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⑩ 지린성장 왕민(王民)후진타오 직계 인물… 동해진출 교두보 위해 북한 투자 열올려

왕민(王珉) 지린(吉林)성장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와 함께 동북3성의 ‘새로운 피(新鮮血)’ 다. 지린, 랴오닝, 헤이룽장(黑龍江)성으로 구성된 동북3성에 포진한 6명의 서기와 성장 중 현재 1950년대생은 리커창과 왕민 두 사람뿐이다. 또한 두 사람은 모두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안후이(安徽)성 출신으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직계 인물들이다.

2004년 10월 26일 인민해방군 후근부장을 지낸 훙쉐즈(洪學智)의 아들로 태자당에 속하는 훙후(洪虎)의 후임으로 왕민을 지린성장에 임명한 것은 동북진흥개발계획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당시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서기로 있던 왕민은 훙후보다 10세나 적었다. 성장보다 11세나 젊은 리커창을 랴오닝성 서기에 임명한 것과 같은 이유다. 말하자면 동북개발을 위해 ‘좌 커창 우 왕민(左克强右王珉)’의 인사배치를 한 것이다.

동북진흥개발계획에서 지린성의 비중은 랴오닝성 못지않다. 무엇보다 중국의 현 지도부가 동해로의 출구를 확보하려 부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1차적 목적은 동북지구의 균형 발전에 있다. 이밖에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고려도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올해 초 지린성 훈춘(琿春)시가 북한의 특구 나선시와 항만 개발 및 50년 사용권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은 바로 동북지구의 동해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또 지린성의 기업들이 지난해 10월 후진타오의 북한방문을 전후하여 함경북도 광산에 대한 투자와 북한과 인접한 성내 도로망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중국의 ‘북한 드라이브’는 왕민이 지린성 성장으로 부임한 이후에 본격화했다.

왕민 지린성장에 의해 구체화하고 있는 일련의 이 같은 ‘북한 드라이브’는 동북공정과 맞물려 진행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동북지구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지우려는 중국의 중화주의적 역사관이 동북공정이란 포장아래 국책사업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은 다름 아닌 후진타오다. 후진타오는 부주석이던 2002년 동북공정에 대해 최종 결재했다. 동북진흥계획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포섭’을 지향한다면 동북공정은 동북지방에 대한 한민족의 연고권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린성은 2005년 ‘백두산(중국명 장바이산, 長白山)보호개발관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동안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구가 맡고 있던 백두산에 대한 감독, 관리를 이곳에 귀속시켰다. 이후 지린성은 ‘장바이산 명칭 굳히기’ 작업을 노골적으로 전개

해 오고 있다. 백두산 부근에 공항을 착공하고 고속도로 및 철도건설 계획도 세웠다. 백두산에서 주변에서 산출되는 인삼을 ‘장바이산 인삼’으로 브랜드 명을 통일하고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총회에서 백두산을 등재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물론 명칭은 장바이산이다. 왕민이 동북진흥계획의 ‘오른팔’임과 아울러 동북공정 실천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행보다.

1950년생으로 올해 56세인 왕민은 학계에 있다 공직으로 진출한 케이스. 중국에서 이런 케이스는 푸단(復旦)대 교수 출신인 당 중앙 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등을 겨우 손꼽을 만큼 드물다. 안후이성 화이안(淮安) 출신인 왕민은 베이징 항공우주대학을 졸업했으며 난징 항공우주대학에서 기계제조 부문의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난징 항공우주대학에서 부교장(副校長: 부총장)까지 오른 그에게 인생의 전기는 나이 44세 때인 1994년 7월 장쑤성 성장조리(省長助理)에 임명되면서 마련됐다. 그의 발탁은 싱가포르와 합작하여 설립한 쑤저우 공업원구(蘇州工業園區)의 개발을 위해서였다. 왕민은 쑤저우 공업원구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비롯,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다수 입주한 중국의 대표적인 첨단기술단지로 발전시켰다. 장쑤성 부성장을 거쳐 2002년 쑤저우 서기에 임명되었다.

한국은 2005년 11월 춘천에서 열린 ‘제 10회 동북아 지방정부 지사-성장 회의’ 참석차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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