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과정서 색깔론·대권주자 대리전 논란 등 후유증으로 상처 깊어

약력
▲경북 의성(57) ▲경북고ㆍ서울 법대 ▲청와대 정무ㆍ법무비서관 ▲민자당 기조실장 ▲신한국당 대변인ㆍ총재비서실장ㆍ원내총무 ▲국회 법사ㆍ정치개혁특위원장 ▲한나라당 부총재ㆍ최고위원ㆍ원내대표 ▲13ㆍ14ㆍ15ㆍ16ㆍ17대 국회의원
“이번에 5선 정치 인생을 모두 걸었다. 당 대표 경선에서 떨어지면 정계를 은퇴할 생각이었다.”

강재섭 대표는 7ㆍ11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 당선 직후 흥분을 가라앉히며 속내를 털어놨다. 그만큼 전대에 나선 강 대표는 비장했었다. 뒤늦게 출발해 위험부담이 컸고 일종의 도박이기도 했다. 실제 전대 경선이 임박해서까지 이재오 후보에게 밀리다가 막판에 역전승을 거뒀다. 4번의 도전 끝에 뜻을 이룬 4전5기의 승리였다.

강 대표는 13대 국회 때 민정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한 뒤 대구 서구에서 내리 4번 당선된 뒤 1998년 처음 당권에 도전장을 냈다. ‘TK 꿈나무’, ‘한국의 토니블레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기세 있게 총재 경선에 나섰던 강 대표는 그러나 이회창 총재라는 높은 벽 앞에 출마선언 8일 만에 뜻을 접어 “새가슴”“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지난 2002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는 서청원, 강창희, 김진재 의원에 이어 4위를 했고 2003년 전당대회 때는 3등을 했다. 2004년에는 당권에 도전하는 대신 박근혜 전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는 데 기여했다. 줄곧 낮은 인지도로 고전하던 강 대표는 끝내 대권 꿈을 포기하고 지난달에 대표 경선 출마를 결심, 마침내 뜻을 이뤘다.

상처뿐인 영광 감정의 골 메워야

하지만 강 대표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다. 이재오 최고위원과의 경선전이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되면서 친박 진영의 지원이 강 대표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말이 많다. ‘영광’보다는 ‘상처’가 큰 게 현실이고 미래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강 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고 부담이 크다다.

우선 전대 과정에서 불거진 ‘대권주자 대리전 논란’ 후유증을 치유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전대과정에 불만,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고 당내 소장개혁파 역시 강 대표 체제에 불신을 표명해 당 운영에 험로를 예고했다.

당권경쟁이 과열되면서 ‘뿌리론’,‘색깔론’ 등을 앞세운 거친 감정싸움으로 당내 제 세력 간의 패인 골을 메우고 공정한 당 운영에 대한 불신감을 해소해야 하는 실정이다.

강 대표는 1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최고위원은 솔직 담백하고 날이 분명한 투사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며 “이 최고위원에게 엄청난 표를 줘 당선시킨 국민적 여망이 있는 만큼 그의 생각도 당연히 반영하겠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또한 “한 달 전까지 나도 대선 주자였던 사람으로 특정 주자의 편을 들어주는 일 없이 모든 것을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해 불신감 차단에 적극 나섰다. 그는 덧붙여 “만약 대선 경선 관리때 출신지역이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대표직을) 용퇴할 각오”라며 단호한 의지를 표시했다.

강 대표는 지도부가 영남ㆍ보수 인사로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내 눈으로 봐도 확실히 그렇다”면서 “이런 것을 보충하기 위해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너무 지나친 부분은 깎아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사 탕평책을 통해 당내 힘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따라 제헌절이 지나 선보일 당직 인사에는 친박근혜계 인물 기용을 자제하고 가급적 중도·개혁 소장파를 중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표는 주요 당직도 사전에 이재오 최고위원과 상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 강 대표는 미래모임 단일후보로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권영세 의원에게 사무총장직을 제안했으나 권 의원이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미래모임 단일후보 선출 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임태희 의원, 소장개혁그룹인 수요모임 소속인 정병국 의원의 사무총장 기용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표가 임명할 수 있는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 중 하나에는 미래모임 소속 남경필 의원과 권영세 의원이 유력시된다. 대변인에는 초선의 나경원 의원, 홍보기획본부장에는 언론인 출신인 김병호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대권주자가 아닌 제1 야당 대표로서 여권과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것도 강 대표의 과제다. 강 대표는 “현안에 대해 제1 야당으로 ‘비판적 협력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국리민복을 제1의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경제 대국이 되려면 FTA를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졸속으로 해서 손해를 보면 안 된다. 특히 농업 분야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 정권이 엉터리로 추진하면 제동을 걸겠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 경선 관리 등 난제 수두룩

사학법 처리와 민생 현안에 대해선 “민생 관련 문제는 사학법과 연계하지 않고 철저히 국민 편의와 복지 입장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혀 박근혜 전 대표 체제와의 차별화를 위한 시도로 비쳐졌다.

한나라당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한 정권 창출 방안과 관련 강 대표는 “당이 속도감 있게 변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덕성을 회복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관용하는 당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당을 정화하는 ‘클린 핸즈(Clean Hands) 본부’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부패세력이나 친북세력을 제외한 어떤 세력과도 정권교체를 위해 손을 잡을 수 있다”며 범우파 연대론에 동조했다.

개헌 논의는 “여권이 대연정, 소연정 주장의 연장 선상에서 판을 흔드는 것”이라며 “일체 응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강 대표의 임기는 2년. 그 기간에 내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치러내야 한다.

강 대표 체제는 ‘대선 관리형 과도체제’라고 할 만큼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끝내야 하는 큰 부담을 안고 있다. 자칫하면 당이 분열될 수도 있다. 그가 하루빨리 ‘박근혜 대리인’이란 딱지를 떼 내고 홀로 서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당 안팎으로 화합과 변화를 주도해야 하는 과제도 험난하다.

강 대표에 대해서는 원내대표 시절 보여줬던 ‘유연함’을 높게 평가하고 한나라당을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성품을 가졌다는 평가도 있다. 특유의 친화력과 신속한 상황판단 능력도 강 대표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견고한 보수파-개혁 소장파와 친박-친이 진영의 내재된 갈등, 당 내부의 쇄신 압력과 당 외부의 여권 공세 등 그 앞에 놓인 안팎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대표에 당선되자마자 ‘강재섭 리더십’은 이미 시험대에 들어섰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