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과 동북아 구상중국 이익 극대화 전략… 한민족 이익과는 제로섬 관계

‘이사위감 면향미래(以史爲鑒 面向未來)’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9월 초 중·일 경제협회 대표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4자성어는 중국 지도자들이 일본인들과의 대화할 때면 어김없이 반복하는 말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향하자”라는 의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15일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를 참배했다. 그는 ‘전쟁 없는 미래를 위해서’라고 듣기 역겨운 해명을 되풀이했다. 원 자바오와 고이즈미는 모두 역사와 미래를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의 ‘거울’은 다르다. 그 거울로 비출 미래 또한 영 딴판이다.

최근 KBS방송은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연구 결과물을 입수해 보도했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 그 자체다. 고구려에 이어 발해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켰고 고조선, 부여 등 우리의 고대사가 송두리째 중국사에 포함됐다.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이야기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역사의 속지주의’ 이론이다. 한강 이북까지가 중국 영토라는 기막힌 주장도 있다. 수도 서울의 강북 지역과 북한이 중국에겐 ‘잃어버린 고토(故土)’가 된 셈이다.

동북공정은 우리 돈으로 3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5개년(2002~2006) 계획으로 진행시켜 온 국책사업이다. 때문에 ‘미래를 비출 거울’에 대한 투자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견강부회(牽强附會)’ 와 ‘단장취의(斷章取義)’ 가 낭자한 그 연구 결과물을 보면 이미 설계된 그들 나름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변조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읽혀진다.

이제 우리는 구한말 일본이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창안해냈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처럼 동북공정도 ‘미래 맞춤형 역사 왜곡’이라고 규정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학술적 측면에서 중국의 이러한 역사 왜곡을 낱낱이 밝히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못지않게 주목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중국이 은연중 노출시킨 동북아 미래에 대한 그들의 상황인식과 대응 청사진이다. 상황 인식의 저변에는 분단체제 해체가 있다. 그 대응 청사진의 핵심은 한민족의 이익과 제로섬 관계인 중국 이익의 극대화다. 가치 편향적이며 대국주의 냄새가 물씬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11월 중순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뒤 인도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문기간 중국과 인도 간 국경선 획정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관측된다. 인도와의 국경선문제가 매듭짓게 되면 전쟁까지 치렀던 러시아, 베트남, 인도와의 국경분쟁이 모두 완결되게 된다.

러시아와는 2004년 10월 14일 협정체결로 4,300km에 달하는 양국 국경선의 경계가 모두 확정됐다. 베트남과도 2008년까지 지상 국경선 경계비 설치를 완료하기로 합의됐다. 그렇다면 인도와의 국경선 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중국의 모든 국경선 문제가 해결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한반도와의 국경선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만주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다. 중국이 입은 인적, 물적 피해는 다른 3개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은 막대한 희생을 통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현재의 국경선을 지켜냈고 붕괴 직전의 북한정권을 기사회생시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확보했다.

때문에 한국전쟁 종결 이후 53년 동안 중국은 한반도와의 국경선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상황은 이제 크게 변했다. 완충지대 소멸과 그에 따른 대응책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인도, 소련(러시아), 그리고 베트남과의 국경분쟁에서 중국은 현상타파적 자세를 취했다.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도와 분쟁을 빚은 국경선은 맥마흔 라인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름이 암시하듯 영국 제국주의가 무력을 배경으로 그은 선이다.

소련과의 국경선도 청나라 말기의 일련의 불평등 조약의 소산이다. 베트남과의 국경분쟁은 그 근원이 프랑스에 있다. 그런데 한·중 국경선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은 전혀 정반대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현재의 한중 국경선이 그어지는 데 있어 중국은 소(小)제국주의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큼은 중국은 ‘골리앗’이다.

한국 언론이 동북공정의 ‘미래 맞춤형 왜곡역사’를 폭로하던 날은 청나라와 일본 간의 간도협약(1909년 9월 4일)이 체결된 지 97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권 피탈 1년 전인 1909년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한 일본과 청나라는 제국주의적 거래를 했다. 안펑선(安奉線) 철도 개축 문제 등 만주에 대한 일본의 4대 이권과 간도 내 대한제국의 영토권을 맞바꾼 것이다. 영토와 평화의 교환이라는 미명 하에 체코의 쥐데텐란트를 히틀러에게 넘긴 뮌헨협정처럼 이는 약소국의 의사를 무시한 강대국들의 파렴치한 흥정이다.

중국도 역사를 거울삼아야

마오쩌둥(毛澤東)은 중국 공산화 후 소련에 대해 만주에 대한 제국주의 유산의 청산을 요구했다. 이는 내전을 지원한 소련에 대한 ‘배은망덕’이었다. 마오처럼 김일성도 중국에 대해 간도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그러지를 못했다. 한국전쟁 당시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도리어 백두산 분할요구를 수용했다. 마오와는 달리 김은 ‘보은(報恩)’한 셈이다.

1962년 체결된 이 밀약을 양측이 여지껏 공개하지 않고 있다.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도 남북한 분단체제가 지속되고 북한 정권이 존속한다면 한중 국경선 문제는 ‘휴화산’인 채로 남아 ‘사화산’단계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최선의 옵션이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최후의 옵션으로 선택하는 요인 중에는 국경선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은 그 최후의 옵션의 실현 가능성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북한 정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 탓이다. 북한 정권이 끝내 붕괴할 때 국경선 문제가 ‘활화산’이 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한국 정부 역시 북한처럼 간도와 국경선 문제에는 아직까지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만주는 과거 우리 땅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고 일제 강점기에 항일독립운동을 가장 활발히 했던 근거지가 바로 만주가 아니었던가.

한국인들에게 백두산 분할과 간도의 중국화 현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홍콩의 주권과 치권(治權)을 분리하자는 마가렛 대처의 제안을 덩샤오핑이 수용하기를 기대하는 만큼이나 가능성이 희박하다.

1950년 10월 신생 공산주의 중국은 미국이 압록강으로 다가오자 월강해 한반도로 치고 들어 왔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강 이북까지 진출한 것은 남쪽의 ‘고구려’가 압록강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선제공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동강선까지 진출했던 당(唐)나라 때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역사 이데올로기의 정지작업이기도 하다.

미래 맞춤형 역사왜곡의 공개에 즈음하여 중국은 그들이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부르는 백두산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계아시안 게임 성화 채화를 백두산에서 했다. 세계인들에게 백두산을 창바이산으로 각인시키려는 치밀한 계산이다. 이는 ‘동북공정’이 실천 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드러낸 미래 청사진의 마지노선은 현재의 한·중 국경선의 고착이다. 최대 목표는 당나라처럼 한반도 북부의 직접 경영이다. 역사는 당의 한반도 북부 경영이 얼마가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향하자’는 말은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 자신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hufs8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