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당·청 기류…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 촉발 가능성도

5ㆍ31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여권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정치 표면은 지방선거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는데 수면 아래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와 정동영(DY) 의장을 간판으로 한 열린우리당의 힘겨루기다.

양측은 4월 말 사학법 양보 논란으로 한때 충돌한 뒤 숨고르기에 들어가 5ㆍ31 이후를 고려한 행보를 취하는 듯했다.

청와대·우리당 '거리두기' 노골화

청와대는 3일 수석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지방선거나 호남을 고려함이 없이 철저하게 ‘노무현 사람들’로 채워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는 일체 관여하거나 지원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우리당 역시 정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등의 당권파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거리를 두면서 세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자파 사람들을 직접 지방선거에 출마시키거나 서울시장, 경기지사 등의 캠프에 합류시켜 선거 이후를 도모하는 양상이다. .

하반기 국회 상임위 구성과 관련해 당 지도부가 위원장에 중진을 배제하고 자파 재선급을 앉히려는 것이나 임채정 의원이 국회의장에 오르는데 정 의장계 의원들이 발벗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노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잡으려는 정 의장 간의 오랜 알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대립각을 좁히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학법 양보 논란이 노 대통령의 폭넓은 국정운영 방침과 정 의장이 당 여론을 수렴한 데 따른 불가피한 충돌이란 측면이 있음에도 두 사람의 갈등으로 부각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에 앞서 양측은 연초 개각 파동에서도 몇 차례 충돌했다. 올 1월 노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자 주로 정 의장계 의원들이 나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해찬 총리 파문을 거치면서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갈등은 깊어졌다. 노 대통령이 ‘유임’ 의지를 나타냈음에도 정 의장측이 총리 해임’을 밀어붙였던 것.

한명숙 총리 임명 과정에서도 정 의장이 사실과 다르게 “내가 여성 총리를 추천했다”고 한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이 몹시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일설에는 노 대통령이 4월 초 이 전 총리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하면서 정 의장을 평했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와 진대제 경기지사 후보가 출마할 당시 노 대통령쪽에서 선거전략을 도와줄 사람을 추천했는데 정 의장측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측 관계자는 “여성 총리는 정 의장의 일관된 입장이었다”면서 “후보 캠프의 인적 구성은 효율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은 2002년 대선 경선서 정 의장이 ‘아름다운 완주’를 하고 신당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선 이후 줄곧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노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1월11일 당 의장 선출을 위한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노(親盧)그룹에게 정 의장을 지지하도록 뜻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총선을 전후해 노 대통령과 정 의장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당시 정 의장계에서 친노측 창당 공신에 대한 공천을 배제하려 했고, 노 대통령의 우리당 입당에 대해서도 정 의장은 “총선 후에”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정 의장 장관 시절 갈등 싹 터

▲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정동영 의장이 참석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틈이 더 벌어지게 된 것은 2004년 7월 정 의장이 통일부 장관이 돼 방북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권한과 영역, 방식 등을 놓고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이 갈등관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남북관계는 미묘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전략과 속도조절 등이 필요한데 당시 정 장관은 이 부분에 소홀하거나 과도한 축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북측에 제시한 ‘중대 제안’이나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전담할 반관반민 성격의 ‘남북협력공사’설립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 장관이 남북관계를 대권과 연계시키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이 불쾌해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 의장측은 “대북관계는 사전ㆍ사후에 대통령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실행에 옮겼다”면서 “소홀하다거나 월권이 있었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또 대북 ‘중대 제안’이나 ‘남북협력공사’ 역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범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됐다고 한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린 가운데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관계는 5ㆍ31 선거 결과에 따라 변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여당이 선전할 경우 정 의장의 당 장악력은 강화되고 대권레이스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청 관계에서 당의 우월성, 독립성도 예상된다. 정 의장이 여권의 대권 주자로 부상할수록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앞당겨진다.

반면 우리당이 참패할 경우 정 의장은 책임론에 직면하고 대권 행보의 동력도 떨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정국지형이 심하게 요동쳐 정계개편이 일어날 경우 유력한 잠룡(潛龍)의 위치에서 추락할 수도 있다. 최근 5ㆍ31 선거 판세는 광역단체장 16곳 중 우리당은 2곳만 우세, 정 의장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든 권력을 축으로 한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의 틈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가에서는 5ㆍ31 선거 후 친노 그룹과 정 의장계가 갈라서는 정계개편론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천정배 법무장관이 5ㆍ31 선거 후 당에 복귀, 노 대통령을 대리해 당권 접수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 주변에서는 최근 정 의장의 보좌관을 지낸 공직자 K씨와 자문교수단의 한 인사를 은밀히 조사했다는 소문이 나돌아 노 대통령이 정 의장 압박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당·청의 중심에 있는 정 의장과 노 대통령이 권력게임에서 간극을 좁히기가 어렵게 됨에 따라 5ㆍ31 지방선거는 양측을 포함한 정계개편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

DJ 6월 방북 '선물'에 시각차

▲ 2000년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북한이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을 수용함에 따라 벌써부터 북측과 논의할 내용과 방북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DJ의 이번 방북은 2000년 6ㆍ15 공동선언의 파트너였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전제로 한 것이서 기대가 자못 크다. 반면 정부 특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북한다는 점에서 납북자 문제 같은 당국자간 현안은 제외되고 대북 지원이나 2차 정상회담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목되는 것은 DJ가 북에 들고 갈 '선물'이다. 하지만 남북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면합의는 없었다"면서 '선물'의 존재를 부인했다. 굳이 선물이라면 북측이 요구한 비료 30만t과 쌀(미정)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선물 없는 정상회담은 없다"고 단언한다.

한 전문가는 "DJ의 4월 방북이 미뤄진 것을 두고 정부나 DJ측은 5ㆍ31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북한에 건넬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거나 북한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종석 장관이 납북자 및 탈북자 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측에 제시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물의 대가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으로 꼽았다. 그리고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은 답방이나 남북한이 아닌 제3 지역인 (극동)러시아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러시아가 김 위원장에게 가장 부담이 적은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최근 DJ 방북을 계기로 초미의 관심사가 된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에 건넬 선물은 노 대통령이 쥐고 있는데 생색은 정 의장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 의장이'숨겨진'선물에 대한 정보를 북측에 알려주며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4월 28일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위한 반관반민의 남북협력공사 설립은 노 대통령이 꺼낼 카드였는데 정 의장이 앞서 나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측은 "집권 여당의 대표이자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장본인이 남북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정당한 대북 접촉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DJ 방북을 앞두고 여권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남북 문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정 의장이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온 뒤 노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 적이 있는데 그러한 양상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그래서 DJ가 들고갈 '선물'이 더욱 궁금해지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