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세대 '떠오르는 별' 누구인가 ⑪ 칭하이성 서기 자오러지46세 省서기 등극 등 초고속 승진 거듭한 에너지·환경 등 미래과제와 씨름

“제 이야기는 말고 칭하이(靑海)성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푸퉁화(普通話)에 서툽니다.”

자오러지(趙樂際) 칭하이(靑海)성 당서기가 기자회견에 앞서 했다는 이 말은 그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칭하이성의 최고 지도자인 자오러지는 1957년 7월생으로 아직 50세가 안 됐다. 92년 장쩌민(江澤民)이 후진타오(胡錦濤)를 소개하면서 ‘영맨(young man)'으로 불렀던 바로 그 나이다.

그는 43세 때인 2000년 1월 칭하이성 성장에 선출됐다. 당시 전국 최연소 성장이었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 리창춘(李長春)이 그와 같은 43세 때에 랴오닝(遼寧) 성장에 뽑혔으며 5세대의 선두인 리커창(李克强)이 허난(河南)성장에 임명된 것은 44세이다. 자오러지는 2003년 칭하이 서기로 승진했다. 역시 전국 최연소였다.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제1서기로 있다가 43세에 성장을 거치지 않고 구이저우(貴州)성 서기에 곧바로 임명된 후진타오보다는 세 살 늦었지만 리커창보다는 한 살이 빨랐다.

이처럼 후진타오, 리창춘, 리커창 등과 비교되는 ‘기록의 사나이’이기 때문에 관심은 그의 신상에 모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기자회견에 앞서 자신 아닌 칭하이에 관심을 쏟아달라고 서두를 꺼낸 것이다.

두 번째 인용은 올해 3월 9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참석을 위해 베이징(北京)에 올라 온 자오러지가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했다는 말이다. 그는 영낙없는 ‘시골뜨기’다. 조적(祖籍)이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인 그는 칭하이 성도 시닝(西寧)에 태어났다. 베이징대학 철학과를 다닌 3년간(77년 2월~80년 1월)을 제외하고는 칭하이성을 떠난 적이 없다.

1975년 칭하이성 상업청 판공실 통신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칭하이성 상업청 정치처 선전간부로 복귀했다. 그리고 권력의 사닥다리를 성큼성큼 오른 끝에 마침내 권력의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선 것이다. 이제 칭하이성에서 그가 더 올라갈 곳은 없다. 중앙으로의 도약만이 남아 있는 셈이다. 서투른 표준말에 양해를 구한 사실은 자신의 미래가 베이징임을 부지불식간에 의식한 탓인지 모른다.

칭하이성은 면적이 72만1,200㎢로 중국 국토 가운데 13분의 1을 차지한다. 중국의 성, 자치구 중에서 신장(新疆), 시짱(西藏 : 티베트), 네이멍구(內蒙古)에 이어 4 번째 규모이다. 그러나 인구는 518만 명에 불과하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200달러(2005년)로 낙후지역에 속한다. 다만 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에 발전 잠재력은 무한하다.

칭하이는 중국의 양대 강인 황하(黃河), 양쯔강(揚子江)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관통하는 메콩강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중국의 물탱크’다. 석유와 천연가스 외에도 금과 소금, 그리고 석면 등 칭하이 성만의 독특한 자원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확인된 석유매장량은 2억2,000만 톤, 천연가스는 1,575억㎥ 이다.

99년 서부대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중시되기 시작했다. 자오러지의 성장 발탁도 이런 배경 하에서 이루어졌다. 올해 7월 칭짱(淸藏) 철로가 완성, 물류 환경이 개선되면서 칭하이성은 더욱더 주목받게 되었다.

자오러지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발전을 지향한다. 석유와 가스개발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해를 유발하는 산업이 옮겨오는 것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고집한다. 대신 지형상의 특성을 활용한 수력발전, 소금산업 및 관광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천량위(陳良宇)의 후임 상하기 서기로도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단파(團派)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오로지 칭하이성에서만 경력을 쌓은 이유 때문에 중앙 무대의 역할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에너지, 환경 등 중국의 미래 과제를 놓고 6년 넘게 씨름한 경험은 먼 장래에 누구도 넘보기 힘든 강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자오러지는 2005년 7월 19일 한국의 이수성 전 총리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칭하이성을 방문했을 때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환경을 보호한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눈길이 미래를 겨냥하고 있음을 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재준 객원기자·중국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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