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핵폭풍 덮친 한반도] 인터뷰 / 한반도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국제 사회의 北 제재 큰 효과 없어… 美가 직접 협상 나서야

북한의 10ㆍ9 핵실험 충격파가 세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표적이 된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일제히 대북제재에 나서고 있지만 북한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식’ 행보를 가속하는 상태다. 반면 직접 당사자인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 및 진보 진영, 야당과 보수세력은 대북 제재 수위와 대응책을 놓고 서로 의견이 달라 혼돈 양상이다.

핵실험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낸 북한의 의도는 무엇이며 후폭풍은 어다까지 미칠 것인가. 러시아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43) 박사(국민대 교수)는 미국을 향한 북한의 메시지가 1차 해독(解讀) 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양한 암시가 내재돼 있다고 풀이한다.

란코프 박사는 또 11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 강당에서 열린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 조찬강연을 통해 “중국의 ‘동북공정’이 북한의 비상사태에 대비, 친중국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강연 후 란코프 박사를 만나 북한 핵실험에 담긴 내밀한 의미들을 들어봤다.

- 북한 핵실험의 노림수(목적)를 무엇이라고 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장 잘 알겠지만(웃음) 생각컨대 ‘북한에 핵이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키거나, 나아가 더 이상의 핵실험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본다.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 핵실험 때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를 했다. 북한 내부를 통제하고 지지를 받으려고 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 미국은 강력한 제재를 천명했고 국제사회도 동참하고 있다. 북한의 자충수 아닌가.

“북한이 당장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지만 길게 봐서는 자충수로 보기 어렵다. 북한은 치밀한 계산아래 승부수를 던졌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대북 제재가 1년 이상 오래가지 않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 때(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5일 발사)와 달리 미국 중간선거(11월7일) 직전에 핵실험을 하지 않은 것은 선거 이후, 그리고 부시정부 이후 새 정부에서는 대북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북한 정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더라도 자신의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제재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전에 오히려 북핵에 위기를 느끼는 쪽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기로 해 타격이 클 것이란 전망이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 여론에 따라 대북 제재에 나선다고 했지만 전면적인 지원중단은 하지 않을 것이다. 상징적인 제스처일 취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핵을 가진 북한보다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더 우려한다. 중국의 대북 지원 규모는 줄겠지만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지원은 계속할 것이다.”

-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 가능성은.

“어렵다고 본다. 중국, 러시아, 한국 등이 반대할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에 따른 파급효과, 역효과 때문에 선뜻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 동북아에 핵실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공공연히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고 여론도 핵무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럴 경우 한국, 대만, 베트남 등도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와 같이 반미 성향이 있는 나라들이 핵무장을 하는 것은 미국에 가장 위협적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 핵실험 이후 냉각기를 거친 뒤 북한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 북한 핵실험에 대해 각국이 의문을 제기하는 데 반해 러시아는 "분명한 핵실험이고 규모도 보도된 것보다 크다"고 했다. 어느쪽이 맞다고 보나.

“그 문제 때문에 여기 오기 전에 미국 관계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그들도 100%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했다.”

- 핵실험 이후 북한의 다음 수순은 무엇이라고 보나.

“추가 핵실험 정도를 가늠해보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핵물질 이전 금지 협상이나 핵군축 협상을 하자고 나설 텐데 그것을 6자회담을 통해서 할지 아니면 비밀리에 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 중국이 북한의 핵을 통제할 수 있다면 미국은 중국의 북한 지배를 용인할 수 있다는 '빅딜설'이 있는데.

“미국이 북한 핵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세계로의 핵확산이다. 이것을 중국이 막을 수 있다면 미국은 중국의 북한 지배를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북한 핵이 대만 핵무장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되지 않겠나.

“중국은 대만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북핵은 대만뿐만 아시아 각국의 핵무장을 유발해 중국의 대아시아 전략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북ㆍ중 정상회담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을 설득 내지 압박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의 핵무장을 억제시키는 한편 북한에 친중(親中) 정권을 세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약력>

▲ 구소련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생(1963)
▲ 레닌그라드 국립대 졸업
▲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4~86년 졸업)
▲ 레닌그라드대 한국역사학과 박사(1989)
▲ 중앙대 노어학과 객원교수(1992∼94)
▲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국민대 교양학부 교수(2004~)
▲ 저서 :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 한국에서는 북한 핵실험 대응책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현명한 대처는.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연대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는데 한국만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핵실험 이전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최근 한국의 외교 방향을 보면 우려스럽다. 특히 한미 동맹은 ‘흔들린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한국은 한반도 정세 속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핵실험의 핵심이 북한의 ‘도발’이라면 최고의 대응책은 국제사회의 룰을 따르면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공조,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북·미 직접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일시적으로 중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북 제재에 나선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질 수 있다. 중국, 심지어 미국까지도 언젠가는 구실을 내세워 대북지원과 북한과의 접촉에 나설 것이다. 한국도 적절한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 햇볕정책에 대한 견해는.

“한국에서 햇볕정책에 대해 비판론과 계승론이 충돌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장기적으로,그리고 방향성에서 햇볕정책은 바람직하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햇볕정책밖에 없다. 포용정책이 합리적이어서라기보다 유일하게 가능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퍼주기식 지원이 돼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북한 간부(군부 포함)만이 혜택을 누리는 불합리한 체제를 지속시켜 남북통일 시기도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조건이 있는 도움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쌀을 지원하는 것보다 농장을 개발한다든가, 컴퓨터 지원 및 교육을 하는 것처럼 북한이 마음대로 전용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기보다 북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술, 노하우, 지식을 줘야 한다.”

- 한국의 대북정책을 평가한다면.

“햇볕정책은 옳지만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 온 대북정책은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탈북자 관리나 북한 인권 문제, 조건 없는 퍼주기 원조 등이 그렇다. 또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기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좋은 말만 하려고 하는 것은 비극적인 에피소드다. 북한에서는 “돈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인 얘기인데 북한은 아쉬운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 오늘 '광화문 문화포럼' 조찬강연에서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북한 내 친중정권을 수립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분명 ‘정치’문제다. 중국의 ‘역사 공세’는 몇 가지 긴박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북한에 대한 개입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내부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평양에 친중국 정권을 수립하는 방안이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체제 붕괴는 물론 남북통일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정치, 경제, 사회 혼란이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가 분단된 채 비핵화지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북한체제를 유지하는데 매년 20억~40억 달러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 내 친중국 정권을 세워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분단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중국이 고구려, 발해 역사와 영토를 중국의 일부라고 선전하는 것은 북한에 진입하는 데 유리한 정치적, 심리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 위성으로 본 북한 영변 핵 시설.
- 그러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북한은 어떤 입장인가.

“북한 지도부는 중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지만 체제 존립을 위해 중국의 지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끌려가는 상황이다. 북한군 중장급 이상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자로 중국의 의도를 못마땅해하고 있으나 북한이 붕괴되거나 남한에 흡수통일돼 위험에 처하기보다는 중국의 보호막으로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의 권력 엘리트에게는 남쪽의 ‘동족들’보다 중국이 차악(次惡)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 통일 등을 고려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나.

“한국의 일부 진영에서 과거 고구려 영토인 중국 동북3성에 대해 ‘합법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이는 중국을 자극시키는 도발일 뿐이다. 중국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결국 영토와 힘을 갖고 있는 중국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의 목적, 즉 한반도 분단과 북한 지배이다. 북한에 중국의 조정을 받는 정권이 들어서면 남북통일은 더 멀어진다. 광폭적인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면서 무엇보다 북한 지배층이 흡수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감을 상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