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유세 도중 "공부 못하면 이라크 간다" 발언으로 파문 확산 민주 우위 판세 흔들릴지 주목… 선거결과 따라 대선주자들에 큰 영향

7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가 코앞이다. 여론의 향배는 이미 정해졌다.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의석을 불릴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관심은 민주당이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는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아올 수 있을 만큼 압승을 거둘 수 있느냐이다.

435석 전원을 뽑는 하원은 다수당의 지위가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것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상원은 총 100석 중 3분의 1인 33석만 이번에 새로 뽑기 때문에 하원보다는 물갈이 폭이 좁아 민주당이 탈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상원에서도 민주당의 선전이 예상외로 두드러져 잘하면 1994년 공화당에 내준 상·하원 다수당의 지위를 12년 만에 민주당이 한꺼번에 되찾아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크게 동성결혼 문제와 이라크 전쟁, 두 가지다. 특히 역대 중간선거와는 달리 이라크전이라는 안보 이슈가 판세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 이례적이다. 특별히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없다는 점도 한 이유지만 이라크전이 그만큼 미국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됐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라크전과 관련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없이 불리하게만 돌아가던 판세에 선거를 불과 2, 3일 앞두고 돌발변수가 나왔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와 맞붙었던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메사추세츠)의 실언(失言)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러잖아도 판세를 흔들 만한 시빗거리를 목놓아 찾고 있던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으로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호재이다.

케리 의원은 지난달 30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지원 유세 중 대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숙제도 잘하고 똑똑해지려 노력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라크에 가서 고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공화당은 기다렸다는 듯 연일 케리 의원과 민주당에 집중 포화를 던지고 있다. 요지는 케리 의원이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을 모욕했으며, 이는 민주당이 여전히 안보의식이 결여된 무책임한 정당임을 입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시 대통령이 “케리의 발언은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모욕이자 수치”라고 포문을 열자, 딕 체니 부통령은 “케리 의원은 설익은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이는 미군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이라고 가세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케리 의원이 우리 군에 모욕을 가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집요하게 케리의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요지부동인 것 같았던 여론도 언론들이 케리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장이 의외로 확산되자 케리 의원은 물론 민주당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 후보들이 “케리의 발언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하면서 케리 의원의 지원 유세를 거부하는 사태로까지 치닫자 케리 의원도 결국 꼬리를 내렸다. 하루 전만 해도 치졸한 정치공세라며 “사과해야 할 사람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케리 의원은 “설익은 농담이었다, 미군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공식 사과하고 예정된 선거 지원 유세를 모두 취소했다.

존 케리 미국 상원의원이 코네티켓 상원의원 선거 지원 유세장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선거의 주요 이슈는 아니지만 북한의 6자회담 전격 복귀 발표도 선거 막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까지는 부시 정부가 고집스럽게 북한이 요구하는 양자회담을 거부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불렀다는 비난이 거셌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 온건파들도 부시의 전략 부재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북한의 회담 복귀 발표는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이 결국 옳았다는 것을 선전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일부에서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북한과 어떻게 하든 중간선거의 필패 국면을 탈피해보려는 부시 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민주당이 선거 직전 터진 이 같은 변수를 잘 극복하고 예상대로 의회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면 이라크전과 자유무역협상(FTA) 문제에서 상당한 변화가 올 전망이다. 이라크 상황은 지난달 미군 전사자가 100명에 육박할 정도로 통제불능에 빠진 상태여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할 경우 부시 정부에게 철군을 강력히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FTA 협상도 민주당이 FTA에 전통적으로 소극적ㆍ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의회 인준과정에서 거센 논란은 불가피하다.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2008년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이다. 특히 공화당이 참패한다면 대선 정국은 조기에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 차기 주자들이 부시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설 것이 분명하고, 이 경우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급격히 빨리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선 국면이 조기에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 앨 고어 전 부통령,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이, 공화당에서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부시 대통령의 친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이 유력주자로 거론되고 있는데, 벌써부터 ‘힐러리-오바마’, ‘줄리아니-매케인’ 이라는 러닝메이트 조합까지 나돌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국 병사들이 "공부 못하면 이라크에 간다"는 케리 상원의원의 발언을 풍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상원의원 재선에 나선 힐러리 의원은 이번 선거가 대선을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상대 공화당 후보를 압도하고 있어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실제 힐러리 의원의 선거 유세는 자금과 조직 면에서 중간선거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는 평가다. 통상 상원의원 재선에 필요한 선거자금 규모보다 1,000만 달러 이상이 많은 3,300만 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참모진도 보좌진 32명, 컨설턴트 13명 등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선거유세도 비교적 무난한 민주당 공약만 내세우고 있을 뿐 북한 핵실험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 사실상 대선 유세 행보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보수성향의 일간지 뉴욕포스트가 이례적으로 힐러리 의원의 재선을 지지하고 나서 진보적 이미지로 공격 받곤 하던 그가 보수파로까지 외연을 성공적으로 넓혀 나가고 있다.

의원 선거에 가려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총 50명 중 36명을 뽑는 주지사 선거에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공화당이면서도 환경문제 등에서 부시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정책을 과감히 도입해 민주당으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재선은 물론 역대 가장 성공적인 주지사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황유석 국제부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