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前 법무 당 복귀… 당·청 가교역 넘어 대권 꿈꿔"범개혁세력 연대하자" 물밑 세 규합… 낮은 지지도가 걸림돌

▲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요즘 ‘왕의 남자’와 ‘괴물’이 화제다. 영화계 얘기가 아니다. 장관직을 던지고 느닷없이 당에 돌아온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달 말 천 전 장관이 사표를 내고 당에 복귀했을 때 당 안팎에서는 “왕의 남자가 돌아왔다”는 말이 회자됐다. 복귀 시점이나 당ㆍ청 관계,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그의 복귀에 다분히 ‘노심(盧心)’이 실렸다는 분석에서다.

다른 쪽에서는 여권의 예비 대선후보인 천 전 장관의 대권행보가 시작됐다는 ‘신호탄’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정동영ㆍ김근태 전·현직 의장이 노 대통령과 멀어지고 당내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잠룡인 천 전 장관이 ‘괴물’과 같은 흥행 대박을 당내에서 터트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런 기대도 나왔다.

그만큼 천 전 장관이 최근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5ㆍ31 지방선거 참패 후 ‘난파선’과 다름없이 침몰하는 여권의 사정과 당ㆍ청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할 수 있는 신선함과 대권 잠재 후보라는 중량감이 작용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과의 끈끈한 인연과 호남의 인물이라는 점은 당내는 물론 대선지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구원투수' 신선한 이미지에 기대감

천 전 장관은 자타가 인정하는 ‘노(盧)의 사람’이다. 1993년 자신이 대표로 있던 ‘해마루’법무법인에서의 인연에서부터 천 전 장관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현역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그 연장선에서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나섰다.

지난해 7월 노 대통령이 천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에 발탁한 것이나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ㆍ청이 대립하고 노 대통령이 압박을 받는 가운데 천 전 장관이 조기에 당에 복귀한 것은 노ㆍ천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ㆍ정ㆍ청 오찬회동에선 노심의 일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한명숙 총리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우리당 천정배, 신기남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여권 내 잠재적 대권후보군이다.

애초 이날 청와대 회동에는 김근태 의장 등 당 지도부만 참석할 계획이었지만 5일 청와대가 이들을 참석자 명단에 포함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오찬 참석을 두고 당ㆍ청 관계에서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현 당 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한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 균형추로 정계개편 주도권

정치권에서는 천 전 장관의 복귀를 두고 당ㆍ청 간 가교가 되는 것 외에 정동영과 김근태계가 좌우해온 당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정계개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도 강화하는 등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ㆍ청 관계는 지방선거 패배 책임소재를 놓고 한바탕 내홍을 치룬 뒤 정동영 의장이 물러나고 청와대가 김근태 의장 체제를 인정하는 선에서 갈등이 봉합됐지만 김병준ㆍ문재인 인사 파동을 겪으면서 재발, 간극이 더 벌어졌다.

게다가 7ㆍ26 재보선에서 민주당 조순형 의원의 당선으로 정계개편론이 본격 제기됨에 따라 당내서 “열린우리당에 미래가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민주당과의 통합론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당ㆍ청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 심지어 청와대와 친노 진영을 배제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까지 공공연하게 나도는 상황이다.

▲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이 28일 오전 열린우리당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 당 복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신상순 기자

청와대의 한 친노(親盧)직계 인사는 “대통령은 일련의 과정을 당ㆍ청 간 또는 당의 헤게모니, 나아가 대권을 둘러싼 ‘권력게임’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면서 “누군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러한 문제를 풀어갈 사람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다”고 해 천 장관의 당 복귀와 노심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추정케 했다.

당ㆍ청 관계에 골이 깊어지면서 당 내부도 정동영ㆍ김근태계와 친노 진영으로 갈라진 채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김근태 의장이 의욕을 갖고 추진 중인 ‘재계와의 뉴딜’ 행보에 대해 청와대와 친노 진영은 물론, 정동영계까지 반발하고 나서 당내 대립각이 더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대기업정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고 친노직계 386 의원은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시도”라며 “중산층과 서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위한 당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계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김 의장이 벌써부터 대권행보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천 전 장관은 당으로 복귀한 뒤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개혁은 우리당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며“앞으로도 개혁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대신 민생을 보다 더 헤아릴 수 있는 그런 개혁이 필요하다”고 정동영ㆍ김근태계와 차별화를 선언했다. 이는 친노 진영뿐 아니라 개혁그룹의 지지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보인다.

