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재 전방위 로비 불구 이흥주 전 특보 재·보선 공천서 탈락"대선서 도움 안돼" 인식… '차떼기 당' 과거와의 결별 의미도

▲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지난 4월 3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우리의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극동방송의 초청강연을 한 뒤 감사패를 받고 감사의 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마 그렇게까지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7월 26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에 대비한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를 놓고 요즘 당 안팎은 쑥덕공론이 한창이다. 서울 송파 갑에 이회창 총재 정책특보를 지낸 이흥주 씨가 이 전 총재의 전폭적 지원 속에 공천을 신청을 했다가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채 고배를 마신 게 주된 얘기거리다.

이흥주 전 특보는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 중의 측근이다. 이 전 총재가 국무총리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대통령 후보시절 정책특보로서 지근 거리에서 그를 모셔왔다. 이런 그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공천을 신청했는데 탈락을 했다.

이 전 특보 공천 탈락을 두고 창의 염려와 배려가 없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 전 총재는 두 팔 걷고 자신의 측근 이 전 특보의 공천을 위해 뛰었다.

당 지도부를 만나 이 전 특보의 공천을 부탁했고, 자신의 과거 측근들에게도 일일이 전화를 해서 이 전 특보의 배려를 부탁했다. 심지어 송파갑 공천을 염두에 둔 다른 인사가 찾아오면 “이번에는 이흥주 전 특보에게 양보하라”며 아예 미리 선을 그어버리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전방위로 뛴 것이다. 그런데도 탈락했다. 그래서 더 비감한 것이다.

지난 6월 27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7ㆍ26 재ㆍ보선 공천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서 이흥주 전 특보는 공천심사위원 11명이 1인 2표씩 던진 표 22표 가운데 단 2표를 얻었다. 이 전 특보는 1차로 걸러낸 4명 가운데도 들지 못했다.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한 공천심사위원의 당시 상황 설명이다.

“공천 심사위원들도 결과가 나오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이흥주 씨는 당연히 1차에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다들 생각했다. ‘내가 표 안 던지더라도 1차는 통과하지 않겠나’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 이 씨가 고작 2표만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공천 탈락에 화난 이회창

이 전 특보의 공천 탈락은 창에게도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 전 총재는 이 전 특보의 공천 탈락 이후 당에서 경위 설명차 보내온 한 의원을 창은 두 번이나 돌려보냈다고 한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이흥주 전 특보의 공천 탈락은 한나라당에도 꽤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전 총재가 누군가. 두 번이나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였고 한나라당의 대주주였고, 한나라당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이 전 총재측의 해석을 들어보자. “공천심사위원들이 자기들 판단에 따라서 결정한 것일 뿐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에 지도부 공백상태가 있지 않느냐. 그래서 공심위의 결정을 당 전체의 기류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의 이 전 총재 지우기, 혹은 이 전 총재와의 완전 결별 신호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사태를 두고 ‘과거와의 결별’이라는 적극적 해석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이회창 전 총재의 존재가 더 이상 한나라당이 대권을 찾아오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전 총재에게는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그가 대선에서 정권을 가져오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은 의원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전 총재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차원에서 이 전 특보를 탈락시켰다는 얘기다.

한 공천심사위원의 말이다. “이 전 특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뒤에 이 전 총재가 서 있다는 점이 공천심사위원들에겐 솔직히 부담이었다.”

한 재선 의원은 “불법 대선자금 문제, 즉 ‘차떼기 대선자금’에서 이 전 총재가 아직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당시 선거풍토 상 불가피한 측면이 물론 있지만, 다음 대선에서 그런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내에 그를 뒷받침해 줄 세력이 없다는 점도 이 전 총재의 급격한 몰락을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두 번의 대선 패배 후 이 전 총재가 떠난 한나라당의 자리엔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섰다. 이 전 총재의 공간은 한나라당에서 더 이상 찾기 어렵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 볼 때 이 전 총재는 자신의 정치 행보를 다음 대선에서의 ‘킹 메이커’로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킹 메이커 + 알파’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재작년부터 남대문에 사무실을 내고 정치행보를 재개한 것,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 발언을 내놓은 것 등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당내 대권경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흐릿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라면 그의 ‘킹 메이커’ 꿈조차 ‘꿈’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 지난해 10월 23일 이 전 총재가 대구동을 재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후보의 선거사무실을 방문,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2002년 12월 대선 패배 이후의 한나라당의 역사는 ‘이회창 지우기’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혁혁한 공로는 최병렬 전 대표가 세웠다. 최 전 대표는 누구보다 이 전 총재 흔적 지우기에 적극적이었고, 2004년 초 이 전 총재의 당내 기반과 싸우다 자신도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결과적으로 17대 공천에서 최 전 대표는 이 전 총재의 당내 기반을 확실히 허물어뜨려 버렸다.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중진 의원들-하순봉, 양정규, 김기배 전 의원 등-이 대거 낙천의 고배를 마셨다. 17대 의원들 가운데 이 전 총재의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박근혜 전 대표는 최병렬 대표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역시 창의 공간을 없앴다. 그의 마지막 측근들- 유승민 의원, 이병기 전 특보 등-을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측근으로 끌어들였다.

"당 원로 중 한 사람일 뿐"

이 전 총재는 지금 당내서 그 존재마저 지워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 전 특보의 낙천 사태는 이 같은 정황을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전 총재는 과연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측근들은 이 전 총재는 두 번에 걸쳐 1,000만표 이상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의 중요한 자산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아직 이 전 총재의 중요한 역할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 같은 얘기에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다. 그가 그나마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의 원로로 남아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얘기다. ‘이 전 총재는 이제 자신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을 찾기보다 당이 그에게 일을 맡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그도 살고 당도 살 수 있다.”

이 전 총재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동훈 정치부 기자 d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