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 심판 벼르는 美 중간선거… 민주당, 하원 다수당 되찾을 듯

▲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라크 전쟁이 공화다에게는 '강한 미국'의 선전도구로, 민주당엔 심판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은 이라크 바그다드 대통령궁으로 진격하는 미군. / AP=연합뉴스
11월 7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가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1인 33명, 하원의원 433명(2명 공석),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새로 뽑는다.

가장 큰 관심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으로부터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할 수 있느냐다. 200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51대48로 근소하게 우세를 지켰던 상원의 구도를 55대44(무소속 1)로, 하원은 228대206(무소속 1)에서 232대203으로 확고한 우세로 바꾸어 놓았다. 주지사 선거는 28대22로 현상을 유지했다.

그러면 이번 선거는 어떨까.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이번 중간선거만큼은 투표가 두 달 이상 남았음에도 뚜껑의 절반 이상은 이미 열렸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전망이다. ‘공화당 패배, 민주당 승리’는 불변이고, 과연 민주당이 어느 정도의 짜릿한 승리를 맛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재의 표심을 토대로 한 상·하원과 주지사 예상 개표 결과는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탈환할 것으로, 상원은 의석 격차를 좁히는 선에서, 주지사는 민주당의 과반수 획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하원의 경우 15석, 상원은 6석을 더 얻으면 다수당에 오른다. 하원의 15석은 전체 의석에서 보면 그리 부담스럽지 않지만 상원의 6석은 만만치가 않다.

공화당 15명, 민주당 17명 무소속 1명 등 모두 33명이 이번 상원선거의 물갈이 대상이나,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대상이 적다는 것이 큰 폭의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또 전통적으로 상원은 하원에 비해 현직의원의 프리미엄이 높고 당보다는 개인적 지명도에 많이 좌우된다는 것도 민주당이 한번에 공화당을 뒤엎기 힘든 이유다.

그러나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다음 2008년 선거에는 33석 중 민주당이 12석을 지켜내야 하는 반면 공화당은 두배 가까운 21석을 방어해야 하고, 더욱이 테드 스티븐스(83ㆍ알래스카), 존 워너(79ㆍ버지니아), 피트 도메니치(74ㆍ뉴멕시코) 등 고령의 공화당 의원들의 은퇴가 대거 예정돼 있어 민주당의 상원 장악은 2년 뒤를 기약하는 게 현실적이다.

주지사 선거는 수성(守成)해야 할 현직 주지사가 공화당이 22명으로 민주당의 14명보다 많은 데다 젭 부시(플로리다), 밋 롬니(매사추세츠), 조지 파타키(뉴욕), 밥 태프트(오하이오) 주지사 등이 임기제한이나 대선출마 등으로 퇴진할 전망이어서 민주당에게는 좋은 기회다.

이라크 사태, 허리케인 참사 등이 치명적

그러면 미국 유권자의 민심이 왜 이렇게 급격히 민주당으로 쏠리게 됐을까.

미국의 선거문화는 백악관과 의회를 한 정당이 모두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분리정부(divided government)의 전통이 뿌리깊다. 5년 이상 행정부와 의회를 독점해온 공화당에게 또다시 백지수표를 줄 수 없다는 막연한 견제심리가 작용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판세가 이렇게 조기 결정된 이유를 설명하기 부족하다. 미국 중간선거는 9월 초에 있는 노동절(올해는 9월 4일)이 지나야 표심이 드러난다는 게 정설이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제2의 베트남으로 굳어져가는 이라크사태, 잭 아브라모프 로비 스캔들,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고유가 등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의 잇단 실정이 유권자에게 공화당에 대한 더 이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못하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9ㆍ11 연쇄 테러 이후 부시 정부가 선거 때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왔던 ‘안보’ ‘강한 미국, 강한 정부’라는 구호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테러에 노출된 미국의 위험이 과거보다 줄어들지 않았는 데도 말이다.

8일 코네티컷 주에서 실시된 민주당 상원의원 예비선거(프라이머리)는 공화당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역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예비선거에서 3선의 민주당 거물이자 2000년 대선 당시 앨 고어의 러닝메이트에까지 지명됐던 조지프 리버맨(64) 상원의원이 정치 초년병인 네드 러몬트(52)에게 패해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현직 상원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건 1980년 이후 4번뿐이어서 리버맨의 패배는 민주당은 물론 미국 정계의 충격파를 던졌다. 1990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경력에다 공직 경험이라고는 코네티컷 주의 작은 도시 그리니치 지방정부에서 일한 것이 고작인 러몬트의 초라한 과거를 보면 그런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은 리버맨 후보가 당론을 거스르면서까지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을 지지한 데 대해 유권자들이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해석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이라크전 반대가 옳았음을 국민이 표로 확인시켜줬다고 반색했다.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리버맨 후보가 경선결과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까지는 ‘정치인들이란 후진국이나 선진국이나 다 똑같군’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내팽개치고 당마저 박차고 나온 리버맨 후보를 공화당이 지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코네티컷 주의 공화당 상원후보가 엄연히 있는 데도 불구하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코네티컷 주 공화당 지부가 이번 선거에서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말 것을 제안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앨런 슐레싱거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방당의 후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대통령이 (선거에서) 물러나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코네티컷 주에서 출마한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물론 당 지도부는 아예 리버맨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들면서 슐레싱거 후보를 공개적으로 왕따시켜 사실상 슐레싱거의 후보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공화당의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이자 슐레싱거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은 민주당 예비선거 전 자신의 보좌관들을 아예 리버맨 진영에 보내 선거전략을 도왔다. 공화당계 단체들은 리버맨에게 선거자금을 몰아주고 있다.

▲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동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라크전 놓고 공화·민주 설전 예상

공화당이 자기 당의 후보를 제쳐두고 상대당에서 탈당한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리버맨 후보가 이라크전을 지지했다는 점 때문이다.

리버맨 후보가 평소 부시의 정책에 호의적이어서 이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공화당의 리버맨 지지는 이라크전에 명운을 건 당의 입장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라크전에 동의만 한다면 그의 과거 경력이나 소속은 문제가 안 된다는 태도다.

공화당은 허약한 민주당이 필요하다. 테러에 굴복하는 유약한 지식인의 집단이라는 이미지로 민주당을 몰아붙일 수 있어야만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때 민주당의 간판주자였던 리버맨 후보는 이런 점에서 공화당에게는 최적의 선전 도구인 것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