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거 이후 '우리당 구하기' 승부수

‘적과의 동침, 그리고 진검 승부.’

내년 초로 예정된 열린우리당의 전당대회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적과의 동침’은 우리당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정동영(DY) 통일부 장관계와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계의 묵계를 의미한다.

전대를 앞두고 양측이 대권과 당권의 실리를 위해 친노(親盧)파를 견제하는 데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것을 두고 말한다.

10ㆍ26 재선거 완패에 따른 당내 파장은 문희상 의장체제가 물러나고 정세균 의장의 비상체제가 출범하면서 내년 초 열릴 전대로 옮겨갔다.

전대의 최대 관심사는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의 빅 매치 여부와 전대의 성격, 즉 ‘임시 전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정기 전대’인가 하는 점이다. 두 사안 모두 차기 대권과 관련돼 있다.

전대 성격에 따라 GT·DY계 전략 달라

빅 매치가 DY계-GT계의 진검 승부라면, 전대의 성격은 DYㆍGT계와 친노 진영과의 한판 승부다. 전대의 성격은 친노 진영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동시에 빅 매치의 전주곡인 셈이다.

내년 초 전대가 ‘임시 전대’ 성격을 띠면 10ㆍ26 재선거 이후 일괄 사퇴한 상임중앙위원들만 새로 뽑는 부분 개편에 그치지만, ‘정기 전대’가 되면 전체 중앙위원들을 완전히 물갈이하는 새 판 짜기로 치러진다. 당의 진로와 역학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국적으로 99명에 달하는 중앙위원들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은 물론 대선 경선준비 과정에서도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자리다. 정기 전대가 되면 각 계파간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현재 중앙위의 세력분포는 DY계와 GT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개혁당파, 친노 직계 등이 소수지분을 갖고 있다. 정기 전대를 거치면 세력 판도에 변화가 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정기 전대로 갈 경우 새로 구성되는 지도부의 임기(2년)가 2008년 2월까지 여서 대선을 관리하게 된다. 차기 진영에서는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DYㆍGT계는 이번 전대를 정기 전대로 몰아가는 반면, 세력상 열세인 친노 진영은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친노계 대표 주자인 유시민 의원이 “중앙위 해체 주장을 다수파의 쿠데타 음모”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참정연 대표인 이광철 의원이 “비상집행위가 과대망상을 하고 있다”며 반발한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다.

정동영-김근태 빅 매치는 각 계파 뿐만 아니라 당 안팎의 시각차로 인해 성사가 불투명하지만 대세는 ‘진검 승부’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검 승부가 노 대통령의 조기레임덕을 부를 수 있고 의장 경선 후유증으로 당내 분란이 심화할 수 있다며 정면 승부를 만류한다.

DYㆍGT계 내에서도 내년 지방선거 전망이 크게 밝지 않은 상태에서 당권을 잡는다 해도 상처를 입을 개연성이 있고 만약 당권 경쟁에서 패해 비주류로 전락할 경우 대선가도에 치명적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래서 필요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등을 맡는 게 무난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 연장에서 ‘제3후보론’도 있다. 주로 친노 그룹에서 제기하는 방안으로 전대에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이 전면에 나설 경우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경도될 수 밖에 없고 조기레임덕의 단초가 될 수 있어 제3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견해다. 제3후보론은 최근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 영입론을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DYㆍGT계는 대체로 ‘제3후보론’에 부정적이다. DY계의 한 의원은 “문 의장이 물러났는데 제3 후보가 의미가 있느냐”며 “과연 제3 후보가 있는 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제3 후보론은 친노 진영이 전대를 계기로 DYㆍGT계의 세 확산을 우려해 내놓은 궁여지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로서는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이 연말께 당으로 복귀, 대선후보 경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내년 초 당권 도전에서 직접 맞부딪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양측 모두 세 확산에 나서 물밑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나 정면대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DY계인 ‘바른정치모임’의 이강래 회장은 2일 “이대로 가다가는 재선거 전패인 상황에서 당을 구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고 정도(正道)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도 “제3후보론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며 “지방선거 패배를 전제로 십자가를 질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부담이 크더라도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해 정면승부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김 장관쪽도 마찬가지다. 재야파의 한 핵심 의원은 “장관이 신중하게 양보를 하다 몇차례 실기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물러서면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수 있다”며 “정면돌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의 한 측근 의원은 “지도부가 퇴진한 마당에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며 “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 끌고 가기 위해서는 GT가 나서 전대의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이 단기간에 반전되기는 어렵겠지만 유력한 대권 주자가 전면에 나설 경우 여권에 대한 이미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과 이른바 ‘노빠’(노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로 상징되는 현 집권 층에 대한 불신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차기 주자에 대한 기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도 정ㆍ김 두 장관의 조기 복귀에 공감하는 견해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31일 전국 20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권주자인 정ㆍ김 장관의 조속한 당 복귀에 대해 ‘공감한다’(47.0%)가 ‘공감하지 않는다’(38.4%)보다 8.6% 포인트 높았다. 우리당 지지층(66.4%)에서 공감 견해가 월등히 많았다. .

