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남 · 북 · 러 3국 TKR · TSR 연결에 강한 의욕, 중국도 관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광고 문구에 답이라도 하려는 듯, 재야와 중견 정치인에서 공기업 CEO로 변신한 이철(58)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요즘 행보는 파격적이고 종횡무진이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이래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철도공사 구조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고 파업 노조원 2,200여 명에 대해 직위해제라는 초강경 원칙론을 내세워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남ㆍ북ㆍ러 3국 철도대표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철의 실크로드’시대를 여는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CEO, 국제통으로 변신한 그에게서 더 이상 ‘사형수 이철’‘정치인 이철’이란 붙박이 훈장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남북철도 시험운행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도를 이용한 방북 가능성 등으로 인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 사장을 17일 오후 철도공사 서울본부 사장실에서 만났다.

- 남북한은 25일 경의선과 동해선을 시험운행하기로 합의했는데 그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말한다면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 분단 이래 가장 획기적인 민족사적 사건이다.

우리는 남북분단 이후 북한의 영토나 영해, 영공은 아예 접근조차 못하고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과의 접점을 상실해 섬보다 못한 위치에 있어왔다. 그래서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중요한데 이번 경의선과 동해선 시험운행은 우리민족의 답답한 현실에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종단철도(TK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가 연결되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륙과의 인적ㆍ물적 교류, 유럽과의 길도 열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국제적 위치가 달라지게 된다.

앞으로 남북철도 개통 구간을 확대하고 정기운행을 위해 실현가능한 것부터 북한과 협의할 계획이다. 또 북한철도 개량문제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 방북을 놓고 경의선을 이용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은 민족의 혈맥을 잇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북측 입장이 어떠냐에 따라 경의선을 타고 가는 것이 유동적인데 남북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에 합의한 만큼 철도을 이용하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이 수용돼야 한다고 본다.

- 3월 중순 러시아에서 최초로 열린 남ㆍ북ㆍ러 3국 철도대표자회담에 참석했는데 남북철도와 관련한 중요한 합의사항이 있다면.

우선 남ㆍ북ㆍ러 3국이 TKR과 TSR 연결에 협력한다는 의장성명을 채택해 한반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최초로 공식 확인했다다.

주목할 점은 3국이 TKR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러시아 국경 하산-나진 구간 철도를 개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특히 이 부분은 러시아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적극 나섰고 북측 김용삼 철도상도 남북철도 연결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어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철도연결과 관련해 1단계 과제가 문산~개성 구간의 개량이라면 2단계 과제는 하산~나진 구간의 개량이며, 그 다음 3단계는 개성~나진 구간을 포함한 북한 내륙의 철도망 개량이다. 경의선 시험운행으로 1단계는 진척을 이뤘고 3개국 철도대표자 회담을 통해 2단계 과제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 남북철도 및 TKRㆍTSR 연결과 관련해 3국의 구체적 역할 분담에 관한 논의가 있었나.

아직 없고 실무회담을 준비 중이다. 오늘 철도공사 대표단이 러시아로 출발했는데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러시아는 철도연결에 매우 적극적인데 북한에 영향력이 있는 중국도 3국 회담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남북한이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 철도연결이나 개ㆍ보수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3국이 현재 논의중이다. 나진-하산 구간은 러시아가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 한국은 노태우 정부시절의 러시아 차관을 활용하고 러시아는 자재와 기술, 북한은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다. 한국이 재원을 부담하는 게 아닌가.

한때 대러 차관을 활용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재원과 관련해서는 러시아가 나진-하산 구간에 투자한다는 계획만 있고 나진 아래 철도 개량사업에 재원이 얼마나 들고 어떤 식으로 마련하느냐 등에 대해서는 진전된 것이 없다.

북한 철도 현대화는 우리가 활용할 것이고 남북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재정이 투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다. 또 북한철도의 실태 파악, 항구적인 철도사용권에 대한 보장 등 선결과제도 많다.

- 남북철도나 TKRㆍTSR 연결 문제는 통일부 등의 주무 부서가 있고 한미연합사도 관련돼 있다. 철도공사의 한계도 지적되는데.

TKR은 통일부가,TSR은 외교통상부가, 물류부분은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주관하고 건설교통부, 국방부도 관련돼 있다.

철도공사는 철도 운영에만 관여하기 때문에 남북철도 전반을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철도대표부나 철도대사와 같은 일원화된 정부 창구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를 통해 관련 부처간 조율과 정책입안이 이루어져야 한다.

- KTX 여승무원 문제가 논란이다. 일부에선 철도공사의 강경처리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 철도노조 문제는 원칙에 따라 대응해왔다.

KTX 여승무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도와줬고 계열사 정규직 채용시한을 몇차례 연기해가면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KTX 여승무원의 요구는 ‘원칙의 선’을 넘어섰다.

과거에는 파업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위기를 넘기곤 했는데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배려를 하지만 원칙은 지킨다는 입장이다.

- 철도공사가 만성적인 부채를 안고 있고 구조적으로 부실기업이란 지적이 있다..

지금 철도공사가 안고 있는 만성적인 부채는 정부 정책에서 비롯된 건설부채이기 때문에 더 큰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정부와 철도공사가 함께 해결책을 찾고 있다.

현재 국무총리실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역세권 개발이라든가 해외에 철도공사의 노하우를 활용한 자체 수입 증대 방안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철도공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인사ㆍ보직시스템을 바꾸고 투명하고 정당한 업무처리, 전문경영인 도입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공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약력
1948년 경남 진주 출생, 경기고ㆍ서울대(사회학과) 졸업.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74년), 제12~14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총무, 노무현 후보 부산공동선대위원장, 열린우리당 고문, (주)코코캡콤ㆍ코코엔터프라이즈 회장. 좌우명은 “원칙은 결코 버릴 수 없다”이고 별명은 ‘작은 거인’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