우리당의 진로와 관련해서도 전 장관은 정동영ㆍ김근태계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동영ㆍ김근태계는 민주당과의 통합 및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에 적극적이다. 나아가 정동영ㆍ김근태로는 대선이 어렵다고 보는 인사들은 ‘고건+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 등이 통합하는 과거 DJP연합, ‘호남ㆍ충청연대론’을 필승카드로 제시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 진영은 ‘호남ㆍ충청 연대’와 ‘서부벨트’는 지역주의, 과거로의 회귀라고 비판하고 영남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통합’ 후보에 방점을 두고 있다. 천 전 장관은 비록 목포 출신이지만 그동안 지역주의 청산을 외쳤고 우리당 창당에 가장 먼저 앞장선 것을 높이 평가해 ‘호남ㆍ충청연대론’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보고 있다.

천 전 장관은 우리당에 복귀하면서 “조순형, 한화갑, 추미애 같은 민주당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 게 이 정권의 한계라면 한계”라고 말해 민주당에 우호적인 손짓을 했지만 맹목적인 통합이 아닌 범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의미한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정가에서는 천 전 장관이 호남을 대표하는 ‘포스트 DJ’를 자처, 같은 호남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 정세균 산업부장관을 견제하면서 ‘고건’에 쏠리는 호남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한편,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청산 명분을 이어받아 ‘영·호남 연대’와 대연정의 매개 역할까지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천 전 장관에 당 안팎의 비중이 실리면서 그의 대권행보도 주목 받고 있다. 당 복귀 시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의 재건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며 대선주자로서의 꿈을 내비친 천 전 장관은 정중동의 행보를 하면서 물밑에서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당에서는 친노 직계를 비롯해 정동영ㆍ김근태 진영에서 떨어져 나온 인사들이 천 전 장관쪽에 기울고 있고 양다리를 걸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개혁’을 매개로 한 신기남 의원과의 '천-신 공조'가 부활하고 있고 천 전 장관과 가까운 17명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 확산 기류도 감지된다.

‘해마루’ 법무법인 출신인 임종인 의원은 “천 전 장관은 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개혁과 비전을 제시할 거의 유일한 후보”라며 “등 돌린 지지층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재벌, 기득권 위주의 한나라당 정책을 따라하기보다 우리당 본래의 노선을 추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최재천 의원은 “천 전 장관은 ‘유능한 진보’”라면서 “겸손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당의 구심점이 될 역량을 갖췄다”고 평했다.

천 전 장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동북아전략연구원'은 조만간 규모를 확대, 실질적인 대선캠프 역할을 할 전망이다.

천 전 장관은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을 때 인터뷰는 시간을 두고 하자면서 당에서의 활동과 대권 행보에 대해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1년 만에 돌아와 적응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애기를 듣고 있다. 8월 중에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전국을 돌아볼 생각이다.”그의 어투에는 ‘의원’신분보다 ‘대권주자’의 신중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맹목 통합 아닌 범개혁 연대

그러나 천 전 장관의 ‘변신’에 정가의 관심이 커지고는 있지만 행로가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다. 아직 턱없이 낮은 지지율에다 ‘호남’주자가 갖는 장점과 단점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정동영ㆍ김근태의 잠재력도 만만찮다. 게다가 노 대통령, 고건 전 총리 등 외부요인이 어떻게 작용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천 전 장관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8·15 특사 안희정, 새판짜기 설계사?

▲ 안희정씨.

노무현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가 안팎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8ㆍ15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그가 맡을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적 동업자'로 불렀을 정도로 최측근인 안 씨는 1990년 초반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친노 진영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2002년 대선 때는 정무팀장을 맡아 386세대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한 안 씨는 2004년 12월 만기 출소한 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6개월쯤 연구원으로 지냈고 가족들과 인도 배낭여행을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왔었다.

안 씨는 광복 60주년이었던 지난해 8·15 대사면을 비롯해 지난 3ㆍ1절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사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 논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모두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에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386 의원과 일부 중진들이 중심이 돼 안 씨를 8ㆍ15 사면에 포함시키라는 주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기류 때문인지 최근 안 씨의 대외 활동도 자주 눈에 띄었다. 6월 초 열린우리당 이화영ㆍ백원우 의원등 초선 4명과 모임을 가진 데 이어 같은 달 말에는 노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영화배우 문성근 씨가 출연한 영화 '한반도' VIP시사회에도 참석했다.

7월 3일에는 친노그룹인 의정연구센터 소속 윤호중, 이화영, 조정식, 백원우, 최재성 의원과 함께 출국해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둘러본 뒤 7월 11일 귀국했다. 유럽 방문에서 안 씨는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을 방문해 내년 4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 준비과정, 당원관리 시스템 등을 살펴보고 독일에서는 사민당과 녹색당 간부들을 만나 독일 대연정과 당개혁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가 8ㆍ15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정치적 제약이 사라짐에 따라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청와대 정무특보 등 당ㆍ청 요직에 중용돼 당ㆍ청 간 가교역을 맡거나 지금처럼 외부에 남아 물밑에서 정계계편과 친노그룹의 방향에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씨는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고 밝혔고 항간에는 안씨가 여야 대선주자 진영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정계개편 방향, 대선구도 등 주요 현안들에 대해 막후에서 중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