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사 쿠데타 막전 막후 - 부정 축재·충성심 부족 등 이유로 국왕에 '미운털'… 망명정부 구성할지 주목

태국이 또다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뒤집혔다. 이번 쿠데타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무려 19번째이다.

태국 군과 경찰은 19일 밤 탁신 치나왓(57) 총리가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틈을 타 14대의 탱크를 동원, 정부청사와 국영 TVㆍ라디오 등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저항이나 충돌은 없었다. 쿠데타를 주도한 손티 분야랏글린(59) 육군 참모총장은 정부청사 장악 직후 상·하원과 정부,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고 헌법 중지를 발표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양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태국 TV 방송국도 이날 밤 일제히 “탁신 총리가 분열을 초래하고 부정을 저질러 군이 나서게 됐다”며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을 장시간 방영했다.

국민에게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으며 굵직굵직한 정치적 격변이 있을 때마다 방향타를 제시했던 푸미폰 아둔야뎃(78) 국왕은 쿠데타 발생 불과 하루 만인 20일 쿠데타를 승인했다. 탁신 총리가 몰락하고 군부 과도정권이 수립됐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쿠데타 지도부로 구성된 ‘민주개혁 평의회’는 TV 성명을 통해 “국왕이 손티 장군을 국정과 개혁을 총괄하는 ‘민주개혁 평의회’ 의장으로 정식 임명했다”며 “국왕이 ‘국민은 평온을 유지하고 모든 공무원은 손티 장군의 명령에 따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평의회는 또 “탁신 총리는 국민분열, 부정축재, 권력남용 등 비리를 저질렀고, 국왕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 그에게 부여한 권력을 거두어들인다”고 국왕이 말했다고 전했다.

손티 장군이 푸미폰 국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왔고, 그를 참모총장으로까지 끌어올린 것도 푸미폰 국왕이라는 점에서 평의회의 성명은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전격적인 군사쿠데타에 이은 국왕의 이 같은 발언은 탁신 총리가 이틀 전만 해도 국정의 최고책임자였던 사실 자체를 의심케 할만큼 자극적인 것이었다.

1년 뒤 민정이양 약속

무혈쿠데타로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태국 정국은 일단 급속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손티 장군은 국왕의 쿠데타 승인 발언 직후 “다음달 초까지 임시헌법 초안이 마련될 것이고, 그 기간 중 새 의회가 구성되고 새 총리도 임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새 총리에게 정권을 이양한 뒤 내년 10월께 총선을 치를 것”이라며 민주정부 구성절차를 피력했다.

일부에서는 총선 시한으로 설정된 1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손티 장군의 민정이양 의지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은 대부분 쿠데타 세력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이번 쿠데타는 무엇 때문에 촉발됐을까.

세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정부와 군부와의 갈등이다. 태국에서 4번째 부호이기도 한 탁신 총리는 1월 가족이 보유한 통신회사 ‘친 코퍼레이션’의 주식 49%를 19억 달러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아 대규모 탈세의혹을 받으며 사임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편법으로 지지세력을 군부에 심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했고, 자신에 대한 군수뇌부의 암살 음모설을 흘리며 군부 내 반대파 숙청을 기도해 군부의 반감을 샀다. 지난달 총리관저 인근에서 발견된 폭탄 차량 사건의 용의자로 장군을 포함, 군 고위간부 5명을 구금한 것도 군부와의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당시 경찰은 “배후에 4성 장군이 있다”고 밝혀 수사가 군 수뇌부로 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와중에 군부 내 반 탁신 진영의 지도자급인 손티 장군이 탁신 측근의 중간급 장교의 절반인 129명을 무더기로 전보조치하면서 정부와 군부가 양립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손티 장군은 탁신 총리에 의해 참모총장에 임명됐지만 그를 강력히 추천한 것은 국왕 측근이라는 게 정설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탁신 총리는 무슬림 최초의 참모총장인 손티 장군과 이슬람 소요 사태를 놓고 번번이 충돌했다.

▲ 9월 20일 태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쿠데타 군이 탱크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AP
▲ 20일 태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쿠데타 군이 탱크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 AP

둘째는 푸미폰 국왕의 ‘권력 줄타기’이다. 푸미폰 국왕은 입헌군주국이라는 헌정체제 아래에서 내정에는 간여하지 않고 상징적인 국가수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투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군부와 정부 내에 측근을 동등하게 심어놓은 뒤 끊임없이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한쪽이 득세하면 다른 쪽을 이용해 견제, 자신을 정점으로 한 세력균형을 이뤄왔는데 이번에는 탁신 총리의 권한이 정도 이상으로 커져 군부를 이용해 그를 제거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분석가는 탁신 총리가 7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초헌법적인 힘을 가진 강력한 인사가 나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을 상기시켰다. 즉 국왕-군부 연합전선과의 파워게임이 쿠데타의 배경이고, 탁신 총리가 밀려났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은 탁신 총리 자체 책임론이다. 기업인답게 취임 초기부터 ‘CEO 총리’를 자임했던 탁신 총리는 통신회사 매각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겼으면서도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아 스스로 국민의 원성을 자초했다. ‘부패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실시한 2월 조기 총선을 야권이 보이콧하고, 헌법재판소마저 총선 무효를 선언해 오히려 독이 됐다.

위기를 피하기 위한 무리수가 또 다른 무리수를 부르면서 결국 국민과 국왕, 군부의 신뢰를 모두 잃고 내쫓기는 원인을 만든 것이다.

탁신 영국행은 사실상의 망명

탁신 총리는 유엔 연설 직전 날아온 쿠데타 소식에 연설도 취소하고 바로 딸이 살고 있는 영국으로 날아갔다.

런던에 개인주택이 있어 이전에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번 영국행은 사실상 ‘망명’이나 다름없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 “(뉴욕에 올 때는) 총리였는데, 돌아갈 때는 실업자”라는 그의 말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심경이 엿보인다. 부인인 포트자만 여사는 쿠데타 소식이 전해진 뒤 19일 방콕에서 싱가포르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탁신 총리의 앞으로의 운명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을 전전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손티 장군이 “탁신은 재임기간 저지른 부정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재산은 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고 밝힌 마당에 체포될 것을 뻔히 알면서 귀국하지는 못할 것이란 점 때문이다.

물론 억만장자인 탁신 총리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망명정부를 구성해 다시 권좌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정축재 등으로 지식인들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재임 중 이룬 경제성장으로 하층민으로부터는 여전히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어 권좌 복귀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부와 국왕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태국 정치의 특성상 둘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탁신 총리가 재기한다는 것은 무망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