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재창당·대통합 세 갈래 흐름 속 통합신당론 일단 우위'盧빼고 서부벨트 구축' 복안에 "제3후보로 대선 승부" 시나리오도

여당발(發) ‘정계개편론’이 심상치 않다. 정치권의 ‘화두’차원을 넘어 여권의 ‘빅뱅’까지 가져올 정도로 비등점을 향하고 있고 여기에 김대중(DJ)ㆍ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의 정치색 짙은 행보가 덧칠해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10ㆍ25 재·보선 패배에 따른 충격적인 ‘0대 40’연패라는 여당의 위기에서 발원한 정계개편론은 당내 계파 간 힘겨루기를 거치면서 확전되는 양상이다.

재·보선 다음날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당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평화수호세력 대결집을 추진하겠다”며 정계개편론에 불씨를 지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재·보선 이전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열린우리당 창당은 시대 정신을 담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열린우리당 실패론’을 거론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재·보선 당일 밤 전패가 확정되자 기자들에게 “재창당을 위한 실천 프로그램을 곧 제시하고 중도개혁세력 통합에 나서겠다”며 정계개편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비대위 이후 당 중진과 초·재선 등 여러 계파들이 회동을 갖고 정계개편의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정계개편 방법론을 놓고 계파 간 시각차는 충돌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과의 연대 여부 최대 관심사

현재 여권의 정계개편론은 크게‘통합신당론’과 ‘재창당론(당 리모델링)이 대립하는 가운데 ‘대통합론’이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다.

‘통합신당론’은 우리당, 민주당, 고건 신당, 시민단체 등 외부 개혁세력이 신당을 창당하는 것으로 우리당의 양대 세력인 김근태 계와 정동영 계 의원들이 주도하는 정계개편 방식이다

김근태 계로 분류되는 재야파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문학진 사무총장은 “우리당은 국민의 심판을 이미 다 받았다. 지금은 당이 조용하면 오히려 비정상이다”며 정계개편론을 추동했다.

친 정동영 계로 알려진 김한길 원내대표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행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열린우리당 창당이란 정치실험을 마감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필요하다”며 '새 아침론'을 꺼내 우리당의 발전적 해체와 통합신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최근에는 친노 인사로 알려진 천정배 의원이 통합신당의 전도사를 자처해 주목을 받고 있다. 천 의원은 10월 31일 라디오에 출연, “정책적 노선과 비전을 함께 하는 세력이 모여야 한다”고 강조한 뒤 7일에는 신당 문제에서 노 대통령을 제외시킨 ‘여당 주도론’을 펴기도 했다. 그밖에 중도성향의 초선 모임인 ‘국민의 길’과 정동영 계 초ㆍ재선 의원모임인 '희망 21' , 중도보수 성향 의원모임인 ‘안개모' 소속 의원도 대부분 통합신당론에 기울어 있다.

‘재창당론(당 리모델링)’은 우리당에 일부 세력을 영입하고 정체성을 강화해 재창당하는 방식으로 친노 직계와 개혁당 출신의 개혁파가 주장하고 있다. .

친노 의원모임인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 김형주 상임대표는 “'도로 민주당' 식의 신당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며 우선 우리당의 힘을 키우는 게 먼저”라고 주장했다. 개혁당 출신인 정정래 의원은 “총선을 통해 국민이 만들어주는 게 정계개편이다. 국민의 뜻과 다른 길을 갈 수 없다”며 통합신당론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9일에는 대통령 비서진 출신 의원들의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소속의 백원우 의원이 ▲호남 통합론 불가 ▲(노 대통령)탈당 불가 ▲전당대회 불복 불가라는, 정계개편에 대한 노 대통령의 ‘3대 불가 지침’을 공개해 적잖은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외 신기남 의원이 주도하는 ‘신진보연대’ 소속 의원과 친노 직계가 주축인 ‘의정연구센터’ 이광재ㆍ이화영 의원 등도 “통합신당론은 당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비판한다.

‘대통합론’은 기성 정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제3지대에서 범여권 세력은 물론 시민사회세력까지 포괄하는 정계개편이다. 이는 통합신당론이 비(非)노무현 성격을 띠고 재창당론이 민주당을 배제하는 것과 구분된다.

