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2·18 전당대회서 본격 대두…일부선 "개혁·비전 제시 미흡" 지적

열린우리당 2ㆍ18 전당대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40대 기수론’의 성공 여부다. 그 속에 지연ㆍ혈연ㆍ학연 등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와 정략적ㆍ소모적인 이념논쟁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포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40대는 이미 IT(정보통신)ㆍBT(생명공학)ㆍNT(나노기술)분야 등으로 상징되는 신경제 영역을 개척하고 있고, 언론계ㆍ학계ㆍ시민운동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권의 40대 기수론은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40대 기수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구호는 거창하게 내걸렸지만 아직 ‘왜 지금 40대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40대 기수론인가

여당에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40대 기수론이 급속히 확산된 데에는 내부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 실패와 민심 이반으로 2007년 대선은 물론 당장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지지율이 2~5%대에 불과한 김근태(GT)ㆍ정동영(DY) 두 대권주자의 대결만으로는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묻어 있다는 얘기다.

김부겸 의원측은 “40대 기수론을 전당대회의 흥행카드 정도로 폄하하는 것 자체가 위기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자칫하다간 자신들의 사회적 역량을 펼칠 기회마저 잃을 수 있다는 절박함도 엿보인다.

80년대 초ㆍ중반 민주화운동을 대표했던 이들 386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미숙 때문에 ‘아마추어리즘’과 ‘무능’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진 한 40대 의원은 “지금으로서는 차기 대선에서 ‘민주화세력의 리더십 실패’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위기감이나 절박함보다 40대 기수론 주창자들의 정치적 진로와 연관짓는 해석이 많다. 지도부에 입성하거나, 최소한 가능성을 인정받아 차세대 주자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지난해 4월 전당대회 때 지도부에 진입했던 유시민(47) 의원이 최근 입각이 확정되면서 차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데 따른 동요가 상당하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 보수당과 일본 민주당에서 데이비드 캐러만(40)과 마에하라 세이지(43)가 당의 간판이 된 게 자극이 됐고, 1970년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 때의 DJ와 YS,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때의 DY를 성공한 모델로 삼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40대 기수론에 대한 “386 의원들의 야망”(열린우리당 이철우 전 의원), “김 빠진 설탕물”(한나라당 고진화 의원), “주류 기득권 쟁탈의 논리”(민주노동당 김성희 부대변인)라는 비판은 모두 이 같은 정치적 ‘욕심’을 겨냥한 지적이다.

모호한 40대 기수론의 실체

의원총회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의원들. / 고영권 기자

아직까지 40대 기수론의 실체는 모호하다. 물론 그간의 과정과 몇몇 주장ㆍ선언 등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그려볼 수는 있다.

40대 기수론은 무엇보다 이념과 노선경쟁이 아닌 특정 연령대의 세력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40대 기수론의 산파역할을 담당했던 ‘40대 재선의원모임’이 지난해 12월 초 첫모임 직후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뛰어넘어 대동단결할 것”이라고 밝힌 게 단적인 예다.

김부겸ㆍ김영춘ㆍ임종석ㆍ이종걸ㆍ조배숙 의원 등 전당대회 출마자들 사이에 본선통과자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도 이들의 기본입장을 잘 보여준다.

“초선과 중진을 잇는 허리가 되겠다”고 자신의 역할을 규정한 김부겸 의원의 주장은 연대와 단결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왜 40대여야 하는지를 설명하진 못한다.

40대 기수론은 내용보다는 ‘의지’의 성격이 강하다. 40대 재선모임을 주도한 송영길 의원은 “단순한 역할론이 아니라 기수론”이라고 못박은 뒤 “GTㆍDY 사이에서 곁다리처럼 끼어있는 게 아니라 당 의장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송 의원이 강조한 것은 ‘포부’와 ‘배짱’, ‘당당함’이 전부다.

40대 기수론은 진테제(Synthese)가 아닌 안티테제(Antithese)에 가깝다. 김영춘 의원은 “젊은 정치인들이 답답한 정치에 수동적인 태도로 머물 게 아니라 떨쳐나서자는 취지”라는 말로 40대 기수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계보 줄서기, 표를 의식한 지역주의와의 합종연횡 등을 답답한 정치의 예로 들었지마나 정작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극복의지까지 담아야 한다”는 당위 이상을 제시하지 못했다.

40대 기수론은 여전히 과거정치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임종석 의원이 전면에 내건 ‘민주당과의 지방선거연합’이 대표적이다.

반(反) 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자는 주장은 있지만 민주당 분당과정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없는 데다 어떤 내용으로 연대할 것인지가 빠져 있기 때문에 선거를 겨냥한 정치공학적 득표전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김영춘 의원이 지적한 ‘답답한 정치’의 예이기도 하다.

40대 기수론, 성공할까

이번 전당대회에서 40대 기수론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단정하긴 이르지만 현재로서는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바람’을 일으키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무엇보다 지금 시점에서 40대 기수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만한 ‘명분’이 부족하다.

우리 정치사에서 DJ와 YS가 36년 전에 40대 기수론을 맨 처음 제기했을 때나 DY가 2000년에 신(新) 40대 기수론을 내걸었을 때는 적어도 국민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공적(公敵)이 있었다.

1970년 당시 신민당 내 실력자였던 유진산 부총재에 대해서는 ‘왕사꾸라’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만큼 박정희 대통령에 맞설 만한 대안이 필요했다.

DY가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상징되는 동교동 직계를 공적으로 삼았을 때도 국민들은 DJ를 둘러싼 인의 장막에 대한 거부감이 뚜렷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으로 삼을 만한 대상이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이미 17대 총선에서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진 터라 40대 정치인의 신선함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40대 기수론은 명분부터 약하다.

40대 기수론이 내용 없는 구호에 가깝다는 점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이유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포부, 국가경영의 청사진과 능력을 보여줄 만한 최소한의 그랜드 플랜조차도 제시된 게 없다.

40대 기수론의 주창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의 젊은 지도자들은 ‘제3의 길’(블레어 영국 총리), ‘신(新) 경제’(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전세계가 주목할 만한 흐름을 만들어낸 실력파다.

이념과 정책을 두고 안팎의 경쟁을 통해 검증받은 내용들이다. DJ만 해도 예비군 축소와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 도입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공약들을 제시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켰고, GT와 DY도 각각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이라는 나름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40대 정치인들이 이념과 노선을 명확히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의 40대 동료의원은 “정치의 기본은 어떤 이념과 노선을 갖고 있는지, 그로부터 어떤 정책을 펴나갈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검증받는 것”이라며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나 보스주의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40대가 정치의 ABC를 자신의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가 “여당의 40대 기수론은 분위기 쇄신용에 가깝다”고 혹평하는 이유도 바로 내용 없음에 대한 질타의 성격이 강하다.

국가경영의 비전을 제시할 실력부터 키워야

아직까진 40대 기수론 주창자들이 우리 정치의 대안세력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신 국가경영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추를 담당했던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40대 정치인들은 독재에 맞서 자신을 내던졌던 것보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멀리 내다보고 차근차근 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386 의원도 “우리에겐 40대 기수가 필요한 게 아니라 민족의 큰 비전을 자기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