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간선거 민주당 압승으로 대중 강경파 펠로시와 힐러리 부상인권 압력 · 대중 포위전략 강화될까 촉각곤두… 대비책 마련 나서

낸시 펠로시 의원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13일 중국을 방문했다. 구티에레즈 장관의 이번 중국 방문은 2005년 2월 2기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상무장관에 임명된 후 4 번째이며 11월 7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12년 만에 상하 양원은 물론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하는, 이른바 ‘민주당의 싹쓸이 승리’ 직후 이루어졌다.

구티에레즈 장관과 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상무장관과의 회담을 보도한 신화(新華)통신 기사는 두 사람이 지적재산권보호 문제와 무역역조(올해 무려 2,28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 등 양국의 통상 현안 외에도 미국 중간선거 이후의 변화된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과 부시 행정부가 같은 배에 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 공화당의 중간선거 참패는 부시 재집권을 가능케 한 ‘9·11 효과’가 이제 그 수명을 다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또 중국에게 대미관계에 있어 ‘9.11 프리미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ˆ2000년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중국은 아연 긴장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8년 만에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규정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중 외교노선을 배척했다. 그리고 ‘전략적 경쟁자’로 새롭게 정의했다. 중국과의 협력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기존 동맹과의 유대를 강화, ‘미래의 경쟁자’를 견제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처럼 불편하게 시작한 양국 관계는 2001년 4월 1일 중국 하이난(海南)성 부근을 비행하던 미 해군 정찰기와 이를 뒤쫓으며 감시, 추적하던 중국 전투기 간에 충돌사건이 벌어지면서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했다. 미국이 일단 사과를 함으로써 수습되었지만 이는 중-미 관계에 먹구름이 일고 있음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해 9월 11일 발생한 알카에다의 테러는 상황을 일변시켰다. 미국은 중동과 국제테러리즘을 최우선 현안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 올인하면서 중국과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밀월기에 접어들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사태 발전이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 6자회담이라는 다자 협상틀이 마련된 배경에도 이러한 중-미의 밀월이 깔려 있다. 부시 행정부가 해가 갈수록 확대되는 대중 무역역조에 대해서 강하게 나가지 못했던 것 역시 중동에 전력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처지도 한몫을 했다.

국제적 동의를 받지 않은 전쟁, 개전의 구실로 삼은 대량살상무기의 부존재, 또 날로 증가하는 미군 사상자가 이라크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2004년 부시가 재선한 것은 9.11 효과의 위력이 여전함을 방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11월 7일 미 중간선거는 9.11 효과의 확실한 소멸을 의미했다.

부시는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그리곤 민주당 지도자들을 부리나케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중간 선거가 던진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한 것이다.

이는 중국에게도 새로운 적응을 강요한다. 중국에 있어 미 중간선거가 갖는 의미는 두 명의 여성이 상징한다. 한 명은 낸시 펠로시(66) 민주당 하원의원이고 다른 한 명은 힐러리 로댐 클린턴(59)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차기 하원의장이 될 펠로시는 부시 진영으로부터 ‘명품으로 치장한 골수 좌파’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진보적인 민주당 내에서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정치가이다. 그는 지난 2년간 민주당 원내대표로 있으면서 중국과 제3세계의 인권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특히 펠로시가 11선을 기록 중인 캘리포니아 제8선거구(샌프란시스코)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다. 그가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미국의 어느 정치인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인권과 교역의 연계를 주장해 온 펠로시가 하원의장이 되면 중국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통상 압박을 받을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이는 또한 부시 행정부에게도 힘을 실어줄 것임이 분명하다.

구티에레즈 상무장관은 이번 중국 방문시 25명의 기업대표들을 대동했다. 중간선거 패배를 대중 수출 확대의 기회로 삼으려는 부시 행정부의 발빠른 행보다. 앞으로 중국이 미 의회와 행정부의 협공을 받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중국 정부는 국제적 인권 압력에 수세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펠로시의 부상은 설상가상이다. ‘9.11 프리미엄’ 아래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인권문제가 통상문제와 더불어 중국을 골치 아프게 할 것은 뻔하다.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오른쪽)이 지난 13일 베이징을 방문한 카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을 회담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펠로시가 단기적 대책을 압박하고 있다면 상원의원에 재선된 힐러리는 보다 장기적인 대응을 요구한다. 힐러리는 이번 선거로 백악관 재입성에 한발 더 다가섰다. 중국은 이제 ‘퍼스트 젠틀맨’ 클린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클린턴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 로 간주, 대만 문제에 관해서는 선명하게 중국 편에 섰다. 하지만 그는 임기 말년 중·소 분쟁 당시 소련의 중국 포위전략을 연상시키는 대중 포위망 구축에 열을 올렸다. 인도와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에 상당한 정성을 쏟았고 북한 방문을 진지하게 계획했다.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하자는 구상이었다. 당시 중국은 맞불 정상외교를 벌일 정도로 클린턴의 구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힐러리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 ‘퍼스트 젠틀맨’의 대중 포위전략은 다시 부활할지도 모른다. 중국으로서는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상황 전개이다.

지난 20년간 중·미 관계에 있어 주목되는 현상 중의 하나는 돌발변수가 지배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1988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버지 부시는 첫 방문국으로 자신이 초대 연락사무소장으로 재임했던 중국을 택했다. 당시 중국의 환대 속에 양국의 밀월이 예견됐으나 89년 천안문 사태로 전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미국 정부가 취한 대중 무기금수 조치는 17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들 부시의 경우와는 엇갈리는 결과이다.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의 진찬룽(金燦榮) 교수는 펠로시가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 앞으로 중·미관계에 잡음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만 진 교수는 이번 중간선거가 2008년 미국 대선의 풍향계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지나친 비약”으로 평가절하했다. 그 역시 향후 2년 사이 어떠한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점을 환기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럼즈펠드를 경질하고 구티에레즈를 중국에 파견하는 등 신속히 대응한 것처럼 중국 역시 중간선거 이후를 겨냥, 다각적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을 공산이 크다. 2000년 지리한 개표 공방 끝에 미 연방 대법원이 부시의 손을 들어주자 중국이 1차적으로 취한 조치는 주미대사를 리자오싱(李肇星)에서 10세 연하의 양제츠(楊潔篪)로 교체한 것이었다. 리자오싱은 현재 외교부장이다. 능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시 가문과의 관시(關係) 때문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정치지형도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사전에 세밀하게 준비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이재준 객원 중국문제 전문기자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