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결실 있을 것" 기대감 솔솔

‘9ㆍ19 공동성명’으로 일단 궤도에 오른 북핵 6자회담은 북-미 간의 엇박자에도 불구하고 탈선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6자회담을 앞둔 시점인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평양을 방문했다.

이는 이미 북한과 중국의 양국 실무선에서 정상회담 전 북핵 해결을 위한 사전 조율이 있었고, 정상이 만나 이를 확인했다는 의미다. 애매했던 5차 6자회담 일정도 후 주석 방문 직후 11월9일 개최하기로 곧바로 잡혔다.

후 주석의 평양 방문을 수행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차 6자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 대해 “힘들게 이뤄낸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북한은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한 발언을 소개했다.

북한과의 대규모 경협도 예상된다. 다만 왕자루이 부장은 중국이 북한에 2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대해선 “들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행동 대 행동' 원칙 강조로 북한편들기

김 위원장의 6자회담 관련 발언은 북ㆍ중 정상회담 석상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협상에서 세세한 문제에 대한 지그재그식 난항은 예상되지만 북핵 해결을 위한 로드맵 작성에 큰 진전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또 이번 북ㆍ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은 5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폐기해야 할 핵시설과 관련 프로그램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과 관련,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하는 북한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진정성이 확인된 마당에 중국으로선 북한이 최대한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북한과 미국을 차례로 방문한 뒤 지난달 28일 방한한 6자회담 중국측 차석대표 리빈(李賓) 한반도 담당대사는 “한 쪽보고 일방적으로 먼저 하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 대사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와의 면담에서 “6자회담은 구두단계를 넘어섰고 이제 행동 대 행동, 실천으로 넘어가야 한다”면서 “크게 보면 북ㆍ미도 원칙면에서는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서로 손잡고 협력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후 주석은 이번 평양 방문 첫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마련한 환영만찬에서 의미심장한 연설을 했다. 후 주석은 “중국 인민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등 3가지 대표 사상을 지침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을 부단히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천지 개벽의 변화를 가져 왔다”면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대한 성과를 상세하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개혁ㆍ개방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김 위원장도 이례적으로 직접 연설에 나서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과에 박수를 쳤다. 김 위원장은 “중국공산당이 이인위본(以人爲本)의 원칙과 과학적 발전관, 조화로운 사회주의 사회건설 목표 등 현 시기 중국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노선과 정책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에로 전체 인민을 힘있게 불러 일으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도 30일 후 주석의 방북 성과를 “중-조 우호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환영했다. 특히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국제적 풍향 변화와 상관없이 중국과 조선(북한)의 정치적 관계는 안정을 유지해 왔고, 양국에 닥친 시련은 지나갔다”고 평가했다.

미국도 기대감을 표시했다. 조셉 디트라니 미 국무부 대북협상대사는 2일(현지시간) 제5차 북핵 6자회담에 북한이 참석을 표명한 것과 후 주석의 ‘훌륭한 북한 방문’을 들어 “모든 징후로 봐 북한이 움직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트라니 대사는 북한의 행동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로 에너지와 경제 지원, 핵 과학자ㆍ기술자 등의 타 분야 전환 훈련, 테러리즘 지원 국가 명단 삭제, 잔존한 제재 해제 등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그는 공동성명 2개의 축을 ‘북한의 핵 폐기와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라고 설명하고 북ㆍ미관계 정상화 논의에선 “북한 인권, 탄도탄 미사일, 위폐ㆍ마약 등 불법사업, 생화학무기 등에 관해 얘기할 것”이라고 밝힌 후 이어 “북한과 관계정상화 전에 거론된 모든 것이 해결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3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ㆍ일 양자 회담도 9일 있을 5차 6자회담의 풍향을 가늠하는 주요 변수다. 이날 회담은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관계정상화는 없다’는 일본과 ‘과거청산이 먼저다’는 북한의 입장이 접점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양측은 협상 모멘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분위기 속에서 만남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내년 9월로 예정된 임기 마감 전에 북ㆍ일수교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양측 테이블에 전해져, 회담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 양국이 노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 29일 중국의 무상지원으로 건설된 대안친선 유리공장을 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5차 6자회담은 18, 19일 열리는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회담 대표단이 각국 정상을 수행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회담 기간은 3~4일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논의가 행동 대 행동에 대해 집중될 것인 만큼 각국이 기본입장과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연구해서 APEC 이후에 다시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차 6자회담 때와 같이 단계별 회담이 될 것이란 얘기다.

부시행정부 강경파 입지 축소 예상

5차 6자회담의 주목할 관전 포인트는 북ㆍ중 정상회담이 북한과 미국에 미칠 약효다. ‘선 경수로 제공’을 주장하는 북한이 얼마나 달라진 자세로 회담에 임하느냐는 것과 함께 ‘선 핵시설과 프로그램 공개’를 주장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 여부다.

사실 4차 6자회담 이후 크리스토프 힐 미 대표가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 틈바구니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관측들이 무성했다. 강경파들이 4차회담의 결과인 9ㆍ19 공동성명을 알맹이가 없는 외교적 수사라고 공격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 행정부 내 강경파의 입김이 방북 움직임의 힐 차관보의 발을 묶는 것과 동시에 인권ㆍ 위폐 문제 제기 등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후 주석의 평양 방문으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입지가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도 관측된다. 자칫 중국과 불필요한 대립 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고, 이 경우 당장 부시 정권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