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재보선 또 완패… 민주당, 정치권 '새판짜기' 동력 확보

7ㆍ26 재보선의 히어로, 조순형 전 대표의 정치 복귀가 정치권에 던진 충격파가 상당시간을 갈 것 같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탄핵 주역의 정치 복귀라는 의미와 함께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에서 ‘非노-反한나라당’ 세력의 결집이라는 틀을 고착시킨 의미가 크다.

탄핵의 주역을 공천한 민주당의 승부수는 대성공을 거뒀다. 조 전 대표의 국회 재입성으로 수도권 교두보를 마련한 민주당은 ‘호남당’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을 뿐더러 이를 바탕으로 열린우리당과의 정계개편 주도권 다툼에서 협상권을 크게 상승시킨 효과를 얻었다.

한화갑 대표는 즉각 “열린우리당은 곧 해체될 당”이라며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중심에 서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했다. ▲당대당 통합 불가 ▲분당세력 통합 불가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 등 정계개편의 3원칙도 발표했다.

민주당의 구상은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 이전에 정계개편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열린우리당 전열정비의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한 대표가 여권의 정대철 전 의원, 염동연 의원 등을 꾸준히 접촉해 정치권 새판짜기를 논의하는 한편, 밖으로는 "여당 의원들을 만나봤더니 상당한 동요가 있었다"고 양동작전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노·비한나라 세력 결집 틀 마련

재보선 이후 여당 내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점은 민주당의 반노-비한나라 세력의 이합집산 노림수와 맞물려 ‘조순형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탈당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론이 재보선 직후 여당 내에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특히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문학진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김 의장이 단속한 ‘노 대통령 탈당’ 논란에 불씨를 지핀 대목이 심상치 않다. 여당 내에서 만연된 반노 기류가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김 의장이 재보선 후 당·청관계의 재정립을 시사한 대목 역시 ‘청와대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당내 다수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지난 5.31 지방선거 후 두 달간 걸어 온 ‘김근태 체제 1기’에 대한 회의적 평가가 확산되고 있고,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당 복귀로 김 의장의 구심력도 상당부분 위협받는 상황이어서 숨죽이고 있던 계파 간 갈등이 다시금 표면화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역시 정계개편 논의와 맞물릴 경우 상당한 파급력을 갖고 번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12석에 불과한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중심이 되겠다”는 포부는 정치적으로 다소 과장됐다는 평가도 있다. 원내 다수당이자 집권여당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열린우리당과의 힘의 역관계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에선 아직까지는 “조 당선자의 존재가 정치지형의 변화와 관련해 큰 파괴력을 가지기 어렵다”며 조기 정계개편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외형적으로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원칙론자인 조순형 전 대표 역시 지금 당장은 한화갑 대표의 정계개편 흐름에 동조하는 모습이지만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선 한 대표 등과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나라 대권주자들 영향력에 상처

이런 가운데 주목받는 범여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은 고건 전 총리다. 일단 정계개편의 물꼬가 트이고 흐름이 빨라지는 여건이 형성된 것이 고 전 총리에게 유리한 상황 전개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계개편 협상력이 상승한 대목, 여당 내에서 대선후보 선출방식 변경 논의가 분출되고 있는 대목, 그리고 자신의 정치조직으로 발족 예정인 ‘희망연대’가 당초 예상보다 파괴력을 보이지 못하는 대목 등은 고 전 총리의 행보가 더뎌질 수 있는 요인이다.

조 전 대표의 복귀는 한나라당에도 직간접적인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범여권에 대한 견조한 우위가 깨지면서 당 지지율은 5.31 지방선거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재보선 불패의 신화가 무너진 데에 따라 ‘강재섭 지도부’의 연착륙도 쉽지 않게 됐다.

특히 7.11 전당대회 후 지도부 내부의 반복되는 갈등, 수해지역 골프, 호남 비하 발언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한나라당의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에 대한 심판이 이번 재보선 결과의 한 축으로 평가된 것도 정권탈환에 대한 경고음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이 재보선 지원에 총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재보선 전승 행진에 제동이 걸림에 따라 이들의 ‘대중적 파괴력’에도 회의론이 싹틀 여지가 생겼다.

강재섭 대표의 전열 재정비가 지속적인 지도부 내 갈등 속에 진척을 보이지 못할 경우, 이들 대권주자들 사이의 균열로 확산될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여야 공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고취된 것이 ‘조순형 효과’의 가장 큰 의미인 셈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