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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北지원·제재 '모순 대응' 속내는
"추가 핵실험 없다" 북한 발언에 '핵 악몽'떨치고 일단 안도
"선택의 십자로 입구에 섰다"… 자국 이익 손상땐 개입 가능 시사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10월24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내외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류 대변인은 이날 북한 핵실험 이후 갖가지 보도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대북지원을 계속하겠지만 안보리 결의안도 엄격하게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는 중국 외교의 하나의 함정이었다. (…) 중국은 역사가 주는 경험을 끊임없이 총결산하는 기초 위에서 다시 이 진흙탕에 빠져드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는 십자로 입구에 놓여있다.”

“도리를 돕지, 친분 관계를 돕지 않는다(幇理不幇親).”

첫 번째 인용문은 베이징(北京)대 교수 예쯔청(葉自成)이『중국의 세계전략』(2005년 5월 ‘21세기북스’사 발행, 이우재 번역)에서 한 주장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10월 12일(미국 현지시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대미특사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을 통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한 메시지에 담은 말이다. 마지막은 북한의 핵실험 실시 후 비밀리에 소집된 중국 학자들의 동시다발적 토의의 결론이다(홍콩 문회보 10월 23일자 보도).

첫 번째 인용문이 북한의 핵실험 이전의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기조를 설명하고 있다면 두 번째 인용문은 핵실험 후 중국의 딜레마를 함축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용문은 핵실험 직후의 흥분과 분노에서 벗어난 중국의 정리된 입장을 요약하고 있다.

핵실험 후 북한이 조지 오웰식의 화법을 구사한다면 정리된 중국의 입장은 중국 특유의 모순(矛盾)화법의 극치다. 미사일 발사실험 후 “남한이 북한의 선군(先軍)정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라고 공언한 북한은 핵실험 후에는 “북한의 핵 보유는 남한에 대한 핵우산”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평화다”라는 오웰의 ‘1984년’이 북한의 ‘2006년’으로 번안된 셈이다. 중국의 ‘幇理不幇親’은 “돕지만 돕지않는다”이다. ‘차디찬 불길’과 ‘펄펄 끓는 얼음’처럼, 말이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지난 10월 24일의 중국 외교부 브리핑은 ‘방리불방친’ 화법의 성찬이었다.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북한에 대한 원조 계속 방침 천명과 함께 송금업무 중단을 확인했다. 지원과 제재의 공존이다. 또한 북·중 국경에 이상(異常)이 있었지만 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핵실험 후 국경이 한때 폐쇄되고 철조망이 설치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자는 연례적인 것이고 후자는 1990년대부터 있어 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방리불방친’의 논리는 구체적 행동으로 구현되고 있다. 중국의 특구인 홍콩은 무기관련 부품의 적재 가능성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추적을 받아오던 북한 선박을 검색했다. 안보리 결의안이 요구한 의심스런 물품의 검색의 첫 적용 사례로 주목받은 이 조치에 대해 홍콩 당국은 안보리 결의안과 무관하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합법화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선박의 검색에 미온적 자세를 취했던 중국이 가장 먼저 선박 검문을 실시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게 아니고…”라고 오리발이다.

중국의 현 외교방침을 설명하는 4자성어 중에는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유소작위(有所作爲)’가 있다. ‘도광양회’는 칼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르자는 뜻이다. 섣부른 개입과 행동을 경계하는 용어이다. ‘유소작위’는 해야 할 행동은 한다는 것이다. ‘도광양회’는 부작위(不作爲)를 지향하는 반면 ‘유소작위’는 말 그대로 ‘작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모순관계다. 북한 핵실험 이후 한동안 크게 흔들리는 듯 보였던 중국의 대 북한 정책은 기존의 모순기조를 회복하는 모양새를 찾아가고 있다.

중국의 모순기조 복원은 아마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핵실험으로 두 개의 카드를 움켜쥐었다. 중국에 대해서는 ‘추가 핵실험’ 카드를, 미국에 대해서는 ‘핵 이전’ 카드이다. 북한은 핵실험 후 발표한 성명에서 핵 이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을 의식한 문구였다. 중국이 발끈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명은 추가 핵실험이란 대중국 카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추가 핵실험은 ‘핵 도미노’의 악몽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가장 피해자는 중국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황급하게 평양을 방문한 탕자쉬안에게 당분간 추가적인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슬며시 ‘빈 배’를 띄워 의심스런 항해를 하게 함으로써 미국을 자극했다. 김정일의 말과 행동은 핵실험을 통해 대중국 카드를 활용했으니 당분간 대미 핵카드를 활용하겠다는 통고였다. 중국 입장에서는 김정일이 ‘불장난을 하다 타죽는(玩火自焚)’의 막가파식 행동을 취하지 않고 ‘벼랑 끝에서 말고삐를 끄는(懸崖勒馬)’ 행동을 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은 일단 시간을 번 셈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일단 ‘비핵 3원칙’ 견지를 천명한 이상,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저지한다면 공포의 핵도미노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김정일의 발언을 두고 중국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간에 빚어진 혼선은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김정일은 앞으로도 간헐적으로 의심스런 배 띄우기를 통해‘어게인 금창리’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1998년 북한 금창리 지하동굴에 핵시설을 은닉했다고 주장하고 1999년부터 2차례 현장방문을 했지만 텅 빈 동굴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미국은 금창리 현장조사의 대가로 북한에 쌀 50만 톤을 지원했다. 홍콩이 검문한 선박에도 아무 것도 없었다. 앞으로 부시와 김정일은 해상 숨바꼭질을 통해 긴장관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북한의 이 절묘한 줄타기는 북한의 핵 보유가 중국의 장기적 국익에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한다. 강대국은 주변국이 자국의 핵심적 이해를 손상시킬 때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1978년 12월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이 해가 바뀌자마자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베트남 침공이다. 베트남이 소련에 해군기지를 제공하고 캄보디아의 친중 폴포트 정권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행동은 소련의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협력하는 것으로, 중국의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간주돼 무력 행사를 불사한 것이다. 중국은 비록 베트남에게 패배했지만 베트남의 인도차이나 연방 구상을 와해시킬 수 있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아민 정권을 붕괴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민은 공산주의자였지만 무자헤딘 세력과의 협상을 시도했다. 아민의 구상은 이슬람 사회주의 정권 수립으로, 이것이 성공을 거둔다면 소련 영내의 이슬람 세력이 들썩일 것이 뻔했다. 체코의‘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무력으로 좌절시킨 것과 동일한 논리였다.

김정일 정권과의 관계에서도 중국은 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유사한 행동을 취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김정일의‘양아들’양빈(楊斌)을 전격 체포, 북한의 신의주 특구 구상을 무산시켰다. 또한 나선시 카지노를 통해 신의주 특구 구상의 불꽃을 재점화하려는 북한의 시도 역시 홍콩인 투자자에 압력을 가해 좌절시켰다.

핵실험 이후 중국인들과 접촉한 미국인들은 중국이 북한의 정권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며 반색했다. 북한 정권은 포기할 수 없지만 김정일 정권은 여차하면 버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심지어 군부 내 친중 세력과 김정일 친위세력 간의 암투가 전개되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중국은 칼집에서 칼을 빼려는 것이다. 도광양회를 버리고 유소작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일련의 모순화법은 중국이 십자로의 입구에서 아직 서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궁극적 선택은 창이 될까, 방패가 될까.



입력시간 : 2006/11/01 16:11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huf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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