호남 세력의 좌장격인 염동연 의원과 올 1월 `범민주개혁세력 통합론'을 기치로 내걸고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임종석 후보를 도운 초ㆍ재선 의원들이 추동하는 정계개편이다. 대통합론은 고건 전 총리가 주장하는 국민통합론과 상통하는 면이 적지 않아 정계개편 과정에서 양측의 연대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들 정계개편론은 민주당(고건 신당 포함)과의 관계, 노 대통령의 역할론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통합신당론과 대통합론이 민주당과의 연대(통합)에 긍정적인 반면, 재창당론은 민주당과의 연대가 지역주의로의 회귀라며 반대한다.

노 대통령의 역할에서도 통합신당파는 부정적이다. 통합신당에서 아예 배제하거나 김근태 의장이 ‘벤치론’을 언급했듯 선수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출전은 안 시킨다는 입장이다. 대통합론은 노 대통령과 함께 하지만 대통령의 역할엔 소극적이다. 반면 재

창당론은 노 대통령이 ‘수석 당원’으로 신당의 중심 포스트에서 중책을 유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한국일보가 5일 우리당 소속 14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에 응답한 102명 중 통합신당 창당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78.4%(80명)로 압도적이었다. 재창당론은 16.7%(17명)에 불과했다. 또한 노 대통령의 신당 창당 참여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49%(50명),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 38.2%(39명)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계개편의 외피를 거둬내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의미있는 정치적 함의가 드러난다. 내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을 겨냥한 계파 간 주도권 다툼과.‘생존’을 위한 전략이 숨어 있다.

통합신당파는 대선 정국에서 노 대통령의 간여를 배제한다. 여론 추이를 볼 때 ‘노무현당’간판이 유리하지 않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대주주인 김근태ㆍ정동영 계가 대선 레이스를 이끌며 직접 후보로 나서거나 필요하면‘외부 선장’영입도 도맡는다는 입장이다. 대선과 관련해서도, DJㆍ노무현 승리를 가져온 ‘호남+충청+수도권+영남 일부’전선을 다시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호남, 충청,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서부벨트’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와 관련 통합신당파의 주축이 호남과 충청, 수도권 의원인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통합신당파는 당을 장악, 내년 대선은 물론 이듬해 4월 18대 총선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노 대통령이 당의 중심에 있을 경우 총선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재창당파는 “민주당과 연대해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대선은 물론, 총선도 불리해진다”고 말한다. 백원우 의원은 “호남당으로 전락하면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느냐”며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영남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얻지 못하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후보’를 내세운 노 대통령은 영남권에서 29%의 득표율을 얻었다. 재창당파는 현재 민주당과 분점하고 있는 호남 지지율은 반드시 민주당과의 통합이 아니어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즉 햇볕정책 등 우리당에 대한 DJ의 확실한 지지만 얻는다면 비호남 후보라도 호남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당 뒤 재결합 가능성도 흘러나와

정계개편론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과연 우리당이 분당하느냐 하는 것이다. 통합신당파는 노선ㆍ정책ㆍ비전이 다르면 분당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대주주인 김근태ㆍ정동영 계가 분당할 추동력이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한다. 노 대통령이 “우리당에 끝까지 남겠다”고 한 것은 호남권 통합으로 방향을 잡은 통합신당파에 대한 엄포인 동시에 그들의 약점을 꿰뚫어 보고 당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편 정가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정계개편을 가장한 ‘위장 이혼론’이 제기되고 있다. 즉 통합신당파가 분당한 뒤 대선을 앞두고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에 참여, ‘어게인(AGAIN) 2002’의 영광을 재연한다는 시나리오. 이럴

경우 우리당, 통합신당, 민주당, 고건 신당 등에서 각각 후보를 내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시켜 최후 승자를 대선 후보로 출마시킨다는 복안이다.

그래서 최근 통합신당론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에 대해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과 천 의원의 각별한 정치적 인연 을 고려할 때 2단계 정계개편(위장이혼 후 재결합)을 겨냥한 여권 지도부의 고도의 대권 전략이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기도 한다.

최근 여권 주변에서는 범여권의 고건,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등의 후보로는 한나라당 후보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제3 후보’를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시켜 그를 대선 후보로 출마시킨다는 시나리오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개혁적이고 참신한 이미지에다 선거공학적으로 충청 출신이어서 호남, 충청, 수도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가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현재와 같은 대선 지형에서는 우리당에 승산이 없다”면서 “대선 지형을 바꾸고 신선한 인물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대선 지형을 바꾸고 노무현-정몽준 경선 이상의 국민적 관심을 끌 수 있다”면서 “관건은 신선한 후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의 대선 지형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선거 전략상 나중에 재결합을 전제로 ‘의도된 분당’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최근 여당발 정계개편론이 복잡한 또 다른 이유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