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주석, 인도 방문서 별 성과 없이 서먹한 대접 받아中, 인도와 파키스탄 등거리 외교가 원인… FTA 등 논의 못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지난 21일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을 들어가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11월 22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의 비그얀 바완(Vigyan Bhavan :과학궁전) 강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양국 관계의 미래에 관한 연설을 하는 동안 이곳 안팎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썰렁’ 그 자체였다. 강당 안 1,000여 석의 좌석은 3분의 1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강당 주위는 항의 분신까지 감행한 티베트인 시위대의 진입을 막기 위한 인도 경찰의 철통 같은 경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날 연설에서 후진타오는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자기가 일어서고자 하면 먼저 다른 사람이 일어나도록 하여야 하고 무엇인가를 이룩하고자 하면 다른 사람이 달성하려는 바를 먼저 도와야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상생의 다짐이자 호소였지만 청중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후진타오의 인도 방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막상 먹을 게 별로 없는 소문난 잔치’였다. 장쩌민(江澤民) 이후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10년 만에 이루어진 그의 인도 방문을 앞두고 세계의 눈길은 인도대륙으로 쏠렸다. ‘친디아(Chindia) 시대의 개막’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였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13억과 10억의 인구를 지닌 인구대국이다. 둘을 합하면 세계인구의 40%를 차지한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최근 연 8~10%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업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인도는 IT 분야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내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인도의 성장 동력은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구매력이다. 이 점에서 양국은 ‘포지티브 섬’ 관계다. 하지만 양국은 국경문제를 놓고 한 차례 전쟁을 치른 바 있으며 냉전시기 내내 적대 관계였다. 또한 현재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놓고 양보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잡지 <비즈니스 위크>가 ‘친디아’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은 2005년 8월. 두 나라가 불화를 극복하고 손을 맞잡을 가능성을 상정한 이 용어 속에는 과거의 ‘황화론(黃禍論)’과 같은 두려움이 한 자락 깔려 있었다.

후진타오의 인도방문을 맞아 중국과 인도는 교역액을 현재의 2 배 수준인 4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13개 항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1962년 무력충돌을 불러일으킨 영토 문제와 중국이 줄기차게 제의해 왔던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중국 국가원수의 방문 성과치고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공항으로 영접 나가지 않았다. 또한 후진타오의 인도 의회 연설도 취소됐다. 세계 앞에 인도가 중국에 거리를 두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것과 관련, 두 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후진타오가 뉴델리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인 11월 13일 인도 주재 중국대사 쑨위시(孫玉璽)가 인도의 아루나찰 프라데시주(州)를 중국의 영토라고 발언한 것이다. 후폭풍이 거셌다. 프라납 무케르지 인도 외무장관이 “그곳은 인도 영토”라고 즉각 반박했고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지사는 쑨 대사의 소환을 요구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상원이 인도와의 핵협정을 통과시킨 것이다. 미국 상원은 후진타오가 인도를 방문하기 나흘 전인 11월 16일 85대 12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인도와의 핵협정을 통과시켰다. 올해 3월 체결된 이 협정은 미국이 30년간에 걸친 인도에 대한 핵동결을 해제, 핵기술 및 핵연료를 인도에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대신 인도는 그 대가로 2014년까지 핵시설을 민간용과 군사용으로 구분, 국제사찰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엄격하게 견지해 왔던 비확산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11월 초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하자 인도와의 핵협정 통과가 불투명하다고 전망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초당적 통과의 배경에는 ‘친디아’에 대한 양당 모두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경문제에 관한 중국의 ‘도발’이 있은 직후에 있은 미국의 핵 특혜 공인은 인도에게 ‘중국 카드’의 매력을 상실케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후진타오의 인도방문이 소문만 요란한 잔치가 된 근본적 원인은 인도와 파키스탄과 균형을 추구하는 중국의 대(對) 인도대륙 정책 때문이다. 후 주석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각각 나흘씩 방문했다. 이는 미국과 현저히 대비된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이 인도대륙을 순방했을 때 인도는 5일간, 파키스탄은 5시간 머물렀다. 인도는 냉전시기 적성국가였고 파키스탄은 비(非)나토동맹국이다. 클린턴은 인도가 민주국가인데 반해 파키스탄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 국가라는 이유를 댔다.

“부시의 외교정책이란 전임자 클린턴의 외교정책을 뒤엎는 것일 뿐”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부시도 대 인도대륙 정책만큼은 클린턴의 차별기조를 계승했다. 부시는 올해 3월 인도를 사흘 동안 방문한 반면, 파키스탄은 하루 동안 머물렀다. 파키스탄이 인도와 같은 핵협정 체결을 요구하자 부시는 냉정하게 거부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다른 필요와 이력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A.Q 칸 박사가 북한, 이란, 리비아 등에 핵기술을 수출한 전력을 지적한 것이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점폭적으로 지원했던 무샤라프에 대한 보상은 파키스탄 체재 시간을 하루로 늘여준 것 뿐이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스윙(Swing)외교’가 아닐 수 없다.

후진타오의 경우는 ‘허시에(和諧: 조화)외교’이다. 인도 대륙 순방에 나서면서 그는 파키스탄에 줄 보따리를 두둑하게 했다. 우선 파기스탄이 간절히 원하는 ‘핵협력’ 약속이다. 인도와도 평화적인 핵협력을 합의한 만큼 이는 두 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취한 조치이다. 미국과 인도와 같은 핵협력 협정까지 가지 않은 것은 베트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부시가 후진타오에게 칸 박사의 이력을 들어 우려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양국 간 경제와 통상협력을 위한 5개년 계획이 발표됐는데 중국이 다른 나라와 이 같은 내용의 협정을 체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와 중국을 잇는 철도와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에도 서명했다. 후진타오의 이번 순방의 ’메인 디쉬(Main Dish)'는 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이라는 말은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인도 대륙에서 구현된 ‘허시에 외교’는 중국의 대 인도차이나 반도, 대 한반도 외교 기조와도 맥이 통한다. 중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베트남의 패권적 위상을 견제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백만 명을 학살한 폴 포트 정권도 지원했는가 하면 베트남을 침공하기까지 했다. 한국과 수교한 뒤에도 남북 균형외교를 지속해오고 있다. 미국과 같은 ‘스윙 외교’를 펼쳤던 러시아와 대조된다.

후진타오의 인도대륙 순방의 결과는 실체 없는 개념으로 판명난 ‘황화론’처럼, ‘친디아’가 미국 등 서방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 상실을 우려하여 만든 신기루임을 증명해주었다. 물론 ‘아직까지는’이란 단서를 붙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티베트 망명자들이 21일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름살라에서 티베트기를 들고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인도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