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맨손 창업 황광위·장인… 올해 중국 최고 부호에 등극매년마다 覇者 뒤빠뀌어 부패조사로 어느날 패가망신도부호 생사여탈권 당의 손아귀에

미국 시사경제잡지 <포브스(Forbes)>는 2일 중국의 부호 1위부터 400위까지를 선정 발표했다. 중국 최대의 가전판매업체 궈메이(國美) 이사장 황광위(黃光裕·37)가 180억9,000만 위안(2조1,7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어 중국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광둥(廣東)성 출신인 황광위는 16세 때인 1985년 가난 때문에 중학을 중퇴했다. 네이멍구(內蒙古)로 가 행상으로 약간의 돈을 모은 그는 다음해인 86년 베이징에서 30평 남짓한 전자제품 대리점을 차렸다. 이 것이 현재 중국 60여 개 대도시에서 평균 3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궈메이의 모태이다.

황광위는 ‘북방의 늑대’, ‘가격 킬러’ 등의 별명을 부른 살인적인 초저가정책과 인수합병으로 가전제품의 유통망을 제패했다. 이어 궈메이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시켜 부동산, 음반, 자본운영 등의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2003년 20위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황광위는 궈메이를 홍콩 증시에 상장한 2004년 포브스 선정 2위의 부호로 수직 상승했다. 2005년에는 4위로 2단계 떨어졌다가 이번에 1위에 오른 것이다.

장인, 여성으로 처음 1위 올라

2위는 부동산 회사 스마오(世茂)집단의 이사장 쉬룽마오(許榮茂)가, 3위는 중신타이푸(中信泰富 : CITIC Pacific)의 룽즈젠(榮智健) 가족이 차지했다. 룽즈젠 일가는 2002년, 2004년, 2005년 포브스 선정 1위의 부호에 선정된 바 있다.

4위는 부동산 회사 허청촹잔(合成創展)의 주석 주멍이(朱孟依) 가족이 차지했다. 5위에는 세계 최대 포장지 회사 주릉즈예(玖龍紙業)의 이사장 장인(張茵·49·여)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 107위에서 올해 115억 위안(1조3,80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어 5위로 뛰어 오른 장인은 1위인 황광위 못지않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급군인 가정의 8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경제특구 선전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1985년 홍콩으로 이주, 폐지수집을 통해 사업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그녀의 사업 자본금은 3만 위안, 현재 환율로 한국돈 360만 원에 불과했다. 같은 해 네이멍구에서 행상을 시작한 황광위와 비슷한 무일푼 출발이었다. 도약의 계기는 90년이었다. 홍콩이 폐지부족으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장인은 미국에서 수집한 폐지를 중국으로 수출해, 이를 가공해 포장용 용지로 되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중국의 부호를 선정하는 데 있어 포브스와 권위를 다투는 잡지로 상하이(上海)에서 발행되는 <후룬바이푸(胡潤百富)>가 있다. 이 잡지는 10년간 독자적으로 중국의 500대 부자를 선정해 왔는데 포브스에 앞서 10월 중순 발표한 2006년 부호 명단에서 장인을 1위로 선정했다. 중국에서 부호선정 작업이 있은 이래 여성이 1위에 오른 것은 그녀가 처음이다 <후룬바이푸>에 의해 2004년, 2005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한 황광위는 올해에는 2위로 밀려났다.

21년 전 똑같이 무일푼에서 사업을 시작한 남녀 사업가가 중국 최고의 부호에 올랐다는 사실은 중국 재계의 춘추전국적 성격을 드러낸다. 시장 환경을 살필 줄 아는 사업적 안목과 중국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업수완을 갖추면 누구나 단기간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음을 이 두 사람은 보여준다.

포브스 선정 중국 400대 부호의 평균 연령은 미국 400대 부호의 평균 연령 65.7세보다 20세 정도 적은 46.5세이다. 그리고 40세 미만이 25%를 차지하고 있다. 10대 부호의 절반이 50세 이하다.