이런 흐름대로라면 내년 초 우리당 전대에서 정, 김 장관의 빅 매치는 상당한 흥행이 예상된다. 하지만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는 가늠키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당의 세력판도는 ‘바른정치모임’이 주축인 DY계와 재야파 및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ㆍ옛 국민정치연구회) 를 아우르는 GT계가 양축을 이룬 가운데 의정연구센터(의정연), 국민참여1219(국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 등 친노그룹이 3강을 구축하고 있다. 그외 중도파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신기남 전 의장의 ‘신진보연대’등이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양진영 세확장 본격화, 제3후보론도

정, 김 두 장관측은 조기 전대를 앞두고 이미 세 확장에 나섰다. 당 지도부 사퇴를 이끌어 낸 GT계는 당ㆍ정ㆍ청 쇄신과 당내 노선 투쟁을 주장하며 외연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4월 전대를 계기로 DY계에 비판적인 신기남 전 의장이 이끌고 있는 ‘신진보연대’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밖에 안개모 소속 의원을 비롯해 친노 진영 중 GT계에 우호적인 인사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DY계는 여권 차기 주자 중 지지도가 가장 높아 상대적으로 폭넓은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10ㆍ26 재선거 후 당 지도부 사퇴 과정에서 한발 비켜서 있던 것도 그런 여유 때문이다. DY계는 중도 성향의 안개모를 우군으로 여기고 있고, 친노 진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전대의 향방을 좌우할 최대 변수를 친노 진영의 행보로 꼽고 있다. 이와 관련 GT계는 지난 4월 전대에서 친노 진영과 연대해 유시민 의원을 상임중앙위원에 진출시킨데다 양측 상당수가 운동권 출신으로 정서적 공감대가 있다며 전대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반면 DY계는 당 지도부 사퇴와 노 대통령 공격에 앞장선 GT계와 친노 진영이 손을 잡기 어렵다고 보고 전대에서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친노 진영의 기본 입장은 DYㆍGT계의 기대와 거리가 있다. 의정연 소속의 한 의원은 “누가 되든 대선 국면이 앞당겨 질 수밖에 없어 이를 제어하고 대통령이 원활히 국정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김 장관이 아닌 제3 후보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정연 소속 한 의원은 “정 장관이 될 경우 레임덕이 우려되고 중앙위원회와 기간당원을 해체 내지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제3 후보를 선호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김 장관에 우호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정가에서는 친노 진영이 제3 후보로 유시민, 김두관 카드를 꺼내거나 정, 김 두 장관의 진검 승부에서 열세인 후보와 연대, 제3후보를 옹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럴 경우 제3후보로 유인태, 임채정, 김혁규 의원 등이 거론된다. 부득이한 경우는 ‘대통령 지키기’에 전력해 상대적으로 대선 레이스의 추동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T, DY에 3전3패 이번엔?

내년 초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정동영(DY)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GT)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권을 놓고 격돌할 경우 네 번째 승부가 된다.

첫 승부는 지난해 1월11일 전대에 즈음해 당 의장을 놓고 맞붙었다. 그러나 김 장관이 고심 끝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 장관의 기권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당시는 4ㆍ15 총선을 앞두고 당ㆍ청의 기류가 당 간판으로 DY를 미는 상황이어서 GT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두 번째 승부는 지난해 5월11일 원내대표 경선에서다. 당시 GT는 이해찬 현 총리를 지원했고 DY는 천정배 현 법무장관을 밀었다.

친노 진영도 이해찬 총리를 지지해 승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선거 막판, 염동연 의원 등 일부 친노 의원이 DY쪽으로 돌아서고 여성 의원 상당수가 DY쪽에서 천 장관을 지원, 박빙의 표차로 천 장관이 원내대표에 올랐다.

얼마 후 이해찬 의원은 총리로 영전해 전화위복이 됐지만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DY-GT가 벌인 경쟁에서 DY가 승리, GT는 연거푸 쓴맛을 봐야 했다.

세 번째 승부는 올 4월2일 당 의장 선출을 위한 전대에서다. DY는 문희상 의원 등 당내 실용파와 손을 잡았고, GT는 장영달 의원 등 개혁파와 유시민 의원 등 친노 진영과 연대했다.

초기에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과 유시민 의원이 선전하면서 GT계의 선전이 점쳐졌다. 그러나 선거 막판 유 의원이 ‘반정동영-친김근태’발언이 역풍을 불러 GT의 발목을 잡았다.

DY가 민 문희상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당 의장에 오른 반면 GT계 장영달 의원은 가까스로 상임중앙위원이 됐다. GT계와 연대를 모색한 신기남 전 의장과 김두관 전 장관은 상임중앙위원에서 밀렸다.

내년 초 전대는 DY-GT의 네 번째 승부가 예상된다. 특히 정면으로 맞붙는 진검 승부다. GT나 DY 모두 출마의사를 나타내지 않았지만 측근들은 출마가 대세라고 말한다. 더구나 이번 승부는 대권가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어서 승자의 영광과 패자의 아픔이 극명하게 갈릴 전망이다.

하지만 전대를 둘러싼 변수가 너무 많아 누가 승자가 될 지, 정말 진검 승부가 이뤄질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