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VS 수니파 뿌리 깊은 갈등과 보복 악순환, 중동지역 간 분쟁으로 번질 수 도

▲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북부 사마라의 황금돔 폭파사건에 분노한 이라크인들이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역에서 보복을 다짐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 연합뉴스
‘만일 사람이 남의 눈을 멀게 했으면 그의 눈을 멀게 한다, 만일 남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의 뼈를 부러뜨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서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하는 이 말이 현대 사회에서는 처벌의 기준이 아닌, 무자비한 복수를 상징하는 문구로 쓰인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시아파 성지인 아스카리야 사원 폭탄테러 후 20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슬람 시아파-수니파 사이 보복의 쳇바퀴는 과거 ‘이에는 이’가 불러왔던 두 종파간 유혈 분쟁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을 실시하고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가운데 불거진 갈등은 ‘종파간 갈등으로 인한 이라크 내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세계 무슬림 양분하는 두 종파

시아파 및 수니파는 세계 10억 이상의 무슬림을 양분하는 두 줄기다. 예언자 마호메트 사망 직후 그의 정당한 후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으로 갈라섰다. 마호메트 사망이 서기 632년이니 지금 이라크서 벌어지는 갈등의 역사는 1,400년이 넘는 셈이다.

시아파는 마호메트의 정통 후계자(칼리프)가 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라고 믿고 그의 직계 후손 11명만이 무슬림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 ‘이맘’이라고 주장한다.

수니파는 이와 달리 ‘핏줄’을 따지지 않고 알리는 물론 마호메트의 협력자였던 아부 바크르 등 알리 이전의 성직자 세 명을 모두 칼리프로 받아들였다. 세 번째 칼리프 오스만이 암살되고, 수니파가 “알리가 이를 사주했다”고 비난하면서 양 종파는 완전히 갈라섰다.

수니파는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아 오스만이 완성한 코란을 유일하고 영원한 진리로 본다.

반면 시아파는 이맘을 마호메트에 버금가는 존재로 보고 그들이 코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중시한다. 시아파가 무슬림이 행해야 할 다섯 가지 의무(유일신 고백, 예배, 헌금, 라마단 중 금식, 성지순례)에 지하드(성스러운 전쟁) 및 선행을 추가한 것도 차이다.

이슬람 국가들에서 종파(宗派)가 정파(政派)로 자리잡으며 시아파_수니파의 분쟁은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어갔다.

이라크의 경우 시아파가 55%를 차지해 수니파(20%)보다 압도적으로 많지만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등 수니파 출신이 정권을 잡고 있어 시아파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미국 지원 아래 시아파가 국정을 주도하게 됐고 지난해말 총선에서도 시아파가 다수당을 차지하자 이제는 수니파가 발끈한 것이다.

후세인 정권 축출 후 잦아진 보복성 테러

서로를 겨냥한 테러는 미군에 의해 축출된 수니파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빈도가 잦아졌다. ‘더 큰 효과’를 노리기 위해 공격 대상으로는 각 종파의 성지나 성직자가 주로 선택됐다.

2003년 8월에는 이라크 남부 나자프에서 차량폭탄테러로 시아파 정치 지도자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이 사망했고 이듬해 3월에는 연쇄 자살폭탄테러로 시아파 최대 성일(聖日) ‘아슈라’ 참가자 140명이 목숨을 잃었다.

크고 작은 테러가 이어지던 중 지난해 8월에는 “자살폭탄테러다”라는 잘못된 외침 한 마디에 바그다드 성지순례 중이던 시아파 1,000여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있었다.

지금 진행중인 갈등은 지난달 22일 새벽 바그다드 북쪽으로 95㎞ 떨어진 사마라 지역 아스카리야 샤원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하면서 점화됐다.

▲ 사마라 아스카리야 사원이 2월 22일 수니파 과격단체로 추정되는 세력의 공격으로 대규모 폭발이 발생, 황금돔이 완전히 파괴됐다. / 연합뉴스
시아파 무슬림들이 모은 성금으로 황금으로 돔을 세워 ‘황금 사원’으로도 알려진 이 곳은 마호메트 직계 혈통을 잇는 10대 이맘 알리 알 하다와 11대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가 묻혀 있는 곳으로 시아파 무슬림의 최고 성지 가운데 하나다.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남성 네 명은 22일 새벽 아스카리야 사원에 침입, 두 개의 폭탄을 터뜨렸다.

황금 돔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시아파는 즉각 “수니파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알리 알 시스타니가 나서 “수니파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고 추모 기간을 갖자”고 서둘러 이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테러 직후 수니파 종교 지도자 칼릴 알 둘라이미가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두 종파의 충돌은 이라크 전역으로 급속히 번졌다. 하루 만에 보복성 공격으로 130명이 사망했고 168곳의 수니파 사원이 습격을 당했으며 10여 명의 이맘이 총격으로 사망했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일주일 사이 1,300명이 숨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8일에는 바그다드의 수니파 거주 지역서 목이 졸린 채 숨진 18명의 사체가 발견되고 시아파인 이라크 내무장관의 차량에 대한 테러 시도가 이어지는 등 폭력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총선 후 대연정 구상, 최악의 타이밍

그동안 곪아온 종파간 분쟁이 지금 터진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불안한 정정 가운데 지난해 12월 간신히 총선을 치른 후 미국 주도로 시아파 출신 이브라임 알 자파리 총리가 어렵게 대연정을 구상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만의 화살이 미국으로 쏠리는 것도 미국에게는 문제다.

시아파 성직자이자 이라크 부통령인 이달 압둘 마디드는 테러 직후 “시아파 민병대와 관련된 조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미국의 방침을 겨냥한 듯 “정부가 성지를 보호할 수 없다면 지역 민병대에게 이를 맡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아파의 강경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사원의 공격은 ‘(미국) 정복자들’과 시온주의자들의 소행”이라며 적나라하게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

이라크 정정 안정을 전제로 미국 영국 등의 단계적 철군설이 흘러나오고 있긴 하지만 종파간 갈등이 내전으로 확대되면 조만간 철군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미 고위 관료들이 이라크 내전 및 광범위한 중동권 분쟁을 잇달아 언급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초조함을 드러낸다.

존 네크로폰테 미 국가정보국장은 최근 “이라크의 종파간 보복전이 내전으로 치달으면 중동 지역의 광범위한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라크 민주정부 수립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대사도 8일 “보복이 그치지 않는다면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철군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미국 정부가 내ㆍ외부에서 이어지는 철군 요구를 무마하고 주둔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이라크 분쟁의 심각성을 과장한다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신영 한국일보 국제부 기자 ddag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