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전당대회와 향후 당내 세력균현親朴 강재섭 의원 당대표 선출로 '박근혜당' 구축 성공… 이명박 '3단계 대권프로젝트'로 진검 승부 별러

▲7월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강재섭 후보가 미소를 짓는 반면 이재오 후보는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오 의원이 전화를 합디다. 혹여 오해라도 살지 모르니 아무런 연락도 하지말라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없었지만 여기저기 지방 특강으로 그럴 겨를도 없었어요. 그런데 대리전이 어떻고 하니… 허허 참.”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나고 이틀 후인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개인사무실 ‘안국포럼’에서 만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7ㆍ11 전당대회가 박근혜 전 대표와 자신의 ‘대리전’이라는 보도에 황당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실제 이 전 시장의 7월초 스케줄을 보니 서울의대교수 워크샵 특강(강원도 춘천), 전남노회남선교회 간증(광주) 등 지방에서 열린 강연과 종교행사 참석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저쪽(박근혜측)에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강 대표가 잘 해나갈 겁니다. 이재오 최고위원도 혼자 뛰어 500표 차이면 아주 잘한 것 아닙니까.”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의원이 새 대표가 된 것에 대해 괘념치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석패한 이재오 최고위원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박 전 대표측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승산이 있는데 왜 대리전을 하겠나. 저쪽(박근혜쪽)이 다 공작한 것이다.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냄새를 풍겨 ‘박심(朴心)’을 자극하고, 박 전 대표도 노골적으로 가담했다. 내가 원내대표 맡을 때 그렇게 잘 모셨는데 한마디로 배신행위가 아니냐.”

이 최고위원은 12일 강재섭 의원이 이른바 ‘박심’에 힘입어 당 대표로 선출되자 박 전 대표에게 쌓였던 불만을 쏟아낸 뒤 연락도 끊은 채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13일 강 대표가 처음 주재하는 최고위원 회의에도 불참,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강 대표측은 “대선주자 대리전은 저쪽(이재오 후보측)에서 먼저 시작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도 열심히 뛰었다. 나는 박 전 대표에게 도와 달라고 한 적 없다. 박 전 대표가 스스로 화가 나 움직인 것이다”며 반박했다.

朴·李 진영 첨예한 대립각

이번 전대가 사실상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구도’로 치러지면서 두 대권주자 진영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분석과 함께 이러다간 자칫 당이 둘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ㆍ이 양 진영이 당권을 놓고 전면전을 벌인 데는 7ㆍ11 전대가 계급장을 떼고 대선레이스를 펼치는 차기주자들에게 대권 고지 선점을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초반 승부처였다.

당 일각에서는 6월 30일 당내 소장ㆍ중도개혁 모임인 ‘미래모임’의 단일 후보 경선 결과도 박ㆍ이 진영의 힘겨루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친(親)박측에서 반박(反朴) 성향을 보이는 남경필ㆍ임태희 후보의 본선 진입을 막기 위해 권영세 후보를 미래모임 후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내 중도개혁파 모임인‘국가발전전략연구회’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인 모 의원이 사전에 미래모임에 회원을 대거 가입시켜 남경필ㆍ임태희를 제치고 권영세를 (단일후보로) 뽑고 나서는 강재섭을 밀었다"고 비난했다. 원희룡 의원도 그 과정에 “작전세력이 개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외에서는 전당대회 직전까지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박근혜 대통령후보-강재섭 당대표’ 조합과 ‘이명박 대통령후보-이재오 당대표’ 팀을 각각 지지하는 당원, 지지자들이 패가 갈려 난타전을 벌였다.

7ㆍ11 전대에서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은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 전 시장이 전대 내내 단상 옆의 고위 당직자석에 얌전히 앉아있던 반면 박 전 대표는 일반 대의원들과 방청석에 앉아 손을 흔들고 악수를 나누는가 하면 이재오 후보 연설 때는 단상 가까운 장애인석으로 옮겨가 앉아 대의원들 사이에선 “강 후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일었다.

결국 강재섭 후보는 국민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 7%나 크게 뒤졌으나 대의원 선거에서 이 후보를 제압, 새 대표로 당선됐다. 강 대표 스스로 인정하듯 박풍(朴風, 박근혜 바람)’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당의 핵심 관계자는 “높은 당 기여도와 대중적 인기를 지닌 박 전 대표의 힘이 적어도 10~15% 가량의 대의원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측에서 충청권의 중요성을 인식해 지원한 강창희 후보가 3위를, 당내서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전여옥 후보가 4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 전 대표의 완승이었다.

박ㆍ이 ‘대리전’은 올 초 1월 12일 새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도 있었다. 당시는 박 전 대표가 당을 주도하고 있고 의원들마다 5월 지방선거에서 ‘박풍’을 기대하는 터여서 친박계인 김무성 의원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결과는 친이계로 분류되는 이재오 의원의 낙승으로 끝났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시장이 7월 당 복귀를 앞두고 당내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서울시장에 출마하려는 이 의원을 설득해 원내대표쪽으로 돌렸고 친이계 의원과 소장파의 지원을 받아 당선시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

당시 박 전 대표의 독주는 제동이 걸렸고 이 전시장의 당내 입지는 확대됐다. 게다가 박 전 대표측이 7월 전대를 겨냥해 당 대표를 맡기를 기대한 김덕룡 의원이 공천비리 의혹에 연루돼 낙마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이재오 원내대표가 당권에 도전, 당선이 유력해지자 박 전 대표측은 비상수단을 강구했다. 마침내 강재섭 의원을 구원투수로 올렸고 뒤집기에 성공했다.

