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우라늄 농축 중단 압박에 요지부동… 마땅한 제재수단 없어 골머리

▲ 2005년 8월 이란 과학자들이 농축우랴늄 추출을 위해 '옐로 케이크'라 불리는 원료를 옮기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핵문제를 놓고 벌이는 미국과 이란의 대결이 결전(showdown)의 단계에 들어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란의 우라늄농축 중단시한으로 설정한 8월 31일이 지나도록 이란 정부는 우라늄농축에 관해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후퇴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5개국과 독일 등 6개국이 마련한 유엔 결의안이 이란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미국 등 서방이 취할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제재조치만이 남게 됐다.

물론 서방이 대 이란 압박조치를 한 단계 한 단계 취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이란의 태도변화를 염두에 둔 막후 외교협상은 있을 수 있으나 양측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이 시나리오는 기대하기 힘들다.

문제는 미국이 이란에 대해 어떤 현실성 있고 효과적인 제재수단을 갖고 있느냐이다. 일단 가장 강력하고 극적인 카드는 군사력으로 이란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상징적 옵션의 하나일 뿐 행사 가능한 카드가 아니다.

집단자위권을 규정한 유엔헌장 7장에 근거해 군사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란의 막대한 석유자원과 깊이 연계돼 있는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공격은커녕 경제제재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어 미국이 막무가내로 이란을 침공하지 않는 한 성사될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 단독의 공격도 여의치 않다. 미국이 2003년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칠 때에는 그나마 여러 명분이 있었다. 9ㆍ11 테러의 참혹한 기억이 여전했고,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다는 주장도 마냥 근거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결국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주장으로 판명됐지만). 또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연계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란의 경우는 그 어느 것도 군사공격의 명분으로 내세우기가 힘들다. 테러지원 국가로 의심받고 있는 이란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단계까지 이를 경우 이를 군사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으로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권을 보장받은 주권국가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외부의 압력으로 포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핵의 평화적 이용은 침해받을 수 없는 배타적 권리”라는 원론적 수준의 반박에 서방이 딱히 대응할 논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기대한 만큼의 전과를 올릴 수 있느냐가 군사카드 무용론의 핵심이다. 우선 이란의 군사력은 이라크와 질적으로 다르다. 1991년 걸프전 이후 10년 이상 유엔의 경제제재에 시달려 왔던 이라크는 군사력을 지탱할 처지에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란은 80년대 이라크와의 8년 전쟁 이후 중동의 맹주를 꿈꾸며 군사력을 비축해 왔다.

주변상황도 이라크전 때와는 판이하다. 미국은 지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닐 정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파병된 수십만 미군의 출구전략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치안을 맡고 있는 아프간은 탈레반 무장세력의 준동으로 중앙정부의 통제가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침공으로 중동에서의 미국의 입지는 더 좁아진 반면 헤즈볼라를 재정적ㆍ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란은 헤즈볼라의 부상만큼 입지가 커졌다. 미국이 전쟁을 감행하기에는 도처에 악재 투성이다.

이란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대미항전 의지

이란은 지난달 19일부터 무인항공기, 낙하산부대, 전자전투 장비, 특수부대 등을 동원해 ‘졸파카르의 강타(Blow of Zolfaqar)’로 명명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5주 동안 전국 30개주(州)중 14개주에서 실시되는 이 훈련은 병력 1만7,000명과 함정 1,500여 척이 동원되는 대규모 작전이다. 미국 등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일 테헤란 남동쪽 카샨사막에서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한 지대지 단거리 미사일 ‘사이게(Saegheh)’ 10기를 시험발사했다. 27일에는 걸프만에서 스텔스형 미사일인 ‘사게브(Sagheb)’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국영TV가 보도했다. 세계 최대 원유동맥선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력시위다.

▲ 8월 26일 페르시아만에서 열린 이란의 군사훈련에서 누르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 8월 26일 페르시아만에서 열린 이란의 군사훈련에서 누르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하루 전인 26일에는 중수로의 냉각재와 감속재로 쓰이는 중수(重水)를 생산하는 공장 가동식을 가졌다. 이란 정부가 2009년을 목표로 하는 중수로 건설공사까지 마무리되면 1년에 핵폭탄 1개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서방은 예측하고 있다.

그럼 경제적 압박 카드는 어떨까. 미국은 수주 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제재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뤄낸 뒤 9월 중 유엔총회의 승인을 얻어 곧바로 제재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제재는 2단계안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이란에 대한 핵 관련 제품 판매금지와 이란의 해외자산 동결, 핵개발에 직접 관련된 이란 관리들의 해외여행 금지 등 낮은 단계의 조치를 취한 뒤 그래도 이란이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민간항공기 취항금지, 이란 관리들의 해외자산 동결, 세계은행 대출 중단 등을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행에 옮겨지기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며 여전히 외교적 협상을 통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도 중국과 이란 등에 특사를 파견해 미국의 독주를 막기 위한 외교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30일 중국을 방문한 압바스 아라흐치 이란 외무차관과 회담한 뒤 “쌍방이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적절히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들도 경제제재의 각론에서는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이란 정부에 주는 타격보다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부메랑 된 이란 핵

시카고 트리뷴지(紙)는 최근 미국이 냉전시대인 1960년대 소련에 맞서기 위해 이란에 원자로와 무기급 우라늄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이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데도 핵발전소를 원하자 냉전전략의 일환으로 원자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해서도 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중동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후세인 정권을 적극 지원해 결과적으로 후세인을 아랍의 야심가로 만드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닮은꼴일까. 그렇다면 결과도 같을까.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