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

‘새로운 설레임’, ‘희망’, ‘빛의 전사’…. 보랏빛으로 휘감긴 5일 오후 정동극장.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선언은 연보랏빛처럼 아련한 단어들이 넘실댔다. 다음날, 언론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라는 주문이 곧바로 나왔다.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는 아직까지는 강 전 장관이다.

좀처럼 속내를 밝히지 않은 ‘정치인 강금실’에 대한 호기심은 그에 대한 비판마저도 집어삼키는 듯하다. 야당은 일제히 “분장술”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에서 ‘오세훈 대항마 카드’가 즉각 떠오를 정도로 ‘강금실 바람’에 대한 경계심은 최고조에 달한다.

야당의 경계와 질시는 강 전 장관의 최대 강점인 높은 개인 지지율 때문이다. 20% 대의 고만고만한 지지율에 머무는 한나라당 후보군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일부 조사에서 강 전 장관의 지지율은 50% 대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지율 거품론' 불구 강한 자신감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정치컨설턴트들은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반감’,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 등을 인기 비결로 꼽았다. 이미지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만으로 50일 정도 남은 레이스에서 선두를 유지하기는 벅차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온다. 거품은 쉽게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예측은 좀 더 비관적이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역대 선거에서 개인 지지율이 당 지지도를 넘긴 경우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 전 장관에게 높은 호감도를 보이는 20대는 실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적극 투표층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강 전 장관을 앞선 것에 주목하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은 “지지율 거품론은 서울시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여당 지지도가 낮은데 여당 후보 지지도가 높게 나오는 반면, 야당 지지도는 높은데 야당 후보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 이유는 여야 구도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개인 인기와 함께 정치적으로 구조화된 측면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 강금실 전 장관이 덕수궁길을 걸어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우리당 입당식에서 '필승' 휘호를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 연합
▲ 강금실 전 장관이 덕수궁길을 걸어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우리당 입당식에서 '필승' 휘호를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강금실 캠프 관계자도 “‘문화’, ‘삶의 질’, ‘강남·북 간 경계 허물기’ 등의 단어가 실현 가능성을 수반한 정책으로 구체화되면 ‘강풍(康風)’이 진정한 ‘강풍(强風)’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교육, 부동산, 교통 등 서울시의 전통적 이슈에 대해서도 “매니페스토 정책 검증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을 4월 말부터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대항마' 현실화 땐 고전 예상

하지만 강 전 장관이 넘어야 할 장벽은 ‘콘텐츠 채우기’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로비스트 김재록씨와의 유착 의혹을 벗는 게 시급하다.

강 전 장관이 “김재록씨가 우리 사무실(법무법인 지평)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전혀 없다. 김씨와의 관계로 인해 사건을 많이 수주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일축했음에도 ‘지평’의 세무자료 공개에는 난색을 표해 의혹의 불씨를 남겨뒀다.

선거 공학적인 측면에선 ‘박주선 변수’가 위협적이다. 우리당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로 나선 박 전 의원이 5%만 득표해도 강 전 장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또한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는 20~30대, 개혁층에서 강 전 장관과 지지기반이 겹친다. 서울은 민노당의 두자릿수 지지율이 나오는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 강금실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 입당식에서 이계안 의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연합
▲ 강금실 전 장관이 열린우리당 입당식에서 이계안 의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이 “꿩 잡는 매”라며 만지작리고 있는 ‘오세훈 대항마 카드’까지 현실화되면 결정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회 요인도 있다. 한명숙 국무총리 지명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여풍(女風)’이 고조되면 강 전 장관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박성민 대표는 “한명숙 지명자가 ‘어머니’ 이미지라면 강 전 장관은 ‘애인’ 이미지라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두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7,000명 회원 '강사모'가 원군

강금실 캠프는 당초 당과 거리를 두는 '시민 후보' 전략을 기획했으나 "떳떳하지 못하다"는 여론의 부메랑을 맞아 일정한 궤도수정을 했다. 강 전 장관도 "당의 후보다운 행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캠프 구성에서는 우리당 인사들의 참여를 최소화하고 '노무현 색깔 빼기'에 주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찌감치 강 전 장관이 낙점한 김영춘 의원이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강(康)의 남자'를 자처한 오영식 의원이 대변인을 맡았다. 민병두 의원은 기획 파트에, 박영선 의원은 홍보 파트에 포진했다. 친(親)노무현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덜한 인물들이다.

당 밖의 인사들에게 할애된 비중도 적지 않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조광희 변호사가 공동 대변인을 맡아 비서실장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또한 조직과 홍보 업무는 당 쪽에 맡기는 대신, 정책 파트는 법조, 문화, 시민사회단체 등 강 전 장관과 친분이 있는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자문그룹이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장관은 한편 회원수가 7,000명에 달하는 팬클럽 '강사모(강금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활약에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강사모는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고, 정부·여당에는 실망했지만 강 전 장관에게 호감을 느끼는 세력을 묶어두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