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 이명박 · 손학규 · 강재섭, 지방선거 뒤 본격 경쟁

“계급장 떼고 붙자.”

정치권에서 한떼 풍미했던 말이 현실이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6월 이후 당에 복귀하면서 새로운 대선레이스를 펼치면서다.

박근혜 대표, 이명박 사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강재섭 원내대표 등 잠룡들은 5월31일 지방선거가 끝나면 종래 직함을 떼고 대권 경쟁에 나서게 된다. 지난해부터 속도를 내온 물밑 전쟁이 표면 위로 부상하면서 정면승부로 전환되는 셈이다.

박 대표는 더 이상 대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게 됐고, 이 시장 역시 청계천효과에 버금가는 성공신화를 재현하기 어렵다. 손 지사는 미흡하나마 경제업적을 평가받았지만 이마저 힘들게 됐다. 강 대표 역시 맨 얼굴로 나서야 한다.

그래서 잠룡들은 계급장의 특수효를 최대한 활용하고 6월 이후를 대비한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5ㆍ31 지방선거에 자파 세력을 최대한 부식하려는 것이나 당내 유리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인맥 구축에 나서는 것 등이 그렇다.

이들 주자들은 지난해 당 혁신위안을 놓고 일찍이 전초전(대리전)을 벌였다. 대권ㆍ당권을 분리하는 지도체제에 대해 박 대표측은 반대 내지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면 이 시장과 손 지사측은 명운을 걸고 맞서 결국 혁신위안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박 대표측은 패한 셈이 됐고 대표 프리미엄의 기대도 날아갔다.

한나라당 대권경쟁은 6월 이후 당내서 본격적으로 전개될으로 관측된다. 이에 앞서 1월말 원내대표 경선이나 5월 지방선거, 이후 당 대표 선출은 대선레이스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특히 지방선거와 당 대표 선출은 최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시장 선거와 경기지사 선거가 잠룡들의 대리전 성격을 띠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맹형규 의원이 친(親)박근혜계로, 박계동ㆍ이재오ㆍ홍준표 의원 등은 친이명박계로 분류됨에 따라 이들의 승패, 나아가 본선 결과는 박ㆍ이 두 주자의 대선 행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기지사의 경우 박근혜 대표와 거리를 두어온 당내 ‘국가발전연구회’(국발연) 소속 김문수ㆍ전재희 의원, ‘수요모임’의 남경필 의원이 친 손학규ㆍ이명박계 후보로, 이규택ㆍ김영선 의원은 친박근혜계 후보로 분류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방 선거 후 당내 역학 구도가 변수

지방선거 이후 이 시장과 손 지사가 당으로 복귀, 내전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당내 역학구도는 대선레이스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세력이 당의 중심에 서느냐에 따라 잠룡들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나라당 당권의 향배에 정가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당권 후보로 중진인 김덕룡ㆍ이재오ㆍ박희태 의원과 대선주자인 강재섭 원내대표 등이 거론된다.

2005년 3월 11일 원내대표로 당선된 강재섭 의원이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홍인기 기자

최근 일각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이재오ㆍ박계동ㆍ홍준표 의원 등이 후보단일화를 묵계한 것을 주목, 이명박 시장측이 고도의 당 접수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세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다른 후보들은 당권을 장악, 이 시장의 당내 기반을 다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재오ㆍ박계동 의원은 지난해 12월19일 후보단일화를 표명했고 홍준표 의원도 이에 동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오 의원은 12월26일 기자들과의 저녁 회동에서 “세 사람 중 누가 나가든 단일화하기로 했다”면서 “원내총무는 해봤으니 당 대표는 생각해볼만하다”고 말해 당권 도전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당내서도 이 의원이 수도권(서울 은평을) 3선 의원으로 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등을 역임해 당권에 도전할만한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다. 다만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덕룡(DR) 의원(서울 서초을)은 현재 가장 유력한 당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5선의 중진으로 당 안팎에 DR계로 불리는 인사가 적지 않을 정도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데다 정무제1장관, 한나라당 부총재, 원내대표 등을 역임하는 등 당 대표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게다가 김 의원은 2004년 박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끈 경험이 있고 이명박 시장과는 6ㆍ3동지회 멤버로 인연이 깊다. 손학규 지사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로 손 지사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 정부제1장관을 하는 등 막역한 사이다.

정가에서는 김 의원이 2004년말 우리당이 추진한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 처리를 놓고 박 대표와 대립한 이후 거리를 두어온 것을 근거로 당 대표가 될 경우 이 시장이나 손 지사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김 의원측은 DR이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대의원 가운데 호남 대의원이 10%에 불과해 2004년 6월 전대에서 4위를 한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대선에 목표를 두고 있어 당권 도전은 불투명하다. 한 측근은 “당권 도전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무조건 대선이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권 · 대권 분리, 그림 그리기 한창

강 대표는 낮은 지지도와 관련 “여론조사는 현재의 인지도에 불과하다. 올 6월 이후 계급장 떼고 경쟁을 해야 제대로 된 지지율이 나올 것”이라며 대권 도전 의지를 분명히 나타냈다.

그러나 당내서는 강 대표가 결국 당권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대선구도가 박근혜-이명박 2파전이나 박근혜-이명박-손학규 3파전으로 압축될 경우 강 대표가 당권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박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서면서 강 대표와 대권과 당권을 나눠가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김덕룡 전 원내대표와 강 대표 간에 당권 경쟁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강재섭 대표가 당대표 선거에 불출마할 경우 박희태 부의장도 관리형대표로서 검토해볼만 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대권ㆍ당권 분리 방침에 따라 박근혜(대권)-강재섭ㆍ박희태(당권) 조합과 이명박ㆍ손학규(대권)-김덕룡ㆍ이재오(당권) 조합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