그러나 기회와 위기, 성공과 몰락은 공존하는 것이 춘추전국의 특징이다. 숨가쁘게 빨리 진행되는 영고성쇠(榮枯盛衰)는 몇 년 동안의 부호 명단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2003년 중국 1위의 부호로 선정된 인터넷 포털사이트 왕이(網易)의 창업자 딩레이(丁磊·35)는 지난해 3위로 처지더니 올해에는 12위로 10위권 바깥으로 떨어졌다. IT산업의 전반적 퇴세를 반영한다. 순위 하락이 아니라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서 2001년 포브스에 의해 중국 제2위의 부호에 올랐던 어우야(歐亞) 집단의 양빈(楊斌)은 2002년 10월 초 탈세혐의로 전격 체포된 뒤 그해 포브스 부호 선정 명단에서 아예 순위 밖(당시는 100위까지만 발표)으로 밀려났다. 2001년 3위였던 화천(華晨) 집단의 양룽(仰融)도 다음해에 명단 밖으로 퇴출됐다. 경제범죄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뒤 외국으로 피신, 인신구속은 면했지만 그간 쌓은 부는 물거품이 되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무지개처럼 사라진 중국 부호의 실례는 이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부동산 사업을 통해 상하이 최대 부호에 올랐던 눙카이(農凱) 집단의 주정이(周正毅)는 2002년 화려하게 조명을 받다가 1년 뒤 2003년 부정대출 혐의가 드러나 회사가 도산하며 몰락했다. 톱스타 출신의 여류 사업가 류샤오칭(劉曉慶)은 중국 최고의 여부호에 선정될 정도로 사업에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2002년 탈세죄로 모든 재산을 잃고 ‘악역 배우’로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중국의 부호가 명멸하는 것은 사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도 있겠지만 중국적 특수 상황이 보다 더 큰 작용을 한다. 사라진 부호들은 대부분은 탈세와 부정대출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급전직하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 아직 시장경제의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부의 축적과정에서 갖가지 편법이 동원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권력과의 유착이 불가피하다. 현재 포브스 명단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수위의 기업들도 이러한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황광위가 포브스 선정 불과 수일 전 부정대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황광위는 10년 전 궈메이의 성공을 기반으로 형인 황쥔친(黃俊欽)-그는 현재 신헝지(新恒基) 집단의 이사장이다-과 함께 펑룬(鵬潤) 투자집단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행 베이징 지점으로부터 13억 위안(1,560억원)을 불법 대출받았다는 혐의다.

포브스 명단이 '저주 리스트' 될 수도

중국 관측통들이 이 같은 보도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 것은 상하이 청년재벌 장룽쿤(張榮坤)의 구속이 정치국위원인 상하이 서기 천량위(陳良宇)의 숙청으로 이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10년 전의 황광위 형제의 대출을 문제 삼는 것은 상하이방의 핵심으로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과 전국정협 주석을 맡고 있는 자칭린(賈慶林)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의 대출이 이루어질 당시 자칭린은 부시장을 거쳐 시장으로 재직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권력에 의해 부호가 만들어지고 또 한순간에 권력에 의해 그 모든 재산이 신기루가 되는 ‘중국 특색 자본주의’의 핵심원칙을 그대로 드러낸다.

중국 부호들의 현기증 나는 부침을 전하면서 중국의 한 신문은 ‘부호와 갑부가 어디 씨가 있더냐(富豪大款寧有種乎)’라고 기사 리드를 잡은 적이 있다.‘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더냐(王侯將相寧有種乎)’를 패러디한 것이다. 포브스 명단이 ‘블랙리스트’가 되고 ‘저주’가 되는 현상을 보면서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패러디 해본다.

‘부는 부자의 수완에서 나온다. 하지만 부자의 명줄은 당의 관할 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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