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아베 총리 "정상회담 하자"日, 새 내각 출범으로 새 국면… 아베의 대북 강경노선·우경화가 변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권이 9월 26일 출범했다.

올해 52세의 역대 최연소 총리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범한 아베 정권에 대한 관심은 일본의 역대 어느 정권보다 크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비롯해 독도, 역사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로 한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 놓고 임기를 마친 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어두운 그림자 때문일 것이다.

아베 신임 총리가 한일 간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지, 아니면 고이즈미 전 총리의 행보를 답습할지가 아베 정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대이자 우려이다.

"아시아 중시 외교 펼치겠다"

아베 총리는 정권 발족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다르면 인식도 다를 수 있다”며 “이해관계가 많을수록 정상이 만나 흉금을 터놓고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해온 고이즈미 전 총리의 화법을 연상시키는 발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전제로 “아시아를 중시하는 외교를 펼치겠다”고 언급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고이즈미의 적통을 물려받은 아베 총리로서는 한국과 중국 관계에 대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명분을 버릴 수도, 그렇다고 현재의 냉랭한 관계를 계속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다리를 걸친 듯한 그의 조심스런 일성은 이해할 만도 하다.

일단 아베 정권 출범에 맞춰 한국과 중국에서 정상회담 재개에 관한 신중하나마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기대를 갖게 한다.

아베 총리는 28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적절한 시기에 정상회담을 갖는 것을 추진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전화는 노 대통령이 취임 축전을 보낸 데 따른 답례 형식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정상이 전화로나마 직접 대화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두 정상의 의중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다각도의 외교채널을 통해 아베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번 아베 내각에서 유임된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무성 장관은 “약 1년 반 동안 중단되고 있는 중·일 정상회담을 10월 중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해 중·일 정상회담이 물밑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표면적으로 중국이 내세운 정상회담 재개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아베 총리의 어정쩡한 입장에 여전히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출범한 아베 정권을 고이즈미 정권 말기 때와 똑같이 강경 대응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강하다. 따라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중국의 요구가 100% 관철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아베 정권 출범 직전 한일 정상회담 재개문제를 언급한 것이나, 이번 양국 정상 전화통화에서 정상회담 재개 원칙론에 동감한 것도 이 같은 일본과 중국의 접근을 의식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국과 중국은 야스쿠니 문제로 고이즈미 정권 시절 보조를 맞췄지만, 이제는 각자 정상회담 재개의 명분을 찾아야 하는 미묘한 입장으로 변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경우 초래될 외교적 정치적 부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입장 변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재개가 추진되는 것은 이 같은 고민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한국, 중국과 일본의 정상이 자연스레 회담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다. 3국 모두 APEC 무대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를 포함한 역사 문제를 다시 도발하지 않는 한 3국의 관계는 11월 APEC을 기점으로 회복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문제, 또 다른 걸림돌

물론 과거사 문제 말고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또 있다. 이 점이 한국과 중국이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른 점인데, 북한 문제가 그것이다.

한일 양국은 과거사 못지않게 대북정책에서도 파열음을 드러내 왔다. 더욱이 납북자 문제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아베 총리로서는 북한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대북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하기란 과거사 문제보다 훨씬 어렵다는 얘기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베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납치 문제 대책본부’를 피해자 및 가족의 지원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상설기관으로 격상하고 자신이 직접 본부장을 맡는다는 계획이다.

또 납치 문제 담당 장관을 겸하는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을 대책본부의 부본부장으로, 나카야마 교코(中山恭子) 납치 문제 담당 총리보좌관이 사무국장을 맡도록 해 고이즈미 정권과는 대책본부의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격상됐다. 대책본부를 앞세워 대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의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7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만경봉호 입항 금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난 결의 주도, 금융제재 등 일련의 대북 제재조치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켜온 것을 볼 때 대북 문제는 한국-일본 관계의 아킬레스건이 분명하다.

그러나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대북 문제는 한일 양국 간 문제라기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의 다자적 의제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 등 6자회담의 참여국을 의식한다면 납치 문제는 핵, 미사일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이 희망을 갖는 것은 납치 문제도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아베 정권의 3대 과제로 교육개혁, 납치, 헌법 개정이 꼽힌다. 납치 문제 외에 애국심 강화를 골자로 한 교육개혁과 집단 자위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추진되는 헌법 개정은 모두 아베 정권의 우익 성향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이는 아시아 국가와의 호혜적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서구 언론들의 지적에서 한일 양국은 관계개선의 단초를 찾아야 할 듯하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