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북한 선박 세워 검색 의도… 한국과 중국에 참여 압박中 "美서 북한 빌미로 MD체제 해상버전" 의혹 눈길 보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골리앗이 다윗의 뒤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 호치민의 베트남이 미국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배후에 소련과 중국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자헤딘의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을 격퇴시킨 데는 소련 공군을 무력화시킨 스팅어를 제공한 미국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상황을 완전히 달라졌다. 후세인의 이라크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은 변화한 국제질서를 읽지 못한 채 ‘얼치기 다윗’의 만용을 부리다 몰락했다. 그렇다면 핵실험을 감행한 ‘김정일의 북한’은 어떨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증 상습적 도박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결코 ‘얼치기 다윗’은 아니다. 그는 핵실험과 함께 한반도 주변의 대립구도의 복원을 겨냥했다. 핵실험 실시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에는 사전 통보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 미국에는 알려주지 않았다. 냉전 대립구도를 상정한 행동이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을 차별했다. 러시아는 2시간 전에, 중국은 20분전에 귀띔했다. 중·소 대립기 때 다른 한편을 초조케 하는 ‘체인징 파트너 포에버’ 전략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소외돼 왔던 러시아는 ‘감격’했고 중국은 ‘열’ 받았다. 러시아는 북한을 9 번째 핵보유국으로 인정했고 중국은 ‘제멋대로’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비난했다. 유엔 안보리가 핵실험 후 만장일치로 제재결의안을 냈지만 미-중-러의 동상이몽이 뚜렷하다. 19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로 방북해 바로 김정일을 만나 후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같은 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일본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탕은 추가 핵실험을 막기 위해서이고 라이스는 한국으로부터 핵확산방지구상(PSI :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의 참여를 다짐받기 위해서다. PSI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세워 검색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 실시와 관련,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18일 “북한이 무언가 또 시도해 볼 것 같다는 예상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할 테면 하라”는 뉘앙스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일본 핵무장론에 기름을 끼얹을 것이라는 점에서 초조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국의 움직임과는 분명 큰 온도 차이가 있다. 적어도 ‘핵도미노’ 에 있어서만큼은 북한과 미국은 적대적 이익 공유자이다. 반면 PSI에 관련해서는 입장은 정반대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 선박의 검문, 검색은 유엔 회원국에 지워진 의무사항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일본 방문에서는 자위대의 참여를 기정사실화했다. 안보리 결의를 PSI 추진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그렇지만 왕광야(王光亞) 주유엔 중국대사는 “선박 정선, 검색은 결의안에 있으니까 하기는 하겠지만” 식이다. 중국의 PSI 적극적 참여는 기대하기 힘들다. PSI는 2002년 12월 예멘행 북한 선박 서산호를 스페인 군함이 공해 상에서 차단, 검색해 미사일을 발견했으나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으로 무산된 것이 계기가 되어 태동됐다. 국제법상에서 타 주권국의 영토에 준하는 국적 선박을 정선, 검색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국제법은 전쟁 중의 적대국가 선박이거나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선박, 예를 들면 노예선 혹은 해적선 등으로 아주 좁게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깡패국가에 의해 대량살상무기(WMD)가 테러리스트에게 넘겨졌을 경우의 가공할 상황을 경고해 온 미국에게는 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항상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라는 법언이 지적한 것처럼 교정되어야 할 법의 미비였다. 이런 배경 하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03년 5월 31일 PSI 구상을 내 놓았다. 1960년대 초 쿠바위기 당시 해상봉쇄의 경험을 되살렸다. 2006년 8월 현재 PSI에 참여한 국가는 70여 개 국가에 이른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는 20여 개국이고 나머지 50여 개국은 취지에 공감하는 수준이다. 첫 번째 해상훈련이 1차 6자회담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호주 동북부 해역에서 실시된 점, 또 대상 품목에 북한이 수출하는 마약, 위조화폐 등도 포함된 사실에서 PSI가 직접적으로 겨냥한 국가가 북한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국은 WMD 부품 적재가 의심되는 북한 항공기의 영공통과를 불허하는 등 PSI 취지에 묵시적 동의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I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PSI가 미사일 방어(MD) 체제의 해상 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태평양에서 치열한 전략적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PSI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바가 MD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서태평양상에 제1해상방어선과 제2해상방어선을 설정해두고 있다. 제 1해상방어선은 북의 얄루산 열도에서 시작, 쿠릴열도, 일본 열도, 류쿠 열도, 그리고 필리핀제도를 거쳐 인도네시아 제도까지 이어지는 방어선이다. 제 2해상방어선은 일본의 오가사와라 제도, 유황도 제도, 마리아나 제도, 야프(Yap)군도, 팔라우(Palau) 군도, 할마헤라(Hamahera) 군도로 이어진다.

중국은 1990년대 이래 미국의 제1 해상방어선을 돌파하기위한 시도를 꾸준히 펼쳐 온 끝에 이제 유사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이어 제2방어선 지역으로까지 작전 영역을 넓히려 시도중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동진은 미국은 물론 일본, 호주 등 서태평양 국가들을 긴장시켜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부시 대통령은 핵기술 이전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는 강력한 어조의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북의 핵실험이 PSI에 ‘대포동 효과’를 가져다 주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읽게 한다. 대포동 1호는 국가미사일 방어(NMD) 구상이 실천단계로 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했고 2차 대포동은 NMD가 발전, 통합된 MD에 모멘텀을 제공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MD는 북한을 빌미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공개된 비밀이다. 같은 맥락에서 PSI를 통해 구축된 정선, 차단 네트워크가 ‘포스트 북핵’ 시대에 중국에 대한 ‘대륙봉쇄 아르마다’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중국입장에서 보면 북한 핵실험은 핵도미노의 공포를 안긴 외에 중국의 대양전략에도 차질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은 18일 예상보다 일찍 군중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핵실험 실시 9일 만이다. 지난 7월 5일 미사일 발사실험을 전후하여 40일 동안 은둔한 것에 비하면 무척 짧다. 골리앗의 갈등을 김정일은 읽은 것일까.


이재준 객원기자·중국국제 전문가 hufs8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