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순방 동행 취재기6박7일간 10개국 릴레이 방문 대선공약 구체화 현장 답사입자물리학 연구소와 운하 도시들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보고 프로젝트 구상독일선 전 총리들 만나 통일문제 해법 조언 들어 "현재의 대북정책 수정돼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5시의 남자’였다. 몸도 머리도 잠시를 쉬지 않았다. 일주일간 유럽의 10개 도시를 이동하면서 열차나 버스 안에서는 한인 전문가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자료를 챙겼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현지 관계자의 브리핑을 듣고 토론하면서 문제점과 보완책을 연구했다. (이 전 시장의 영어가 유창해 또 한번 놀랐다)

밤에는 숙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하루 일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다른 프로젝트를 향해 나아갔다.

이 전 시장은 지난 10월 22일부터 6박7일 일정으로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자신이 대표적으로 추진하는 각종 대선공약의 현장 답사 차원이었다. 유럽 3개국 10개 도시에 방문지역만 20여 곳, 이 가운데 3개국 전ㆍ현직 총리와 장관 등 유력인사와의 면담도 6차례나 갖는 강행군이었다. 시장직 퇴임 후 첫 해외순방을 동행 취재했다.

인구 50만 명 '국제 과학비즈니스도시'구상

이 전 시장의 첫 화두는 ‘국제 과학비즈니스 도시’(이하 과학도시) 건설이었다. 어느 지역에 건립할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덕 연구단지 수준이 아닌 인구 40만~50만 명 규모의 국제화 도시 건립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교통 편의성과 기존 연구단지와의 연계성 등을 감안하면 충청 등 중부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됐다.

이 전 시장은 이를 위해 23일(현지시간) 첫 방문지를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CERN)로 정했다. CERN은 핵을 빛의 속도로 충돌시키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극미한 물질의 이동경로를 최첨단 중이온 가속기를 통해 추적하는 E

U중심의 다국적 연구소. 물질의 근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반도체 이후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기초과학 중심 연구단지이다. 스위스 국경을 넘어 프랑스 인접 도시에까지 연구소 분소가 걸쳐 있는 대단위 과학도시이며 독일 다룸슈타트 연구소(GSI)와 일본 쓰쿠바 등에는 이보다 규모가 작은 과학도시가 있다.

이 전 시장은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에도 기초 과학을 튼실히 만들 수 있는 과학도시를 건설, 대한민국을 일류 과학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전 시장이 생각하는 과학도시는 한ㆍ중ㆍ일·미 등 세계 유수의 과학자 3,000여 명과 함께 인구 40만~50만명이 상주하는 국제 규모 대도시이며 CERN과 같이 산학(産學)이 연계된 비즈니스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나오는 성과물로 향후 대한민국이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과학도시 건설을 위한 개념 설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반도체와 자동차, 휴대폰 등에 전적으로 의존돼 있는 우리 경제는 곧 한계점에 다다르기 때문에 이에 앞서 10년, 2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기초적 투자를 강조한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제네바 방문을 마친 이날 밤늦게 비행기에 올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잠을 청했다.

한반도 운하는 미래성장 주도할 프로젝트

유럽 방문 이틀째인 24일은 대표적 공약으로 준비 중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와 관련한 탐사였다. 아침에 기차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뉘렌베르크로 이동한 이 전 시장은 라인-마인-도나우(RMD) 운하의 힐폴트스타인 갑문을 둘러봤다. 이 갑문은 두 하천을 인위적으로 잇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적 높낮이가 다른 양측을 수압을 이용한 일종의 선박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배를 통과시키는 곳이다.

이 전 시장은 “우리도 물류비를 줄이고 내륙 항구마다 지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한반도 운하가 필요하다”며 “15조원의 예산으로 4년 내에 완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유럽을 방문 중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10원 26일 오전 독일 뒤스부르크에 도착. 유람선에 승선해 내항을 탐사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이 구상 중인 한반도 운하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가칭 ‘경부운하’와 금강과 영산강을 연결하는 ‘호남운하’를 각각 건설해 남쪽 지역의 물줄기를 하나로 연결한 뒤 이를 장기적으로 북한의 신의주까지 연결하는 대역사다.

