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중국화' 노골화… 중국군 북·중 국경지대 이동 등 의도적 긴장조성 움직임도

▲ 백두산 국경사진
1992년 3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선양(沈陽). 북한의 김일성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는 A교수는 중국측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6개월 가량 머물렀다. A씨는 중국 학자들과 만주지역(중국 동북3성)에 관한 역사를 논하고 귀국할 때는 적지않은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듬해 또 다른 북한 교수가 선양에서 중국 학자들과 동북지역 고대사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귀국했다.

1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 중국은 고구려, 발해 역사가 중국의 지방 역사, 또는 소수민족의 역사로 중국사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역사 분야의‘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최근에는 백두산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가 하면 백두산 인삼을 국제 브랜드로 육성하고 백두산 광천수를 산업화하는 계획을 발표, 노골적으로 ‘백두산 중국화’에도 나서고 있다. 영토 분야의 동북공정인 셈이다.

우리 역사의 무대였으며 흔히 만주라 불렸던 동북3성의 역사적ㆍ영토적 논란에 대비해 중국은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궁핍한 북한 교수를 데려다 중국에 유리한 역사적 해석과 주석을 달게 한 것은 그중의 하나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한ㆍ중 간에 만주지역에 대한 역사적ㆍ영토적 논란이 있거나 백두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북한 학자들이 연구해온 자국에 유리한 자료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역사학자 크로체가 말한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경구가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조선족 경계·사막화에 따른 전략

중국이 동북공정에 나선 데는 내외(內外)의 두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외적 요인으로는 우리 역사의 일부인 동북3성 지역과 조선족의 특성이 거론된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조선족을 가장 경계한다”고 말한다. 중국이 달라이라마의 티벳족보다 조선족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고유 언어를 사용하고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분쟁 시 남북한을 선택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내적 요인으로는 중국의 심각한 사막화 확산을 든다. 8월 현재 중국의 사막화는 전체 국토면적의 18.3%에 이를 정도다. 일부 지역은 곳곳에 나무를 심어 사막화가 줄어들고 있지만 베이징과 텐진, 허베이(河北)성, 네이멍구자치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은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임업국 사막화방지판공실의 류타(劉拓) 주임은 “사막화 방지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국부적으로 사막화가 확산되는 추세”라며 “매년 사막화로 540억 위안(약 6조4,000억원)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동북3성에 집착하는 데는 사막화에 따른 그들의 생존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이 근래들어 랴오닝성의 강력한 군대를 북·중 국경지대에 전진 배치시키는 것도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지난달 5일 북한 미사일 사태 이후 중국은 인민해방군(선양군구 제16집단군) 2,000여 명을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구의 투먼(圖們), 룽징(龍井), 총화(從化), 훈춘(琿春) 등 북·중 접경지대에 증파한 데 이어 25일엔 백두산(중국명 長白山, 창바이산) 지역에서 야간 미사일 훈련을 실시, 북한과의 무력충돌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행동을 했다.

이에 앞서 2월 10일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하기 전 북·중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랴오닝성의 인민해방군 14만 명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ㆍ한국의 설에 해당)에 휴가를 못가고 대기했었다.

따라서 북·중 관계를 단순히 외교적 시각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북ㆍ중이 50여 년 혈맹(血盟)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중국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북한을 버리거나 심지어 예속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 북·중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북한은 “중국을 믿을 수 없다”며 날을 세웠고 중국은 “골칫거리”라며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다.

북·중관계가 뒤틀린 데는 북한 미사일 사태가 표면적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중국은 미사일 사태를 북·미 간의 문제, 북한 군부의 일로 여겨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중국이 정작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라고 한다.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압박해 동북아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를 경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선포하면서 대북제재에 나섰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래 이완된 한ㆍ미 관계를 복원하고 남ㆍ북ㆍ중 3국의 밀월관계를 차단하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미국은 6자회담과는 별도로 동북아 지역의 동맹강화를 통한 대(對) 중국 포위망 구축에 나서 지난해 2월 19일 일본과 안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양국의 공동 이익선에 ‘대만의 안보’를 포함시켜 중국을 자극했다. 이어 11월 17일에는 한·미 양국이 경주 공동선언을 통해 그간 삐걱거리던 한-미 동맹을 ‘전략관계’로 한 차원 격상시켰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일, 한·미 신(新) 안보동맹이 형성됐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일 안보 공동성명을 맞받아치는 차원에서 지난해 3월 대만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했다. 동시에 북한, 러시아, 몽골 등 주변국과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그해 10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전격 방문, 군사협력에 치우쳤던 양국관계를 경제를 포함한 전면적인 협력관계로 격상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비한 포석 의미

이에 따라 동북아질서는 미국과 중국을 양 축으로 한 ‘신(新) 안보동맹’ 대결구도로 재편됐다. 하지만 미국은 단번에 중국에 반격할‘노림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북한의 ‘위폐’와 ‘돈줄’이다.