박ㆍ이 양측이 물밑에서 대권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 전 시장이 ‘청계천효과’에 힙입어 명실상부한 대권주자로 올라서면서부터다.

당시 당내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던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에게 추월당했고 의원들마저 이 전 시장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를 비롯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결과 박 전 대표의 확고한 ‘안방’으로 여겨졌던 대구-경북(TK)에서도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은 박 전 대표측에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ㆍ이 양측의 대립은 지난해 12월 사학법 파동과 관련, 박 전 대표 주도아래 추진된 장외투쟁이 ‘이념 공방’으로 비화된 것에 대해 이 전 시장이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올 1월 원내대표 경선전에 이어 2월 ‘초지일관’ ‘중초회’ 등 수도권·비례대표 중심 초선그룹과 영남권 출신 초선들이 망라된 ‘낙동모임’이 주도권 다툼을 벌인 것도 친박 대 친이 간 대립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기반이나 성향상 이 전 시장과 가까운 의원들이 많은 초지일관과 중초회가 2월 10~11일 당내 전체 초선의원들이 참가하는 연찬회를 열어 헤게모니를 장악할 움직임을 보이자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망라된 낙동모임이 브레이크를 걸어 무산시킨 바 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박ㆍ이의 대권 경쟁은 3월 이후 이 전 시장이 ‘황제테니스’논란에 휘말려 추락한 반면 박 전 대표가 4ㆍ30 재보선, 5ㆍ31 지방선거 등에서 박풍의 위력과 함께 인기를 회복하고 7ㆍ11 전대에서 완승함으로써 그야말로 ‘박근혜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당 구조 또한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재편돼 대선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강재섭 대표체제에서 전여옥ㆍ강창희 최고위원, 김형오 원내대표 등 범박근혜계가 당 요직을 장악, 벌써부터 ‘한나라당=박근혜당’이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 구성원 9명 중 절반 이상이 친박계이고 새 대표체제에서는 최고위원회의가 일반 당원과 ‘국민참여선거인단’ 등 대선후보 선거인단의 4분의 3을 선출하게 돼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대권주자가 투표하고 있다. / 오대근 기자

현재 대의원의 70% 이상이 내년 6월에 실시하는 대통령 후보 경선의 선거인단이라는 점도 박 전 대표가 당내 대선 후보로 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번 전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당 소속 기초의원(1,622명), 광역의원(557명), 기초단체장(155명) 등은 지난 5ㆍ31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로부터 공천장을 받아 당선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중앙당 및 시도당 사무처 직원(210명)의 대다수도 박 전 대표와 생활하면서 유대가 깊은 데다 지난 6월에 선출된 시·도 당위원장도 대부분 친박계로 포진해 있다. 당내에서‘박근혜 대세론’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이 전 시장은 힘겨운 대선레이스를 펼치게 됐다. 당내 교두보 역할을 기대한 이재오 최고의원이 당권 도전에 실패한 데다 궁극적 지지세력으로 중도파의 지도부 입성이 무산되면서 적지않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중적 인기의 기반인‘청계천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발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가에서는 지금 추세라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 전 시장측에서 ‘박근혜 대세론’을 뒤집을 만한 동력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측은 대선후보 경선까지는 1년 가량 남아 있고 MB(이명박의 영문 이니셜)의 대권플랜을 가동, 민심을 얻으면 이 전 시장이 대선 후보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한 측근은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도 두 차례나 실패했다. 박 전 대표가 현재 우위에 있다고 하지만 민심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며 “7ㆍ11 전대에서 민심이 이재오 후보를 선택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는 국민, 민심이 선택하는 것이고 민심이 결국 당심(黨心)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이 당내 세력기반 면에선 박 전 대표에 비해 열세이긴 하지만 국민적 지지와 본선 경쟁력에서는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3단계 대권플랜’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1단계는 퇴임 직후인 7월부터 12월까지로 인재 영입과 전국 네트워크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2단계는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는 시기인 내년 1월부터 6월까지로 대선후보에 올인한다는 전략이다.

3단계는 경선 이후 12월 본선까지로 2단계의 연장이지만 대선 후보가 되지 못했을 경우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가 일각에선 강재섭 체제가 반드시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벌써부터 지도부에 5ㆍ6공의 보수파 인물이 대거 포진 ‘도로 민정당’이란 비아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강 대표가 대구 출신이고, 새 원대대표로 선출된 김형오 의원도 부산 출신인 데다가, 대선 후보마저 영남 출신이면 ‘영남당’이라는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한 3선 의원은 “97년, 2002년 대선에서 호남ㆍ충청표로 인해 패한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13일 새 원내대표에 박 전 대표 측근인 김무성 의원 대신 친박 색깔이 덜한 김형오 의원을 선출했다.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전재희 신임 정책위의장은 이 전 시장과 가까운 비주류다. 7ㆍ11 전대에 나타난 박 전 대표의 독주에 일단 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사활을 건 내년 한판 승부를 앞두고 박근혜ㆍ이명박가 벌이는 샅바싸움은 여전히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