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 경선서 여론조사 압도로 승리, 강북 민심 잡기 등 본격 본선 채비

“민심(民心)의 승리죠. 달리 설명할 게 없어요.”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4월25일)에서 오세훈 후보가 승리하자 박계동 의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박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11일 뜻을 접고 대신 오 후보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당선의 변(辯)을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온 오 후보가 박 의원을 포옹하자 지지자들은 “민심은 오세훈 편”이라며 환호했다.

사실 경선 초반만 해도 맹형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 보였다. 경선 현장에 맹 후보를 상징하는 파란색 막대풍선과 깃발이 압도적인 데다 맹ㆍ홍 후보의 ‘조직표’가 오 후보의 ‘바람표’를 누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인단 9,452명(대의원 20%, 당원 30%, 국민참여선거인단 30%) 중 현장 투표 결과(3,839명, 투표율 40.6%) 맹 후보가 1,443표를 얻어 오 후보의 1,343표에 불과 100표 앞서면서 파란의 조짐이 일었다.

급기야 여론조사(20%)에서 오 후보가 65.1%(624표)의 지지율을 기록해 17%(163표)의 맹 후보를 압도하면서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초 1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 국민참여선거인단의 투표율이 28.7%(1,020명)에 이르고 여론조사에서 큰 격차를 보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오풍(吳風, 오세훈 바람)’이 당심(黨心)을 삼켜버린 것이다.

바람 앞에 흔들린 조직

‘오풍’은 오 후보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 9일 전부터 불기 시작해 보름만에 태풍으로 변했다. 오 후보는 오풍의 실체에 대해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심이 실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선 현장에서 만난 대의원 박효숙씨(여ㆍ48 중량구 망우동)는 “투표장에 오기 전 지역의 당원과 당원 아닌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본 결과 20~30대는 물론, 50~60대에서도 오세훈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며 “한나라당의 미래를 짊어지고 집권하기 위해서는 오 후보처럼 깨끗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당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인단으로 나온 최재갑씨(68)씨는 “한나라당이 지지를 받고 집권하려면 나이 많은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오 후보 같은 젊고 개혁적인 사람이 (당에) 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 분위기는 ‘오풍에 민심이 실렸다’는 오 후보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하지만 5ㆍ31 결전에서도 오풍이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우리당 강금실 후보가 강력한 대항마로 나선 데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변수, 오 후보에 대한 검증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5ㆍ31 서울시장 선거는 오 후보와 강 후보의 양강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재의 판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오 후보의 승리가 예상된다.

오 후보는 3개월 전인 1월에만 해도 여론조사(매일경제)에서 4.7%의 지지율을 보여 강 후보의 지지율 17.3%에 크게 뒤졌다. 그러나 4월 들어 강 후보와 오 후보가 공식 출마를 선언,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 전개되면서 오 후보의 질주가 두드러졌다.

오 후보는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7,8일)에서 42.4%의 지지율로 강 후보(42.0%)에 처음으로 앞선 뒤 MBC-코리아리서치(10,11일) 여론조사(39.0% 대 36.4%), 중앙일보의 두 차례(12~15일, 25일) 여론조사에서 각각 43.0% 대 31.0%, 49.0% 대 27.0%로 강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내일신문-폴앤폴 조사(16일)에서는 52.0%의 지지율로 강 후보(30.4%)와 무려 21.6%의 격차를 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강 후보의 최대 강점인 깨끗하고 참신하고 도덕적인 이미지가 오 후보의 등장으로 희석된 뒤 본인(강 후보)이 그것을 대체할 새 무기를 찾지 못한 데다 서울시장 선거와 같은 큰 선거는 지역개발, 개별 정책보다는 이슈, 정당 지지도 등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에서도 강 후보가 불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실장은 “한나라당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우리당 지지층보다 결속력이 강하고 비(非)한나라당표가 우리당ㆍ민주당ㆍ민노당으로 분산되는 것도 강 후보에 불리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사회여론조사본부 이사는 “오세훈 후보 등장으로 기존의 ‘인물 대결’ 구도가 ‘정당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며 “강금실 후보의 지지율이 열린우리당 지지율로 수렴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강금실 캠프, 대응전략 마련 부심

‘빨간불’이 켜진 강 후보측은 전략을 수정,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다.

