 때, 연정론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의 다음 수가 해외순방 후 민노당ㆍ민주당 대표들과 연쇄 회동을 통해 소연정을 제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노당 모두 내각 참여에 부정적이어서 우리당과 양당이 선호하는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제를 고리로 3당 주도의 선거법 개정논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이 제의한 연정론은 가깝게는 10ㆍ26 재보선 결과에 따라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참패할 경우 연정 및 개헌과 관련한 책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5월 지방선거, 멀게는 2007년 대선에서도 연정론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노대통령 후반기 로드맵 엿보기

‘정치지형변화와 국정운영’ 문건 내용 현실로 나타나

지난 5월, 친노(親盧) 386 진영에서 작성한 ‘정치지형변화와 국정운영’ 문건이 최근 연정(聯政) 정국이 지속됨에 따라 새삼 주목받고 있다. 문건이 등장한 배경이 지난해 탄핵정국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나왔고 내용의 상당 부분이 현실 정치에 반영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에서다.

A4 용지 50쪽 분량의 ‘국정운영’문건은 4ㆍ30 재보선 참패 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대에 머물고 당의 지지율마저 동반추락하는 위기국면에서 만들어졌다. 문건은 크게 ▲정치지형의 변화와 특징 ▲정치지형변화의 전략적 합의 ▲정국운영방안-대통령 정치의 강화 ▲시기별 세부계획 등으로 나뉜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지형 변화와 정국운영방안.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꺼낸 배경은 여소야대에 따른 ‘위기론’으로 문건 역시 여소야대 지형을 정국교착의 위기구조로 보고 있다.

문건은 위기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신(新)여소야대를 제시한다. 지난 7일 노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야당 대표의 전부 혹은 일부를 선별해서 대화를 통해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정국의 안정성 도모에 유익하다’는 문건의 제안과 일치한다.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협력정치’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연대정치’를 해야 하며 향후 개헌 및 대선 경쟁을 감안, 연대의 수준을 점차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연정론에서 민주당ㆍ민주노동당과의 소연정이 필수적임을 가늠케 한다.

집권 후반기 당ㆍ청 관계의 변화도 예상된다. 문건은 ‘대통령이 정치력과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의견그룹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며 청와대와 우리당을 연결하는 ‘이너서클’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문건은 우리당의 의견그룹을 5개로 구분, 친노직계를 중심으로 좌우에 GT 계(김근태계), DY계(정동영계)가 포진해 있고 개혁당파와 안개모가 소수 그룹으로 제시돼 있다.

이는 연정론과 관련해 여권내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 시나리오가 흘러나오는 것과 배치되고 당ㆍ정ㆍ청 수뇌부 모임인 ‘12인 회의’와는 별도의 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향후 전개과정이 주목된다.

그리고 ‘당내 계파들을 개별적으로 청와대로 불러서 그들의 견해를 청취하고 특별한 역할을 부탁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견그룹들을 호명하면서 당내 권력구조를 조절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문건은 한국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통합적으로 이해, 극복해 나가기 위해 ‘선진사회협약’을 밀도 있게 추진해 집권당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09-15 11:44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