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몽골 발언 이후 새 기류… DJ 방북 성과가 분수령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울란바토르 발언’이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몽골을 국빈방문 중이던 9일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나아가 “더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다”며 대북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올해 안에 구체적 진전 있을 것 관측

노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정상회담과 대북지원에 대해 그렇게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선(先) 북핵해결, 후(後) 정상회담 개최’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의 태도를 주시해왔다.

그래서 ‘울란바토르 발언’은 북한에 대한 립서비스나 의례적인 발언을 뛰어넘는 함의가 내포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종문제연구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관계에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전문가는 “노 대통령은 너무 솔직해서 문제다”면서 “올해 안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외 여건이나 몇몇 징후들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상당한 근거가 있고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북한이 위폐와 마약, 인권 등의 문제로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데다 우방인 중국조차 북핵을 이유로 대북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남한이 유일한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역시 북·미 간 갈등의 여파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고 6자회담마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특별한 해법을 찾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남북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측은‘울란바트로 발언’을 통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정부는 그동안 대북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의 ‘병행론’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장기적인 교착상태로 인해 대화의 모멘텀마저 상실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올 초 통일, 외교, 안보 당국자들은 격론을 벌인 끝에 어느 한쪽이라도 진전시켜 다른 한쪽을 끌도록 하는 ‘견인론’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였다.

노 대통령의 선택은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미국과 충돌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몽골 동포간담회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우려섞인 시각을 거론하면서 “북한에 제도적ㆍ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려 한다”고 해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는 의중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통해 핵 동결 등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연구실장은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북한과 정상회담 의제를 포함한 대화를 통해 6자회담 재개 등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DJ의 6월 방북은 더 주목받는다. 노 대통령은‘울란바트로 발언’에서 DJ 방북을 통한 정상회담의 기대와 대북지원 의사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대북지원과 연계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북지원의 내용에 따라 노ㆍ김 정상회담의 시기와 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4월 말 평양에서 열린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해결 등을 전제로 제시한 ‘대규모 경제지원’이 주목된다.

대북지원 활성화로 매듭 풀 전망

북한체제 특성상 DJ 방북이 성사된 것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시할 ‘선물’에 북측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장관이 남북장관급회담에서 DJ의 6월 방북을 이끌어낸 것은 북한에 건넬 선물이 준비됐거나 결정적 시기까지 선물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남북 간에 많은 양보와 지원에 관해 교감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될 대북지원은 경협을 통해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조건’을 달지 않고 제도적ㆍ물질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혀 북핵 해결에 진척이 없어도 경협을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분야도 종래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연결 등 3대 사업이 경협의 주류를 이뤘지만 올해부터는 농업, 광공업, 경공업, 임업, 수산업 등 이른바 5대 신경협에 획기적인 조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2004년 7월 출범한 ‘고려민족경제위원회’ 산하에 ‘임가공복무총국’을 두어 경공업에 비중을 두었고 지난해 7월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 공포하는 등 남북경협에 적극적이어서 전망이 밝다.

대북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발, 의류, 비누 등 3대 경공업 원자재 지원을 북측 수준에 맞춰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철도시험운행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제2의 중대제안’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결국 노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은 DJ 방북을 측면 지원해 집권 후반기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정상회담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DJ 방북이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대북특사 1순위는 송기인, 문재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을 앞두고 청와대와 DJ측 간에 '특사'논란이 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는 노 대통령이 몽골을 국빈방문 중 수도 울란바트로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의 정신적 대부인 송기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과 5월 초 청와대에서 물러난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대북 특사 1순위로 꼽았다.

누구보다 노 대통령과의 '신뢰'가 높은 데다 특사 역할에 비춰 최적격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밖에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 등이 거론됐다.

문 전 수석은 청와대를 나온 뒤 행보가 자유로와 DJ의 6월 방북을 전후해 언제든 노 대통령의 특사 역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노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왔다는 점에서 송 위원장보다 낫다는 견해도 있다.

문 전 수석은 3일 퇴임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당초 일하던 법무법인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했지만 차기'법무장관설''비서실장설'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전 수석이 노 대통령의 지근 거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한 막후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