김영춘 선대본부장은 “정책 전반보다는 핵심 이슈를 선점하는 전략과 오 후보와의 분명한 차별화를 통해 역전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강 후보의 추진력을 대처 전 영국수상의 이미지로 연계하거나 법무부와 법무법인 등을 이끈 CEO형 자질을 부각시킨다는 식이다.

강 후보 역시 “지금의 여론조사가 본선까지 이어지리란 것은 섣부른 속단”이라며 “리더십과 능력, 자질 면에서 오 후보와는 차별성이 있다” 고 전의를 불태웠다.

강 후보는 26일 “‘서민을 위하고 강남·북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오 후보와 차별점이 있다”면서 4년간 교육예산을 2조원 확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부문 정책 구상을 발표, 이미지 대신 정책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는 “오 후보나 강 후보 모두 ‘바람’을 타고 있다”면서 “검증 과정을 통해 조정국면을 거치면 선거판이 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귀영 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누가 서울시장감인가 하는 자질론이 부각될 경우 법무장관 등 국정운영 경험이 있는 강 후보에 비해 오 후보가 더 공격받기 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 후보측은 일부에서 이미지 치중, 경륜 부족 등을 근거로 제기하는 ‘위기론’에 대해 정면 대응하면서 예선에서 위력을 입증한 오풍을 한달 가량 남은 본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오 후보는 26일 선대본부 인선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본선 채비에 나서는 한편, 취약 부분에 대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콘텐츠 보완을 위해 맹형규ㆍ홍준표 후보가 만들어놓은 공약 중에서 엄선,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며 강남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선거사무실을 광화문 인근으로 옮길 계획이다. 또 강북민심 잡기에도 나서 ‘강북 구도심 개발’을 첫 공약으로 내놨다.

오 후보측은 선거조직에도 박차를 가해 맹, 홍 후보에게 공동 선대위원장직을 제의해놓은 상태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개혁적 외부인사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후보측은 무엇보다 한나라당 변화의 중심에 오 후보가 서있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선거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희룡ㆍ남경필ㆍ박형준 의원 등 당내 소장파와 과거 오 후보가 이끌었던 개혁모임인 ‘미래연대’ 의 멤버들이 대거 선거운동본부로 결집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풍(吳風)과 강풍(康風)의 ‘바람 대결’로 비유되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어느 바람이 더 셀지 주목되며 그것을 바라보는 5월의 유권자들도 모처럼 신바람이 날 것 같다.

오세훈 "달동네 판잣집에 산 적 있어"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 대일고와 고려대 법학과 졸업 후 1984년 사법시험(26회)에 합격했다.

1991년 변호사 개업 이후 환경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뛰는 등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국내 최초로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잘생긴 외모와 차분한 말솜씨로 MBC '오 변호사, 배 변호사'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토론 프로그램 진행을 하였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서울 강남에서 당선돼 원내에 진출한 후 주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일명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정치개혁 입법을 주도함으로써 개혁 이미지를 심는 데도 성공했다.

당내에서는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과 함께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만들어 대표를 지냈다.

2003년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른바 '정풍운동'을 벌이며 5, 6공화국 인사 퇴진 등 당내 인적 쇄신을 요구하면서 "선배님들만 나가시라는 게 아니고 저도 물러나겠다"며 2004년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년 동안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고 그 결과물로 지난해 8월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세련된 도회 이미지와 달리 그는 "초등 2학년 때 아버지가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나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다. 서울 삼양동 달동네에 직접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고 술회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장애인과 함께 아프리카 킬로만자로산을 등정하기도 했다.

대학 동기인 아내 송현옥(44ㆍ서경대 연극과 교수)씨 사이에 딸 둘이 있고, 취미는 산악자전거, 종교는 천주교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