지난해 9월 4차 6자회담후 채택한‘9ㆍ19 베이징공동성명’은 단순한 핵문제 차원을 넘어 ‘한반도 비핵화-북·미, 북·일 관계정상화-한반도 평화체제-동북아 안보틀’까지 담아 한반도 평화문제 해결의 백과전서로 불렸으며 주최국 중국은 한껏 고무됐다.

그럴 즈음 미국은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BDA)’가 북한의 위조달러를 유통시키켰다고 공식 발표, ‘위폐’공방이 시작되면서 9ㆍ19 공동성명은 빛이 바랬다.

미국의 입장에서 ‘위폐 카드’는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는 양수겸장이었다. 북한은 ‘경수로 우선 제공’ 요구를 할 수 없게 됐고, 중국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해 노골적으로 북한을 감쌀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이 BDA 자금을 추적한 내역은 중국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BDA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중국 내 다른 북한 거래 은행과 함께 위폐뿐 아니라 무기수출, 마약, 가짜 담배 등을 통한 외화벌이 통로로 전해진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내 은행의 북한 계좌가 차명, 즉 제3자 중국인 명의로 개설됐다는 게 미국 정보관계자의 설명이다. 중국이 북한의 위조달러에 일부나마 간여했다는 오해를 살만해 미국의 ‘위폐’ 카드에 중국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중국은행(BOC)은 마카오지점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제재에 동참했다.

중국의 조치는 북한 정권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 위원장이 올해 1월 10일부터 8박9일간 중국을 급히 방문한 배경엔 북-중 간의 전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북한 정권의 ‘돈줄’을 옥죄는 미국에 대해 중국이 막후 정치적 해결사 역할을 해 줄 것을 긴급 요청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 공안은 오히려 김 위원장의 서기실장(비서실장) 강상춘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마카오에서 체포, 북한을 격노케 했다. 북한이 중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2ㆍ10 핵보유 선언을 강행한 데는 위폐 문제로 북ㆍ중 관계가 틀어진 것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핵 카드에 미국이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고 중국 역시 대북 금융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은 고립되는 상황으로 몰렸다. 7월 5일 북한이 중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미사일과 대포동 2호를 시험발사한 것은 대내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란 등 중동국가에 미사일 성능 실험을 직접 참관케 해 미사일 판매를 도모하고 미국을 위협해 북·미 직접대화를 이끌어낸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야 양자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최소한 BDA 등 대북 금융제재를 풀어야 6자회담에 나가겠다고 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위폐에 이어 인권, 마약, 테러 등에 강력 대처할 것을 천명,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국가 발전의 획기적 전기로 삼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국제박람회 등을 앞두고 동북아 질서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한의 마이웨이식 행보에 경고

7월 20일께 미국과 위폐, 돈세탁, 마약, 테러 등과 관련된 국제범죄에 공동 대처하기로 하고 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북한에 대해서도 벼랑끝 전술로 동북아의 긴장을 심화시키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특히 군부 강경파는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7ㆍ5 미사일 시험발사나 6자회담 불참, 남한과의 관계 단절 등 ‘마이웨이’식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과의 긴장감이 높아가는 상황이다.

북한의 2ㆍ10 핵보유 선언과 관련 인민해방군을 북·중 국경에 배치할 당시 중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은 북한 내 임가공, 광업, 수산업 등 전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중국인들도 상당수 들어가 있어 북ㆍ중 간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자국 재산과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국경을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 미사일 사태 이후 북·중 국경에 배치된 중국군에 대해 베이징의 소식통은 “그들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특수군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백두산까지 손을 뻗치며 시나브로 조여오는 중국의 동북공정 의도와 북한의 마이웨이로 인한 북·중 간의 갈등은 동북아정세를 불투명하게 하는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