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이후 관계 썰렁… 단둥 등 세관검색 강화일본·대만 핵개발 자극 우려 인민해방군 장성들도 격앙

중국 단동 근처 북한과의 국경선에 새로 건설한 철책선의 모습(엽합뉴스)
‘혈맹(血盟)’, ‘순치(脣齒)의 관계’로 불리던 중국과 북한이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심상치 않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김일성 시대와 같은 피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격한’ 주장도 내놓는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잇따라 강행한 것이 증거라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은 정말 달라지고 있을까. 지난 9일 전격적인 북한 핵실험 이후 양국 간의 온도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썰렁해졌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취해야 하는 대북 인식 수준에서가 아니라 ‘우리한테 북한이 어떻게…’라는 지극히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북한도 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규탄 결의에 찬성하자 믿었던 중국이 미국편에 서서 자신을 배신했다는 섭섭한 표정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핵실험에 따른 안보리의 북한 제재 결의가 14일 채택된 이후 단둥(丹東) 등 중국의 북한 접경지역에서는 양국 간 경제교류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여러 상징적인 조치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중국측 압록강 주변에 20여km에 달하는 철조망이 세워지고, 국경무역이 활발한 지린(吉林)성과 랴오닝(遼寧)성 등 동북지역에서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돈과 물자가 당국에 의해 제지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중국 4대 은행의 하나인 중국은행이 베이징(北京)과 선양(瀋陽), 단둥 지점에서 대북 외화 송금업무를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단둥에서 북·중 외화거래의 중개업무를 전담해 온 북한의 광선은행 단둥사무소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장기휴업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나왔다. 국경무역 중개업을 하는 중국인들은 제재 결의 이후 “세관 통과가 매우 엄격해졌다”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니컬러스 번스 미국 국무부 차관은 “중국이 유엔 결의를 북·중 국경지대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암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가 유엔 결의에 따른 중국의 공식적인 조치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국 당국은 “철조망은 대량 난민 유입에 대비해 이전부터 세워 왔던 것이고, 통관도 정상적인 국가 간 거래라면 당연한 수출입 절차에 따른 것”이라며 유엔 결의 연관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북·중 교류의 달라진 단면들이 유엔 결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중국 정부가 공개리에 북한을 제재하겠다고 나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다양한 지렛대를 활용해 북한에 자신의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북한이 끝내 중국의 인내심에서 벗어난다면 북한 제재에서 지금까지의 외교적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과 본격적인 공조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최근의 중국과 북한 간 균열은 교역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북·중 관계의 근간이랄 수 있는 ‘조ㆍ중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 개정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중국 격주간 경제전문지인 재경(財經)은 ‘동북아 풍운:핵무기 한반도에 내려오다’라는 최신호 특집기사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전쟁이 터지더라도 중국이 의무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북한에 상호원조 조약의 개정을 제의해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의 건의를 전했다. 1961년 7월 11일 김일성 수상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서명한 이 조약은 2조에서 양국 중 한나라가 제3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다른 한 나라가 전력을 다해 군사원조를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종료시한이 명시되지 않은 이 조약은 양국이 합의하지 않는 한 수정되거나 종결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어떤 군사동맹도 체결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만은 군사동맹의 의무를 지는 법적 근거로 작용해 왔다. 이처럼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조약에 대해 “중국·북한 동맹관계가 백지수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조약 개정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하겠지만, 당연시 됐던 조약에 대해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증거일 수 있다.

핵실험 당시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던 공산당 제16기 제6차 중앙위원회(6중전회)에서도 인민해방군 장성들과 간부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격앙된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의 최고 정책결정기관인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는 단일조직 가운데 최대 계파이고, 북한 정권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집단이란 점에서 이들의 격한 발언은 “매우 의미심장하다”는 게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일본 대만의 핵무장 도미노를 불러와 지역안정을 물론, 대만과의 통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중국 간 영토분쟁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의 핵ㆍ안보 문제 전문기관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 보유로 중국이 영토분쟁이라는 걱정을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인도를 제외하고 중국과 정식 국경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로는 북한이 유일한 인접국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변화에 따라 국경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유엔 결의의 핵심이랄 수 있는 해상 검문검색에 대해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화물에 대한 검색(inspection)에는 동의하지만, 화물을 중간에서 압류(interception)하거나 저지(interdiction)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유엔 결의를 존중해 북한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외교적 수사도 빼놓지 않고 있다. 국경지역에서 자금 및 물자 통제가 강화된 것이 중국의 양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것인지는 현재로선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도 중국의 조치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이것이 ‘실질적’ 조치로 발전할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북 제재 공조를 끌어내기 위한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에 맞춘 ‘선수치기’,‘제재 흉내내기’일 수 있다는 의심이다. 중국이 은근한 대북 압박으로 북한 지렛대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미국과 함께 본격적인 제재에 동참할 것인지에 따라 중국과 북한의 모호한 관계가 분명해질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통관검색을 마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화물차들(엽합뉴스)

황유석 국제부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