그는 “네덜란드의 한 기업은 자체적으로 한반도 운하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미국 기업은 운하 예정지를 40년간 조차해 주면 민자로 짓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설명했다.

운하 건설에는 반(反) 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설득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은 이도 역시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전 시장은 기자들과 함께 두 하천을 잇기 위해 만든 길이 170㎞의 인공수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이곳을 보라. 여기가 인공하천이지만 자연하천보다도 오히려 정비가 더 잘 돼 있지 않는가”라며 “건교부에서도 하천은 정비를 하는 것이 수질 오염을 막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독일의 인공하천 변에는 수목들이 수려하게 정비돼 있고 물새들도 노닐고 있어 어디부터가 자연 하천이고, 인공 하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전 시장은 “운하를 이용한 화물 운송이 늘면 자연히 육로를 통한 화물 운송이 상대적으로 줄어 대기오염도 막을 수 있고, 동시에 물 관리와 수질오염 방지 등도 부수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운하에 대해 경제성이 있느냐는 부분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이 부분에도 이 전 시장은 단호하다. 그는 “96년 국회의원 때 처음으로 운하건설을 제안했지만 내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라며 “운하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고 서울 중심의 경제구도를 전국적으로 고루 분산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운하는 대구와 안동, 충주 등을 거쳐 서울로, 호남의 목포와 나주를 공주와 함께 연결한다. 운하가 지나가는 주요 지점에 내항이 생기고 이곳에 육로통행의 1/3의 비용으로 화물이 지나간다면 또 다른 발전요소가 생겨날 것이라는 것이 이 전 시장의 주장이다.

즉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물동량이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됐듯이, 운하를 통해 새로운 물류이동이 생겨나면서 경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논리다.

운하에 이은 과제는 통일문제였다. 이 전 시장은 25일 베를린에서 로타르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와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를 잇따라 만났다.

이 전 시장은 메지에르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서독이 통일 이전 동독을 많이 지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우리의 햇볕정책 및 포용정책과는 다르다”며 “현재의 대북정책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정권에 힘을 주고 북한 주민의 생활을 어렵게 해 통일을 더 멀게 하는 것 같다”며 “협력과 지원을 하더라도 대상은 주민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메지에르 전 총리도 “북한에 경제적 협력이나 지원을 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슈미트 전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 전 시장은 “포용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나 그 방법과 결과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슈미트 전 총리는 “북한에 절대 선물을 주지 않되 언제나 손을 내밀고 잡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26일에는 다시 운하건설에 필수적인 내륙 항구를 둘러보기 위해 독일 뒤스부르크로 이동했다. 이 전 시장은 한반도 운하와 관련, “내륙산업 발전을 이끌 수출 항구로서 내항과 외항을 겸할 수 있는 대규모 거점 항만을 대구를 비롯한 영ㆍ호남 2곳에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되면 대구 등 거점 항만에서 화물을 선적해 내륙운하를 통해 곧바로 일본이나 동남아 등으로 화물을 수출할 수 있게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강에서 페리호를 타고 중국과 일본까지 갈 수 있는 뱃길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밤 마지막 방문지인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동했으며, 27일에는 네덜란드 루드 루버스 전 총리 등 주요 정ㆍ관계 인사와 운하 전문가 및 노·사·정 지도자들과 면담한 뒤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다.

유럽 방문 마지막 날인 28일 이 전 시장은 역시 운하와 관련한 로테르담 물관리 시설을 둘러보고 현지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눈 뒤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비행기안에서도 일주일간의 기록을 되돌아보고, 보좌진과 토론하며 구상을 가다듬는 여정은 계속됐다.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